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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an 09. 2023

엄마의 카톡이 나를 울리네

서로를 위로하는 밤

지난달 코로나에 걸려 가지 못했던 친정에 다녀왔다.

가져갈 짐을 챙겨둔 가방에 내가 쓴 책을 넣으며 고민을 반복했다.


나는 쓰면서 치유를 받는 사람이다. 말로는 차마 다 하지 못하는 내 안의 저 깊은 곳에 자리한 이야기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가족에게 내가 쓴 글을 공개한 적은 없었다. 가족에게는 언제나 양가감정이 든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면 좋겠는 마음과 그렇다고 속속들이는 또 몰랐으면 좋겠는 마음. 가족은 갑옷과 같아서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어떤 것보다도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하니까.


책이 도착한 날 오빠에게 책밍아웃을 하며 심장이 가슴은 물론 온몸에서 뛰는 것처럼 떨렸던 이유는 어쩌면 그래서이지 않았을까. 비록 반려견인 루피와 보아의 이야기일지라도 허구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남이라면 모를까 가족에게 내 글을, 내 이야기를, 나를 공개하는 건 생각보다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정년이 되도록 직장 생활을 하고, 지금도 놀멍 쉬멍 노인 일자리로 학교에서 급식을 나눠주는 일을 하고 계시는 엄마에게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 나는 그저 백수일뿐이다. 엄마는 이따금 대화 도중 '너는 백수니까...'라는 말씀을 악의 없이 하는 분이다. 어려서 시집와 하루하루 사는 게 고단했던 엄마에게 책이란 사치일 뿐이었을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살면서 엄마가 책을 읽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엄마이기에 '백수 딸'의 책이 나왔다는 얘기는 얼마만큼의 감흥을 드릴 수 있을까. 


마주 앉은 엄마에게 책을 드리며 얘기했다.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냥 알고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비록 생산적인 일은 아닐지라도 나를 살리고 있는 일을 하는 거라고. 그러니 엄마 걱정처럼 딸이 돈을 벌지 못하는 백수라 해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책을 받아 들고 신기하고 놀랐다 하셨지만 엄마의 대화 주제는 이미 다른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책은 안 읽어도 딸이 쓴 거니 읽을 거라고 말씀하셨어도 알고 있다. 결국 엄마는 책을 읽지 않을 거라는 걸. 한동안 잊고 있다가 '아 참, 읽어 봐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결국 첫 장을 넘기기 힘들 거고, 시작을 하더라도 끝까지는 아마 힘들 거라는 걸. 그래, 읽지 않아도 좋다. 읽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좋다. 내가 엄마에게 한 말은 하나의 과장도 없었다. 정말 그냥 알고만 있으면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 


역시 가족 이야기, 특히 원가족 이야기는 힘들다. 

문장이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어떤 이야기들은 술술술 다음 문장이 줄을 서서 나오는 반면 가족 이야기는 늘 그래왔던 것 같다. 생각은 문장이 되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뒤엉켜버린다. 그렇게 꼬여버린 생각을 조심조심 풀어내 각각의 문장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저렇게 꼬여버린 걸 풀어보려 해도 그게 참 쉽지가 않다. 


글의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며칠을 그냥 보냈을 때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엄마가 책을 읽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책이란 그저 잠이 오지 않을 때 잠을 자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는데 싫어하는 돋보기까지 꺼내 쓰고는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는 말에 놀랐다. 그리고 읽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좋다고 생각했던 이유를 그대로 반응으로 보여줘서 꽤 아팠다. 


가족 중 내가 쓴 글을 가장 처음 읽은 사람은 조카 원이다. 원이는 루피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울었던 반면, 엄마는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울었다고 했다. 물론 슬픈 이야기는 전혀 아니지만 글 밖의 루피와 나를 알고 있으니 아무래도 감정 이입이 더 되었던 걸 테지. 같은 글을 읽어도 와닿는 포인트는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루피와 보아의 이야기일 뿐인데 엄마는 거기서 나를 보았다. 루피와 보아를 데려왔던 그 시절의 나. 반복된 유산으로 힘들었을 딸을. 


강아지에 대한 글이 아니라 힘들었던 내 딸 심정이 바로 여기 있구나, 하면서 울었다고 했다. 어느 정도 마음을 가라앉혔을 테지만 카톡 너머의 엄마가 지금도 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나 역시 손으로는 웃었지만 사실을 기어코 참아내지 못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힘들었을 딸을 생각하고 우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달래는 나. 서로를 향한 위로가 가득한 밤이었다. 그리고 그 밤을 건너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고 있다고 여기던 수많은 모습 중 일부를 실체에 가깝게 조금은 수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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