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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Mar 04. 2023

주말 샛강

내가 서향 툇마루를 동경하는 이유

2년 반 만에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다. 지방에서 근무할 때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와 짧은 주말을 쉬고 일요일 점심 먹고 내려가는 그 시간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온전히 주말은 나의 것이 되었다. 오랜만에 여의도 샛강을 둘러본다. 샛강은 한강에서 갈라져 나와 여의도 남쪽을 흐르는 작은 지류다. 생태공원으로 조성되기 전에는 지대가 낮은 습지로 오랜 시간 방치됐었다. 여의도 북쪽 강가에는 사람이 많지만 이쪽은 조용히 걷고 싶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장소다. 샛강변에서 바라보는 해가 서쪽 하늘에 느긋하게 걸렸다. 

 


여의도와 영등포 쪽을 잇는 몇 개의 다리 중에서 샛강을 넘어가는 곳이다. 해질녘 서쪽을 향해 교각 사이를 지나가는 동거인의 모습은 말이 없지만 느릿하게 걷는 것만으로도 주말의 여유를 느낀다. 몇 번이나 "내일 안 내려가도 되는 거지?"라고 되물었다. 온전히 주말을 즐길 권리를 하나씩 찾고 있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느리게 산책하며 생각에 빠지는 것이 내 생활의 중요한 영역이요, 영감의 원천이다. 



아침에 동쪽에서 들어오는 빛은 생명력이 있다. 중천에 떠 있는 해는 작렬한다. 서쪽으로 떨어지는 해는 한가하고 여유가 있다. 서쪽에서 들어오는 빛 역시 느리고 차분하다. 주변의 사물은 그 빛을 받아 독특한 질감을 뽐낸다. 내가 서향 툇마루를 동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앉아본 적이 언제였는지 아득하지만 비교적 선명한 영상으로 감각 속에 재현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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