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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an 06. 2024

커피 잡설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이야기

원두커피를 마시면 역류성 식도염이 발생하는 몹쓸 체질이다. 어떨 때는 한 모금만 마셔도 바로 속 쓰림이 올라온다. 현대문화를 즐기지 못하는 저주받은 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평생 믹스커피를 마셨다. 하루 두 잔씩 마셨으므로 대략 30년을 마셨다고 하면 지금까지 2만 잔 이상 마셨다고 할 수 있다. 그 속에 들어있는 인스턴트 커피 알갱이도 문제지만 함께 들어가 있는 설탕이나 프림 등의 첨가물로 인해 카페인보다 더 나쁜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하루 믹스커피 두 잔 정도는 매 몸이 견딜 수 있는 양이었다.


커피 애호가들은 이런 내게 연민을 느낄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커피를 즐기는 분들에게 믹스커피란 고급문화를 일거에 퇴색시키는 폭력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래전 사무실에 커피를 내리는 기계를 들여놓고 고급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려 먹던(이 경우 내려 먹는다는 것은 믹서에 오렌지를 갈아먹는 것만큼이나 품위 없는 표현일지도) 이가 있었다. 그 사무실에 가면 꼭 커피를 내려 주면서 설명을 곁들였는데, 나는 "그거 말고 믹스커피나 한찬 주쇼!" 이런 꼴이니 그분 생각에 나는 참으로 품격을 말아먹는 사람이었겠지.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기를... "지금 선배님이 마시는 믹스커피는 커피를 다 분류하고 남은 가장 저질의 커피를 볶아서 물에 녹기 쉽게 인스턴트 화한 것에다가 설탕과 프림을 얹은 것으로 마실 수록 몸에는 좋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속에는 얼마간의 경멸과 걱정이 함께 들어있었을 것이다. "나도 우아하게 원두커피 마시고 싶다고. 그런데 몸에서 받지 않는 것을 어쩌나..." 이렇게 말하고는 나의 저급한 문화 취향을 변명했던 적이 있다. 

얼마 전 지인에게 매장에 가서 바로 주문할 수 있는 앱을 선물 받았다. 많은 분들이 이걸 쓰고 있으니 벌써 무엇인지 아실 거다. 5만 원어치가 충전돼 있고, 다 소진하면 충전하여 쓸 수 있는 것이라 했다. 몇 개월 묵히고 있다가 서식처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갔다. 생각해 보니 반경 1Km 안에 모두 네 군데 매장이 있다. 앱으로 '아메리카노 디카페인'을 시켜서 마시고 왔다. 맛은 별로였지만 카페인이 식도나 위를 자극하지 않아서인지 견딜만했다. 앞으로 커피 공부를 좀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곧 접었다.)

사실 세종에서 근무할 때 6개월간 와인 공부를 하면서 매일 한 잔씩 마셨던 적이 있다. 6개월간 공부를 했음에도 방금 개봉한 것과 일주일 전에 개봉한 맛을 구분하지 못하는 저렴한 능력에 그만 공부를 접고, 동시에 와인도 끊었다. 애초 내 육신은 알코올과 카페인을 수용할 수 있는 몸이 아닌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래서 내 6개월 와인 공부도 끝을 맺었다. 마음 통하는 이들과 와인잔을 기울이며 스테이크를 써는 상상을 했던 내가 바보였다. 궁금하시다면 여기 클릭 ~*(https://brunch.co.kr/@webtutor/453


아메리카노는 커피의 일종인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희석시켜 만든 음료이다. 스타벅스 앱으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도 에스프레소 분류로 들어가서 찾아야 한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에스프레소와 온수를 섞어 만든 아메리카노는 줄여서 불리는 이름이고 정확한 명칭은 '카페 아메리카노(Caffé Americano)'이다. 이탈리어로 'Caffè Americano'를 영역(英譯)하면 'American coffee'이지만 실제 영어로 쓰이는 경우는 없다. 


디카페인(decaffeination)은 커피콩, 코코아, 찻잎, 그리고 카페인을 함유하는 그 밖의 물질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그중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디카페인 커피는 일반적으로 원래의 카페인 성분 중 1~2%만을 포함하며, 임산부나 당뇨 환자, 나처럼 위가 약한 사람도 마실 수 있도록 공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런데 카페인을 제거하는 공정에서 화학물질이 사용된다는 우려가 있었다. 


내가 마신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내가 마신 매장의 디카페인 커피는 식품위생법 등에서 허용하는 디카페인 기준에 적합한 CO2 추출방식으로 만든다. 화학제품은 사용하지 않고 오직 CO2와 스팀만을 사용하여 원두 속의 카페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만들며, 카페인 부담은 줄이면서 커피만의 뛰어난 맛과 풍미는 그대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디카페인 커피는 화학제품을 쓰지 않고 오직 카페인만을 제거하는 CO2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일반 커피 대비 맛과 향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 이런 공정을 거쳐도 카페인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아니고 5ml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90% 이상 제거되는 셈이다.


믹스커피 즐기는 사람과 원두커피 즐기는 사람 간의 취향 차이는 무엇일까. 여전히 나는 믹스커피를 찾을 것이고, 커피숍에 가면 밀크티나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것 같기는 한데, 이제 참 오묘한 차이다. 믹스커피는 번잡한 과정 없이 그저 따뜻한 물만 있으면 되니 한국과 같은 바쁜 직장 문화에서 더 발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믹스커피 애호가로서 믹스커피는 종이컵에 마시는 것이 국룰이지만, 일회용컵 쓰지 말자는 것 또한 세계사적 담론이므로 모두들 생태전환과 탄소중립 실천하자고 깨알같은 잔소리를... 



* 내용 중 일부는 나무위키와 스타벅스 홈페이지를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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