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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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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Jun 03. 2020

기다림으로 세월을 땋다






3월 초의 아침은 겨울이었다.

등굣길의 햇빛은 누워있었고, 바람은 회색이었다.

그래도 색색이 차려입은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새봄 학기를 맞이한 설렘이 흘러나온다.

큰아이를 먼저 보내고 조금 늦게 학교로 향하는 아이와 나는 모처럼 쐬는 아침 공기가 신이 났다.

입학식 치르고 난 후 3일째 하는 등교, 하이톤의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00아,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해...?"

아이는 손가락을 넣은 입 사이로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듣는지 안 듣는지 먼 곳만 응시하였다. 녀석 또 자동차에 정신이 꽂혔구나...

가끔은 그렇게도 좋아하는 자동차에 한눈을 팔 때가 있는데, 아침 등교 길이 물 만난 고기가 된 셈이다.

학교 교실로 들어가는 현관에 도착해서 실내화로 갈아 신는 것을 한참이나 기다렸다.

그래도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해내는 아이가 기특하기만 하다.


"다 신었어? 그래, 올라가자"

아이가 앞서서 계단 난간을 붙들고 올라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 올라가려던 순간이었다.

아침 복도 청소를 끝낸 고학년 아이들이 우리를 스치고 우르르 무리 지어 쿵쿵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자 갑자기 아이는 오르던 계단을 뒤돌아서 한 계단 내려온다.

"00아 왜... 올라가야지."

"아냐, 나 안가, 집에 갈래."

"00아, 선생님한테 가자, 친구들한테 가자."

"무서워, 계단. 안가,. 집에 갈래"

"엄마가 업어 줄게, 올라가자."

"싫어"

억지로 잡아끌지도 못하고 뒤돌아 현관으로 나가서 주저앉는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신발을 갈아 신으려고 하는 걸 신주머니와 가방을 뺏어 들고, 계단 입구에 선다.

"갈래, 집에, 집에, 엉엉"

아이는 갑자기 큰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한둘씩 와서 신을 갈아 신고 교실로 올라가고 주위에는 신입생 엄마들이 군데군데 서있다.

업으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나를 밀치고 신발을 갈아 신으려고 신주머니를 뺏으려는 걸 나는 저만치로 멀리 떨어져 선다.


이럴 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

나는 두리번거렸다. 바로 현관 입구에 있는 교실이 도움반 교실이다. 전날 특수교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었기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교실 창문을 기웃거렸다.

도움반 학생들이 몇몇 수업하는 교실이라 아침부터는 선생님 혼자 계셨다. 마침 빼꼼히 바라보는 나의 얼굴과 선생님의 시선이 마주쳤다

"드르륵"

문을 열고 나오신 선생님께서 다급한 나의 얼굴과 입구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를 듣고 상황의 전말을 알았다는 듯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띠셨다.

"엉엉엉"

"누구야!! 누가 이렇게 학교에서 큰 소리로 울어!!"

선생님은 나를 보고는 올라가 있으라며 손짓을 하였다.

"누구야, 00이구나. 그런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교실로 안 가고.."

"안가, 집에 갈래."

"안 가요, 집에 갈래요 해야지."

"안 가요. 집에. 갈래요."

"그래? 그럼 집에 가, 아니, 유치원으로 다시 가."

"엉엉"


한참을 울고 있는데 선생님이 내쪽으로 다가왔다.

"00이가 힘든가 봐요, 학교 적응하기가... 우선 고집을 꺾어야 하니까 그냥 울게 좀 놔둘게요. 지금 어떻게 해서든지 교실로 올려 보내야 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00이의 울음이 잦아들자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00아, 00이 이제 8살이야. 1학년이고, 형들도 다 학교 와서 공부하잖아. 00이도 유치원 졸업하고 이제 학교 다녀야지. 유치원엔 동생들 다니고 있고, 00이는 친구들하고 1학년 다녀야 해. 학교 다녀서 공부도 하고, 그래야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 된다. 엄마께서 교실로 갔으니까 00이도 교실로 올라가자. 자, 일어서, 눈물 닦고."


기다림이란 이런 것일까. 떨리고 설레고 걱정스럽다가도 문득 날개 달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 나는 아이가 계단을 올라올 때마다 소리 죽여 한층 한층 위로 앞서 올라갔다. 복도에서는 교실 앞으로 발꿈치를 들고 뛰어갈 정도였다. 교실 앞에서 계단 쪽으로 선생님 머리가 보이고 이윽고 아이의 머리가 보였다. 순간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선생님은 잘 가라고 한 후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시고, 아이는 혼자 교실 3개를 지나 내 앞으로 삐적삐적 다가오더니 눈물 콧물 찍찍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이 얼굴을 매만진 다음 교실문을 열었다.

