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둘러본 카페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스는 앤트러사이트였다. 이런 류의 행사는 경쟁 브랜드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뽐내기 경쟁도 치열한 법이다. 그래서 부스는 화려해지고, 사이즈도 점점 거대해져 간다. 그 사이에서 앤트러사이트의 부스는 심심했다. 고층 빌딩 사이에 자리한 낡고 낮은 건물처럼 주변과 어울리지 않았고, 조금은 허술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은 주어진 공간에 백월이나 진열대, 안내 테이블을 크게 설치하는 대신, 심플한 입간판을 두고, 모서리마다 조그만 테이블을 비치해 원두별로 시음을 권하고 있었다. 낯선 모습에 갸우뚱하다 행사자에게 건네받은 커피를 마시며 생각이 났다. 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합정이나 제주에 위치한 그들의 카페는 과거 폐공장이었다. 요즘에야 흔해졌지만, 버려진 공간을 재생하여 탄생한 공간인 것이다. 매장은 낡은 건물이 가진 세월의 흔적은 유지하면서 모던함과 여백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 있다. 그들의 카페에서 받았던 인상과 부스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하면서, 공간을 꾸민 의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이런 행사를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크고 화려한 부스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이 깨진다는 것과 그것이 고작 며칠 사용된 후에 버려진다는 것을. 재생, 여백의 가치를 추구하는 브랜드로서 낭비와 화려함은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본래의 스타일대로 심플하게 공간을 구성하며 시음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지향하는 바가 잘 투영된 모습을 보며 좋아하던 브랜드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지향하는 것이 분명해야 정체성과 스타일이 또렷해지고 그것에서 호감이 생긴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지향하는 것이 지양하는 것을 통해 완성된다는 걸 알게 된 건 성심당 덕분이었다. 대전 사람으로서 성심당에 대한 옅은 호감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이 어떤 시간을 통과했고 어떤 생각과 철학으로 사업을 해왔는지 자세히 알진 못했다. 성심당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책을 통해서였다. 성심당은 60주년을 맞이하여 그간의 이야기를 담아 책을 냈고, 몇몇 서점에서 북토크를 열었다. 최인아 책방에서 진행된 행사에서 나는 인상 좋은 성심당 대표 부부를 처음으로 마주했다. 서점에서 나눈 그들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농축되어 진득했고, 진솔한 화법 덕분인지 묵직했다. 이야기 중에는 마케터로서 귀 기울여 들을만한 것이 많았다. 90년대 건강빵 트렌드를 따라 빵집의 이름을 바꾸기도 했지만,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으며 성심당스러움을 고민했다는 말에서 브랜드의 본질을 떠올렸고, 제빵을 총괄하는 임원이 사업계획에서 원가 절감이 아닌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를 발표한다는 이야기에서 보통의 기업들과 대비되는 매력적인 결을 봤다.
그중에 특히 귀에 걸리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시월의 마지막 날이면 듣게 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처럼 대전에 오면 꼭 들리는 빵집이 되길 바란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뒤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성심당 때문에 대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대전에서만 영업을 하고 있다고. 수많은 유통사로부터 출점 제안을 받았지만, 다른 지역에 매장을 내지 않고 오직 대전에서만 장사를 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지향점과 지양점이 분명했기에, 대전 사람들의 자랑이자 대전 여행의 필수코스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지향하는 것과 지양하는 것이 분명해야 결이 생기고 스타일이 생기고 정체성이 생긴다는 걸 알고 나서 이걸 SNS 계정 운영에 써먹어 보았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계정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또 무엇을 지양하는지, 시간을 들여 적어본 것이다. 그때 나는 지향점에 솔직함, 친근함, 소소한 재미, 직장인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같은 키워드를 적었고, 지양하는 것으로는 자극적인 유머, (솔직함이 선을 넘지 않도록) 상사나 회사를 향한 부정적인 메시지, 일방적인 홍보를 썼다.
그런 기준으로 계정을 운영해보니 정체성, 스타일까지는 모르겠지만 일관성만큼은 분명히 생겼고, 그 과정에서 나는 덜 흔들렸다. 지향이란 말에는 방향성이 포함되어 있고, 지양이란 말에는 샛길의 유혹을 멀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나름대로 기준이 있었기에 다른 회사도 하니 우리도 따라 해야겠다거나, 요즘 이게 유행이니 우리도 해보자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미리 상사들과 지향점과 지양점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을 이뤄 놓은 덕분에 뭐가 맞네 틀리네, 낫네 못하네 하며 왈가왈부할 일도 없었다.
몇 년 전, DBR 포럼에서 배달의 민족 장인성 이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다른 배달앱과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지향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배달의 민족은 ‘유머’, ‘패러디’ 같은 그들만의 독특한 개성을 만들었고, 브랜드 팬클럽까지 생겼다. 이름난 모델을 내세우고 할인 행사만 주야장천 늘어놓는 요기요와는 분명 다른 결이 느껴지는 브랜드가 되었다.
인수 합병으로 한 지붕 두 살림이 된 그들의 지금 처지 탓에 꽤 오래전에 들은 이 말에서 조금 헛헛한 느낌도 든다. 어쨌든 배달의 민족이 그랬듯, 지향점과 지양점이 분명해야 똑바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길잡이, 안전선, 차단선이 되어 우왕좌왕, 좌고우면 하지 않게 만든다. 지향점과 지양점은 사람의 인생에서도 똑같이 중요한 것 같다. 연차는 계속 쌓이지만 실력은 그만큼 쌓이지 않는 요즘,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한 자신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