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향하는 길은 제법 복잡하지만, 동시에 한 문장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기도 하다.
"일단 무조건 변두리로 달려."
학교로 향하기 위해서는 우선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다. 양 옆으로 끝없는 논밭이 펼쳐진 도로로 들어서면 알맞게 가고 있다는 뜻이니 안심해도 좋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자동차 유리창 너머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풍경이 점점 고즈넉해지다 못해 한적해지기까지 하는데, '정말 이런 시골에 학교가 있다고?' 라는 생각이 들 즈음이면 비로소 멋들어진 나무 표지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표지판 뒤로 보이는 것은 작은 길 하나가 전부다. 끝까지 걸어가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작은 시골길로 조심스레 꺾어 들어가면, 그 길의 끝자락에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설명회: 학교에 처음 발을 들이는 날
대안학교들은 공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지도 상의 같은 목적지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목적지까지 어떤 길을 골라 어떻게 갈 것인지에 관해서는 학교마다 견해가 제각각 다르다. 따라서 모든 대안학교는 저마다 추구하는 고유의 '지도'가 있고, 대안학교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각 학교의 지도를 이리저리 따져 본 뒤 자신과 가장 잘 맞는 곳을 선택하곤 한다.
이러한 선택에 도움을 주고 가치관이 맞는 학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대안학교들은 학교설명회를 개최한다. 예비 입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학교가 지닌 '지도'를 설명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답답한 교복을 입기는 죽어도 싫으니 교복을 입지 않는 대안학교로 진학해야지, 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바로 이 설명회 당일에 학교를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작은 시골길을 따라 쭉 들어가자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 학교는 마치 실험적인 건축가가 빚어 놓은 작은 마을 같았다. 옹기종기 마주보고 있는 모든 건물이 오묘한 빛깔의 네모반듯한 흙벽돌로 단정히 지어져 있었고, 동시에 모든 건물에 커다란 창이 나 있어 별다른 조명을 켜지 않아도 학교 안이 줄곧 햇빛으로 가득 찼다.
길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을 따라 학교의 운동장 안으로 들어서면 형광 조끼를 입고 형광봉을 위아래로 휘두르는 봉사자들이 능숙하게 주차 공간을 안내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봉사자들이 모두 열네 살에서 열여섯 살 사이의 재학생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리면 또 다른 재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쪼르르 달려와 두 손을 모으고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반갑습니다."
그 뒤를 따라가면 접수처에서 명찰을 나누어 주는 또 다른 재학생 봉사자들이 이렇게 인사한다. "반갑습니다". 그 뒤에 서 있는 선생님들도 "반갑습니다", 복도를 지나가며 마주치는 학생들도 "반갑습니다", 심지어는 연단에 선 선생님조차도 마이크를 잡자마자 가장 먼저 "반갑습니다" 라는 말로 설명회의 막을 연다. 그날 학교 안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인사말은 "안녕하세요" 가 아닌, "반갑습니다"이다.
설명회 장소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학교의 '지도'에 관한 설명이 시작된다. 인문학 중심 커리큘럼, 다른 사람의 뒤를 맥없이 따라가기보다 스스로 짐을 챙기고 방향을 정해 나아가는 ‘능동적 사유’의 인간상,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사람....... 당연하게도 설명회에서 오가는 모든 단어를 처음부터 제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텍스트로 엿보는 학교와 몸으로 부딪혀 직접 경험해 보는 학교의 모습은 다르기 마련이니까. 오히려 설명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말 값진 정보는 학교의 분위기, 학생들의 표정과 말투, 실제 시설과 환경처럼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가늠할 수 있게 해 주는 비정량적인 퍼즐 조각들이다. 얼마나 많은 퍼즐을 모아 이를 어떻게 짜 맞출 것인지는 순전히 설명회에 참석한 학생들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설명회에서 얻어낸 퍼즐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어 보고 그 결과물이 마음에 든다면, 신입생 모집 시기에 맞추어 원서를 낼 준비를 시작하면 된다. 학교의 외관만큼이나 독특한 자기소개서의 문항을 채워 넣고, 마찬가지로 독특하기 짝이 없는 면접을 거쳐 합격 문자를 받게 되면 비로소 학교의 일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겨울이 막바지로 치닫을 무렵이면 학교에서는 예비 신입생들에게 문자 한 통을 보낸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참석 안내]
문자를 열면, 앞으로 맞이하게 될 새로운 학교에서의 삼 년이 막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한다.
