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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ug 28. 2022

밝은 밤 VS 작별하지 않는다

머리가 어지럽던 날 내게 도착한 책에 관한 이야기

최은영의 장편 '밝은 밤'을 읽으면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떠올렸다. 두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 배경과 전경,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밝은 밤'을 읽는 중에 여러 번 '작별하지 않는다'를 떠올렸다.


전작 '소년이 온다'가 5.18을 소재로 했듯이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작가는 4.3이라는 현대사의 한 장면을 파고든다. 내가 생각하는 한강의 스토리텔링 방식 중 하나는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끌고 들어와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장면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동시대를 함께 살았든(소년이 온다), 경험하지 못한 현대사의 질곡(작별하지 않는다)이든 첫 몇 쪽을 넘기기 전에 독자는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나기 힘든 고통을 겪는다.


특히 '작별하지 않는다'는 칠흑 같은 어둠과, 차가운 눈밭 속을 기약 없이 헤쳐나가는 느낌을 갖게 한다. 과거의 그 사건 속 행위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 그대로 시연하는 방식이다. 이는 곧 독자에게 부여하는 책무감으로 변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몸에 무겁고 끈적하게 붙는다.


작가의 의도가 그 당시 상황과 인물에 최대한 가깝게 독자를 이입시키는 것이라면 대단한 성공이다. 한강의 이야기는 읽으면서 힘들고 읽고 나서도 한동한 지속되는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시종 열병을 앓는 듯하다.


'밝은 밤'은 현대사를 관통하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4대에 걸친 여인들의 이야기는 화자 지연이 할머니 영옥과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펼쳐진다. 삼천, 영옥, 미선, 지연으로 이어지는 100년 간의 서사 안에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현재의 이야기가 담긴다. 사건은 배경으로  쓰인다. 저자는 취재를 통해 배경으로 쓰일 사건과 시대상황이 겉돌지 않게 했다.


이야기는 철저하게 인물 중심이다. 독자들의 마음을 끄는 대목이다. 장황하게 시대를 설명하다가 시대 자체가 인물들을 삼켜버리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미시적 인간의 삶이 얼마나 많던가. 일제강점기와 해방, 원폭 피해와 한국전쟁은 그 자체로 엄청난 사건임이 틀림없지만 시대가 구현되는 것은 인간의 삶을 통해서라는 것을 소설은 말하고 있다. 원폭 피해를 말하기 위해 그 배경과 역학관계에 지면을 할애하는 대신 일본에 갔다가 돌아온 새비 아즈바이의 실존적 삶과 죽음을 통해 피해의 끔찍함을 말한다. 작가는 모든 사건의 앞과 뒤에는 인간이 있다고 말한다.


밝은 밤은 페미니즘 소설이라 할만하다.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과 생각은 이야기의 중심 줄기이다. 각각의 여성들의 삶에 등장하는 남편들의 이야기가 있다. 대개는 여성들의 주변인에 머문다. 남성들은 고루하며 지질하고 가부장적이다.


백정의 딸이었던 증조모에게 다가오는 증조부의 모습에는 온정이 섞여 있고, 영옥은 전쟁으로 떠난 자, 남은 자, 그리고 뒤엉킴의 혼돈 속에 발생한 중혼으로 희생한다. 미선은 남성 중심의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며, 화자인 지연 역시 남편의 외도와 이혼을 견딘다. 지연이 받고 있는 정신과 치료와 먹고 있는 약은 지연과 세상과의 사이에 놓인 매개인 셈이다.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자체로 지금 여기를 사는 지연의 처지를 말하는 도구처럼 보인다.


여성들의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옥과 미선이 갈등하고, 미선과 지연이 갈등한다. 영옥과 지연은 친밀감이 형성되는 것으로 보아 현실에 적응하려 노력했던 미선에게 원인이 있음을 말하려는 것일까. 이야기는 미세하게 갈등과 화해를 쫓는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가 보면 그 갈등의 원인 제공자는 남성이란 존재다. 그 남성을 대하는 방법을 통해 벌어진 갈등이 인물들의 현존재를 그려낸다. 다만, 세상이 그러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세대와 조금 더 주체성을 갖게 된 세대 간의 갈등은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화해를 향한다는 설정에서 희망을 외면하지 않은 셈이다.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인물들은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의 시간들을 갖는다. 가족과 이별하고 '친밀한 타인'과도 이별한다. 친밀한 타인은 '새비네' 그리고 피난지에서 만난 '명옥 할마이'가 있다. 작가는 가족 간의 이별보다 친밀한 타인 간의 이별을 더 비중있게 다룬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대화가 되지 않는 가족보다야 서로 공감하고 위로를 나누는 타인이 백배 낫다는 말이겠다.


책을 집중해서 읽거나 글을 쓸 수 없었던 2년 간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직감이 있었던 그때부터 밝은 밤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 새벽에 작가의 말까지 다 읽었다.

중압감을 주는 방식을 피했고, 담담하게 4대에 걸친 여성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쓰인 이 책은 분명한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그러나 그렇게 읽기를 강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미덕이다. 모든 서사는 저자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몫이다. 어떻게 읽든, 그것은 독자의 경험이나 소양을 반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뒤표지에 쓰인 '백 년의 시간을 감싸 안으며 이어지는 사랑과 숨의 기록'이라는 말에서 '감싸 안으며'와 '숨'이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시간을 감싸 안았다는 말은 곧 모든 존재들의 삶과 죽음 하나하나가 의미 있었다는 것이다. '숨'은 호흡이다. 그것이 있는 동안 인간의 삶은 유지되며 그것이 없을 때 한 인간의 여정은 끝이 난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여 머리가 어지럽던 날 내게 도착한 책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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