등교시간이 지난 데다가 새빨간 눈과 코를 하고 새 숨을 들이쉬는 00이를 보고 담임선생님이 물으신다.

"00이 어디 아파요?"

"아니요, 안 온다고 떼를 썼어요."

"그래요?"

선생님은 잠시 표정이 굳었다가 이내 아이를 데리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다. 처음 입학식 때부터 담임선생님의 관심에 아이가 교실에서도 자리 이탈이 없고 잘 적응하나 싶더니 급기야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다음 날부터 만만한 내가 아닌 이웃에 사는 애들 고모가 와서 등교를 시켰다.

워낙에 자기표현이 서툴러서 아침에 싫은지 좋은지 그냥 잘 따라가 주었고 하루하루 한주 한주가 가고 있다.


잘나도 자식, 못나도 자식이다.

부모 된 죄로 못난 자식 책임지고 어떻게 해서든 사람 구실하게 만들려고 기를 쓰는 내 모습이 초봄의 싸늘한 아침처럼 처량하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문득 봉오리 피는 목련도 보았고, 담장에 노란 개나리도 보았다. 목련과 개나리가 놀라운 게 아니었다. 그것들을 바라본 나의 시선이 놀라운 것이었.

나의 시선은 늘 00이었다. 함께 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나의 시선은 늘 그 아이었다.

학교를 보내고 엄마 품에서 떨어진 아이만큼이나 나도 그 애를 좀 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눈이라는 렌즈에 내 아이와 그 뒤에 있는 개나리와 목련을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 봄꽃들과 함께 담긴 아이는 얼마나 영특한가...

화사한 봄꽃을 닮아가는 아이가 어느 아이 못지않게 산뜻하고 발랄하다.

아이는 학교를 다니고 배우고 또래들과 함께 커나갈 것이다.

나도 내 울타리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울타리를 넓혀야 한다.

내 시선이, 내 렌즈가 커지듯이 나의 울타리와 마음도 커나간다.

내 마음의 울타리가 커갈수록 나도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고 행복해진 나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도 함께 행복할 것이며 언젠가는 내 안의 울타리 밖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가 더 큰 세상의 품에 안길 것이다.

그 날이 언제고 꼭 올 거라고 거리의 화사한 봄꽃들이 말해주고 있다.





- 오래전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했던 어느 봄날에










아침에 아이 학교에 들렀다.

신종 코로나 확산 우려에 졸업식장은 통제의 장이 되었다.

아이를 교실에 보내기 전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학교를 뒤로하고 출근하는 차 안에서 3년 전 오늘이 생각났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을 위한 축하공연을 보면서 지난 시간들이 생각나 목 저 아래에서 뜨거운 게 올라왔었다.

누가 볼까 눈물을 삼키며 알록달록한 조명 속에 시간들을 흘러 보냈다.


그나마 다행인 걸까, 졸업식 행사가 축소된 것이..

혹 행사를 지켜보면서 오늘의 나는 또다시 뜨거운 무엇인가를 토해낼지 그냥 삼켜버릴지 모를 일이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피아노 위에 고교 졸업장과 함께 3년 정근상이 놓여 있다.

2급 아이를 하루하루 힘들게 등교시킨 지난날이 떠오르자 지금 이 순간이 기쁘고 대견했다.

그리고 힘들었던 기억은  뜨거운 무언가로  솟구치는 게 아니라 달콤한 슬러시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고 달달하게 가슴속을 하강하고 있었다.

3년 전과 사뭇 다른 나의 반응이 의아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는 것처럼 나도 아이와 세상을 대하는 게 성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방금 느낀 성취감과 안도감은 앞으로 어떤 파도가 일어나도 바람에 몸을 맡기고 파도타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만들어줬다.


"00아, 졸업 축하해"


 









나에게 있어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 기다림은 처음엔 설레었다가 조마조마하고 어느 순간에는 격정이었다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마음평온해지는 것이었다

여우가 어린 왕자를 기다리면서 한 시간 앞서 미리 행복할 거라고 한 대사가 떠오른다.

여우의 한 시간이 나의 평생이 될지도 모르면서 나도 이제 기다림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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