다른 세상에서 하는 캠프, 오리엔테이션
대안학교는 학생들의 거주 형태에 따라,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기숙사형 대안학교'와 일과가 끝나면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통학형 대안학교'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 학교는 전국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며 모든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기숙사형 대안학교다. 2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주말마다 전교생이 귀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그 외의 주말에는 외출을 나가거나 학교 내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면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러니까, 한 달에 엿새 정도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다른 애들과 어깨를 맞댄 채 지내야 한다고?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모든 순간을 다른 애들과 붙어 지내야 한다고?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다 보면 합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온갖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 학년 애들은 어떤 애들일까?'
'나랑 생활 습관이 너무 다르면 어떡하지?'
'아........ 설마 이상한 애들 있지는 않겠지.'
3월이 점점 가까워 오고 수많은 궁금증이 점점 부풀어올라 터지기 일보직전이 되면, 신입생들이 학교에 모여 서로를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오리엔테이션 캠프가 열린다.
학교로 가는 길을 다시금 떠올려 보자. 기차역 또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뒤, 덜컹거리는 시내버스에 몸을 싣고 논과 밭이 사방으로 펼쳐진 한적한 도로를 쭉 달려야 한다. 이미 몇 번 와 보았지만 '정말 이런 시골에 학교가 있다고?' 라는 생각이 어김없이 다시금 고개를 삐죽 치켜들 즈음이면 학교의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작은 시골길로 꺾어 들어가면 일순간 저만치서 드드득, 드드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바로 캐리어를 흙길에 끄는 소리다. 그 소리가 들린다면 학교에 거의 도착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리드미컬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를 따라가면 캐리어를 끌고 줄을 지어 학교로 들어가는 다른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이고, 캐리어 행렬에 슬며시 끼어 운동장을 가로지르다 보면 자원봉사자 명찰을 찬 선배들이 곁으로 다가와 길을 안내해 준다.
오리엔테이션의 첫 순서는 당연히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다. 신입생들이 강당에 모두 모이면 선생님들이 앞으로 나와 한 분씩 자신을 소개하신다. 이후 학생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 주시며 다른 학생들의 앞에서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진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오리엔테이션과 비슷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리엔테이션이 제법 평범한데?' 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할 때쯤이면, 선생님들이 대뜸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까 이름 불렀던 순서 기억하지? 그 순서가 너희 노래 순서야. 이제 노래 연습하자."
처음 보는 애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라고요?
이곳에는 여러 해를 거쳐 내려오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다. 바로 신입생들이 입학식 당일, 모두의 앞에서 '노래'로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콘서트마냥 마이크를 쥐어 주고 한 명씩 노래 한 곡조를 뽑아내도록 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합창곡에 신입생 아이들의 이름이 가사로 들어가고,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대목에서 자기를 어필하는 제스쳐를 선보인 뒤 앉으면 된다.
<입학식 노래>, <안녕하세요 노래> 라고도 불리는 이 노래는 당연히 각 학년마다 서로 가사가 다르다. 앞으로 3년 동안 인원을 체크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노래가 꾸준히 활용될 예정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출석을 부를 때 이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며 누가 참석했고 누가 자리에 없는지를 세어 보곤 한다.
'자신의 이름이 가사로 나오는 대목에서 자기를 어필하는 제스쳐를 해야 한다'. 글로 적으면 쉬워 보이지만 사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동작을 한다는 건 열세 살짜리 예비 신입생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관문이다. 자연히 오리엔테이션 첫날에는 모든 아이들이 부끄러워서 죽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반복 앞에는 장사가 없기 마련이라, 계속 연습을 시키면 하나둘씩 창의적인 제스쳐를 들고 나오는 아이들이 있다. 와, 저 애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하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던 다른 아이들도 오리엔테이션 마지막 날이 되면 대부분 꽤나 뻔뻔하게 전방을 향해 하트를 날려 대곤 한다.
