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다 스물아홉 살에 찾은 야구장에서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타구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하루키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로 넘어오는 건 어딘가 덜컹하는 느낌이지만 뻔뻔하게 글을 이어가자면, 내가 글 비슷한 걸 써보겠다고 결심한 건 시월 제주 바닷가에서였다. 월초에 굵직한 행사를 하나 마치고 업무에 여유가 생긴 나는 제주 바다를 찾았다. 애월 해변에 자리 잡은 풍경 좋은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달처럼 떠올랐다.
사실 제주 바닷가에서의 결심 이전에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 더 있었다. 이제는 시간의 때가 묻어 기억 속 문장도 변색된 것 같지만 그 의미만큼은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있는 배우 하정우의 말이었다. TV 채널을 돌리다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틀었고, 화면 속 리포터는 미술 전시회를 연 하정우 배우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리포터는 미술의 어떤 점이 좋냐는 질문을 던졌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영화라는 공동의 작업에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미술이라는 개인 작업을 통해 채울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그 말은 내게 충격이었다. 배우 하정우면 작품마다 주인공을 하고, 천만 관객을 여러 차례 동원하며 흥행력까지 갖춘 배우 아닌가? 그런 사람이면 시나리오도 줄을 서고, 만나고 싶다는 사람도 넘쳐나는 거 아닌가? 아니, 그런 사람이 영화를 통해 채우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 역시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유능한 직장인’을 꿈꿨고, 그래서 무슨 일을 맡든 신입 특유의 열정과 패기를 주변에 풀풀 풍기며 일했다. 남들보다 먼저 한 주를 시작하겠다며 일요일에 나가 일을 한 적도 많았으니 좀 오버를 하긴 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시간이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고 해를 넘어가자 나는 조금씩 지쳐 갔다. 쳇바퀴 돌듯 비슷한 일이 계속 돌아오고, 주도적으로 기획한 일이 워킹그룹장-팀장-실장-사업부장-본부장이라는 5단계 허들에 부딪혀 침몰하고, 어렵사리 진행한 일이 회사 전체에 먼지만큼의 도움이 되는 걸 보면서, 커다란 조직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일한다는 건 공허함이 따르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회사를 통해 자아를 채운다는 건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것처럼 어려운 일, 아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보면 자존감을 구성하는 여러 축에 관한 설명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자기 조절감’이다. 자기 조절감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본능을 의미하며, 이것이 어느 정도 충족돼야 자존감도 높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라는 공동의 작업장에서 이 본능이 채워진다는 건 (사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시를 받고 그에 맞춰 일하게 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과 엮이며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기에 주체적인 태도를 유지하기가 무척 어렵다. 영화판에서 대접받는 배우조차도 공동의 작업에서 빈틈을 느끼는데, 피라미드 밑바닥에서 반쯤 찌부러진 채 생활하는 내가 조직에서 공허함을 느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입으로 열심히 공기를 불어 넣어도 자꾸 쪼그라드는 자아 때문에 고민하던 내게 그의 말은 울림이 컸고, 내게도 그의 미술처럼 개인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단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림을 그려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중학교 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을 선생님이 보고는 “도대체 뭘 그린 거니?”라고 물었던 기억이 떠올라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다. 사진을 찍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몇 해 전 큰맘 먹고 샀던 중고 DSLR이 몇 번 사용되지도 못한 채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는 사실이 생각나 현실 자각 타임을 갖게 됐다. 악기가 또 다른 후보로 떠올랐지만, 경험치가 하나도 없는 분야이기에 그건 취미와 배움의 영역으로 두어야 할 것이지, 개인 작업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객관식 문제의 정답을 고르듯 보기를 하나씩 지워나가니 남은 것이 글이었다.
‘가만 보자, 나 일기도 계속 써왔는데, 글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학창 시절에 동아리 카페에 쓴 공지를 보고 후배 하나가 글 진짜 잘 쓰시네요, 라고 댓글을 달았던 것 같은데? 회사 일로 어쩔 수 없이 쓴 글에 팀장님이 작가 났다며 칭찬해 준 적도 있었잖아! 게다가 글은 노트나 노트북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밑천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작업이잖아!’
하정우 배우의 말과 제주 바닷가에서의 다짐은 ‘쓰는 일’이라는 또 하나의 꿈을 만들었다.
‘그래, 혼자 쓰고 혼자 읽는 일기가 아닌 누군가에게 읽히는,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써보자. 무슨 일을 하든 ‘쓰기도’ 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러고는 두 가지 일을 벌였다. 하나는 브런치에 가입해 작가 신청을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작가 신청은 다행히 며칠 지나지 않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고, 글쓰기 강좌에서는 귀에 유독 맴도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