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8.20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2023. 4. 20.(목) - 2023. 8. 20.(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 층
얼마 전 브런치에 에드워드 호퍼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호퍼, 도시의 시간을 박제하다 https://brunch.co.kr/@webtutor/607) 산업화 과정에서 서로 모르는 타인들이 도시에 몰려들고, 각자의 삶을 시작한다. 도시에서는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까지도 타인으로 존재한다. 필연적으로 생존을 위해 일상을 살고, 잠시 짬이 나면 대책 없이 공허한 도시인들은 가장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다. 호퍼의 그림 속 인간들은 알아도 아는 관계가 아니고(뉴욕의 방, Room in New York, 1932),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친밀감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밤샘하는 사람들, Nighthwacks, 1942). 혼자 있을 땐 절대 고독자이다(아침 햇살(Morning Sun, 1952).
호퍼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전시회가 열린다. 호퍼는 1930~50년대 미국에서 도시와 인간의 모습을 그렸지만, 지금 한국인들의 정서와 닿는 지점이 있다.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까지 이룬 한국 사회는 그 속도만큼이나 고립과 소외의 그늘도 깊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번듯한 일터에 다니는 직장인이든, 하루 벌어 하루 생존을 이어가야 하는 취약계층이든 이견없이 공유하는 지점은 '도시인의 고독'이다. 생활 속 일부가 되어 끈적하게 몸에 달라붙은 '익숙한 고독'이다.
오늘 오전에 시청 근처에서 일이 있어 잠시 외출했다가 서울시립미술관 건물 전면에 걸린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 알림을 보았다. 부제는 '길 위에서'이다. 대형 포스터에 담긴 그림은 호퍼가 1929년에 그린 <해지는 철길, Railroad Sunset>이다. 전시회 알림이 왔을 때 서둘러 '얼리버드 예매'를 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하여 에드워드 호퍼의 전 생애에 걸친 회화, 드로잉, 판화 등 160여 점의 작품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의 자료 110여 점을 선보인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번 전시회는 시간 예약제이고 관람 시간은 30분이라는 것이다. 전시된 그림을 관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관람이라기보다는 '보았다'는 인증 성격이랄까. 아마 두세 번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포스터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재판소인 평리원(한성재판소)이 있던 자리에 일제가 1928년 경성재판소로 지은 건물로 광복 후 대법원으로 사용되었으며,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옮겨간 후 2002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르네상스식 옛 대법원 건물의 전면부를 보존하여 리뉴얼하였으며, 구 대법원 청사의 상징성이 잘 표현되고 건축적,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어 2006년 등록문화재 제237호로 지정하였다. 미술관 전면부의 모습과 호퍼의 그림이 너무 닮았다. 대리석 현관과 벽돌로 장식한 외벽 구조와 느낌은 호퍼의 그림에서 자주 발견되는 질감이다.
가까이 가서 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정동길을 걸었다. 서울 사람 누구라도 젊은 시절 추억의 한 자락씩을 묻고 있는 곳이다. 주말에는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한다. 비 갠 정동길은 나뭇가지마다 물을 머금고 이파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시간의 질서를 깨고 벌써 봄은 만연했지만, 덕수궁 돌담에 닿는 오전의 4월 햇살은 부드러웠다. 요즘은 일 때문에 정동길을 자주 걷는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 길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