노래 연습과 더불어 오리엔테이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바로 학교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은 단연 각 공간의 이름이다. 이곳은 학생들이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는 형태의 이동 수업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의 모든 교실은 한 학급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교실이 아니라 특정 과목을 위해 만들어진 '과목 전용 강의실' 역할을 한다. 과목의 특성에 맞게 꾸며진 각 교실은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순우리말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꼭 그 이름으로 불러 주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교실을 ‘몇 학년 몇 반 교실’이라고 부르면 되레 이상한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교실 외에도 기숙사, 도서관, 공예실, 각종 활동을 위한 공간들이 모두 저마다의 이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이름들을 외우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학교를 처음 마주했을 때 떠올렸던 '실험적인 건축가가 빚어 놓은 작은 마을 같은 외관'이라는 이미지는 직접 두 발로 학교의 이곳저곳을 걸어 보고 나면 더욱 선명히 와닿는다. 모든 건물에 커다란 유리창과 채광창이 나 있고, 모든 장소에 넓은 공용 공간이 존재하고, 학교 곳곳을 풀과 나무가 채우고 있다. 게다가 사방에 문이 나 있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데만 해도 외워야 할 길이 여러 가지나 된다.
내 이름이 들어간 노래를 연습하고 학교를 열심히 돌아다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하루 일정이 끝나고 기숙사로 향할 시간이 다가온다. 처음 기숙사에 발을 들이면 '앞으로 삼 년간 이곳에서 살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휩싸이며 기분이 묘해진다. 학교의 다른 건물들이 그렇듯 기숙사 역시 개방된 넓은 공용 공간(로비)를 갖추고 있는데, 이 로비는 기숙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장소다. 오리엔테이션 일과가 얼추 마무리된 늦은 저녁이면 기숙사 로비에 모여 사감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기숙사의 규칙에 대해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진다.
안내가 끝나면 함께 로비에 둘러앉아 간식을 먹는데, 이때는 별도의 명찰을 차고 있지 않아도 누가 신입생이고 누가 2, 3학년 자원봉사자 선배들인지를 확연히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간식을 시큰둥하게 받아들고 먹는 둥 마는 둥 하면 높은 확률로 신입생이고, 간식 상자가 열리는 순간부터 입꼬리가 무심코 스르륵 올라가면 너무나 명백히 선배들이다. 신입생들이 조용히 간식을 먹는 동안 뒤에서는 가끔 이런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혹시 빵 안 먹을 사람?"
"그런 사람이 있겠냐고."
"그럼 혹시 나한테 음료수 양보할 사람?"
"있겠냐고."
오리엔테이션 일정 내내 뒤를 조용히 지키며 자신들끼리 소리 없는 만담을 보여주던 선배들은 어김없이 간식 시간에도 유쾌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남는 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가 먹네 네가 먹네 하며 피의 경매를 벌이곤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깟 간식이 뭐라고 선배들이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생활을 시작하면 외부 음식 반입이 금지된 이곳에서 간식이 화폐 단위 이상의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금방 느끼게 된다. 그날 본 선배들의 만담은 결국 우리의 미래가 되는 셈이다.
간식을 먹고 나면 각자 배정된 기숙사 담당 구역별로 향해 가볍게 청소를 한다. '청소를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능동적인 말이 무색하게도 청소의 9할은 선배들의 몫이다. 선배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청소해야 하는지 온갖 쇼맨십을 발휘하여 열심히 시범을 보이면, 신입생들은 온갖 종류의 청소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선배들의 시범을 보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열띤 성원을 보내야 한다. 청소가 끝나고 마침내 밤이 찾아오면 각자 배정된 방으로 향한다. 여러 명이 쪼르르 누워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다음날이 되어 있곤 하다.
이렇게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하루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지금껏 알던 세상과 전혀 다른 곳에서 벌인 짧은 캠프 같았던 오리엔테이션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아이들은 들고 왔던 짐을 고스란히 챙겨, 처음엔 어색하기 그지없었던 다른 친구들과 '그럼 3월에 다시 보자.' 라고 여유롭게 인사를 건네며 헤어진다.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그 인사엔 실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는 다음엔 더 많은 짐을 챙겨서, 더 큰 기대와 더 무거운 부담감을 안고,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다시 만나게 되겠지. 이제 우리는 집을 떠나 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이사를 올 준비를 해야 한다.
열네 살짜리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기대감과 최대한의 두려움이 이리저리 뒤섞인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덧 달력이 3월로 넘어가고 '이사 날짜'가 다가온다. 입학식이 찾아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