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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Mar 12. 2024

치유의 숲
- 비와 나무, 그리고 적당한 빛

내가 풍경 속 향유자가 될 때의 느낌을 말하기

제주 서귀포 치유의 숲에 다녀왔다. 몇 해 전 교육연수원 근무할 때  학폭 담당 선생님들을 모시고 찾았던 곳이다. 그때 선생님들께서 꽤 좋아하셨다. 힘든 업무하고 있다는 것을 교육청에서 알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봄비가 내렸다. 내려오는 길은 물안개가 가득했다. 사람으로도 위로를 받지만 좋은 풍경은 확실히 지친 마음을 달래는 효과가 있다. 


만약 치유 효과가 며칠 가지 못한다면 자주 이런 곳을 찾으면 되지 않나. 평소 읽고 쓰고 걷는 일을 한다고 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진데, 생각해 보니 아무 길이나 걷는다고 좋은 것은 아닌 듯하다. 하늘과 땅, 수목과 대기가 조화로운 곳을 걸을 땐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물안개와 키 큰 삼나무, 황토색 길이 어우러진 풍경, 그리고 좋은 사진에 필요한 적당한 빛


제주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다시 보면서 기억을 되살리는 중이다. 비가 꽤 많이 내릴 때도 있었고, 안개비 형태로 온몸을 감싸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어느 경우도 좋은 풍경을 만들어 내었다. 세 번째 사진은 마치 두 거인이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동행했던 배우자도 연신 감탄하였다. 같은 풍경도 누군가를 인솔하여 왔을 때와  오롯이 내가 풍경 속 향유자가 될 때의 느낌이 이렇게 다르구나. 물안개가 짙을 수록 풍경은 신비롭게 변했다. 


삼나무는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성 겉씨식물, 줄기는 가지가 많이 나와 위로 또는 수평으로 퍼지고, 높이 30~40m, 지름 2m까지 자란다


2월 말부터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업무에서 갑자기 손을 놓아서 그런지 상당히 힘들었다. 2주 이상 밤마다 쥐어짜는 것 같은 복통에 시달렸다. 경험해보지 못한 통증이라서 살짝 겁을 먹기도 했다. 지난주에 위내시경, 오늘 아침에 대장내시경을 했다. 다행히 별일은 없는 것 같다. 만성 위염이야 늘 있으려니 하는 것이고 대장에서도 용종 하나 떼어낼 정도였다. 


육신의 질병이라 해도 확실히 마음과 연결돼 있다. 통증도 행복감도 온몸을 지나가는 신경망과 뇌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던가. 몸을 통제 범위 안에 놓는다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 중요하다. 잡생각을 많이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치료 계획을 갖고 구체적 실행에 옮기는 것 말이다. 


<거인의 악수>라고 제목을 붙였다


적절한 때에 병원을 찾고, 의사를 만나고, 진료와 처방을 받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이제야 가능해졌다니. 지나온 세월이 살짝 억울하지만 그게 뭐 나만 그랬겠나. 시간을 통제하고 살지 못했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다 그랬을 터이다. 


의료 대란 중이라 수술 환자들이 연이어 일정 연기나 타 병원 이송 연락을 받고 있다고 하던데, '다행히' 나에게는 아직 연락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혼돈이 길어지면 차질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쯤 해서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 


내 앞에 처리를 기다리는 결재와 업무가 밀리는 것이 아닌,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글들, 그리고 내 발걸음을 기다리는 환대의 장소가 기다린다는 느낌은 새로운 삶의 활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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