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학교는 흙으로 지어진 곳이었다.
물론 다 쓰러져 가는 낡은 흙벽을 떠올리면 안 된다. 그보다는 흙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고 독특한 건물을 상상해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흙으로 지어진 그 학교에 몸담던 시절, 우리는 매일같이 호미를 들고 학교 곳곳에 널린 잡초를 뽑곤 했다.
하늘이 고스란히 올려다보이는 거대한 원형 도서관에서 철학 토론 캠프를 열기도 하고,
매 해마다 전교생이 모두 함께 몇 날 며칠에 걸쳐 지리산을 오르기도 했다.
봄이면 학교 야외 공간 곳곳에 앉아 밥 짓는 연습을 하고, 겨울로 넘어갈 때면 김장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나를, 그리고 내가 살아온 환경을 소개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나는 이 말들을 그러모아 사용하곤 했다. 그럼 으레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뉘기 마련이었다.
정말 그런 학교가 있다고요?
혹시 외국에서 학교를 나오셨나요?
반쯤 농담하시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그 이후의 반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한결같았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했다.
물론 내가 처음부터 이런 식의 소개말을 내세운 것은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흙으로 지어졌다는 다소 당돌하고도 신선한 문장을 차용하기 이전까지는, 내 소개말은 이랬다.
"저는 대안학교 졸업생입니다."
그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대안학교는 일반 학교와 뭐가 다르냐고 묻거나,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대강 끄덕이며 다른 주제로 넘어가거나,
혹은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학교를 잠시 가늠해 보더니 "대안학교 출신 치고는 공부 열심히 했나 보네." 라고 말하거나.
어찌되었건 그들에게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한결같은 공통적인 반응이 있기는 했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남의 학교생활 들여다보기
남의 학교생활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나는 남들이 학교 다닐 때 어땠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수많은 취향 중 하나쯤은 어김없이 '남의 학교생활'을 다룬 작품일 것이다.
'해리포터'를 떠올려 보자. 그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비밀스러운 승강장에서 특급 열차를 타고 가면 나타나는, 네 개의 기숙사가 공존하는 마법의 학교 호그와트에서의 생활.
'하이 스쿨 뮤지컬'은 또 어떤가? 그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춤과 음악과 화려한 조명이 한데 어우러진 톡톡 튀는 고등학생들의 특별한 학교생활.
이뿐이랴,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 드라마, 소설은 '셀 수 없이 많다'라는 표현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처럼 상상 속의 학교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고 매력적이다.
상상 속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다 건너 먼 나라의 학교 이야기도 듣고 있노라면 제법 흥미롭다.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이런 걸 한다더라, 내가 뉴질랜드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거긴 아이들이 맨발로 잔디밭을 뛰어다니더라, 나 아는 친구는 체코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이렇다더라.......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과 한자리에 놓인다면 적어도 한 번쯤은 그 사람이 다닌 학교가 어땠는지 궁금해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학창시절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사람이 나온 학교가 일반적인 학교와 다르다면 더더욱.
그런데 잘 찾아보면, 바로 이곳 한국에도 별의별 학교들이 많다. 장담컨대 이 학교들의 이야기도 앞서 언급한 수많은 '학교' 이야기들만큼이나 독특할 것이다. 물론 이들 학교에 지팡이를 휘두르는 마법, 춤과 노래, 휘황찬란한 조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그 안에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독특한 수업의 이름이 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벤트가 있다. '잡초 뽑기', '철학 토론 캠프', '지리산 등반', '김장' 처럼 말이다. 이들 학교에서 보내는 하루는 일반적인 학교에서 보내는 하루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이토록 즐거운 학교들이 무수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학교들을 거쳐 간 많은 학생들은 이리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꺼내놓지 않은 채 묵혀 두고만 있다.
이들 학교가 '대안학교'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탓이다.
대안학교. 이 짧은 단어는 뿌리 깊은 편견을 동반한다.
비록 최근에 들어서 그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눈에 대안학교란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가는 학교', '어딘가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가는 학교', '공부는 뒷전이고 이상한 활동만 주야장천 시켜 대는 학교' 정도로 비칠 뿐이다. 물론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 자유분방한 경향을 지닌 대안학교도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니 말이다.
방금 막 인천공항에 발을 디딘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베트남은 다 거기서 거기네요. 다 같은 아시아 아니에요?' 라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 열에 아홉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아니, 아시아에 있다고 다 똑같은 나라인가? 아직 한국을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저런 말을 하지?
대안학교 학생이 '대안학교는 다 거기서 거기네. 좀 적응 못 하는 애들이 가는 곳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도 이와 같다. 애초에 '공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가는 학교'라고 해서 그릇된 것이 아닐 뿐더러, 대안학교라고 해서 모두 같은 대안학교가 아니다. 대안학교는 말하자면 하나의 대륙을 일컫는 단어이고,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대안학교들은 제각기 다른 하나의 작은 나라와도 같다. 같은 땅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 나라들의 실상은 사뭇 다채롭다. 그러니 대안학교 학생들의 말은 꼭 다음과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한국하고 중국하고 일본하고 베트남은 다르다니까요. 그것도 아주 많이."
분명히 재미있을 거라니까
특별히 좋아하는 나라나 여행지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 특정한 나라나 특정한 여행지를 사랑하게 된 계기를 기억하는가?
한 나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곳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의 공기, 그곳을 거닐며 보게 되는 이색적인 풍경, 여행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기분 좋은 기억들이 합쳐져 특별한 감정을 키워낸다. 단순히 그 나라의 언어가 무엇이고, 기후는 어떻고, GDP는 얼마이며 관광지는 어떤지를 마치 공부하듯이 달달 왼다고 사랑이 싹트는 것이 아니다.
대안학교라는 미지의 대륙도 그렇다. 대안학교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기술적 통계와 설명들로는 대륙 바깥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안학교를 둘러싼 편견에 제대로 맞설 수도 없다. 그러나 이곳이 어떤 모습들을 지니고 있는지,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떻게 채워지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면 장담컨대 분명히 재미있을 것이다.
'재미있을 것이다'. 그럼 된 것이다. 대안학교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소설을 읽듯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 읽고 재미를 느낀다면 이 책의 목표는 훌륭히 완수된 것이다. 해리포터, 하이 스쿨 뮤지컬, 그리고 그 밖의 무수히 많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처럼 말이다. 아니면 이 이야기를 그저 '한 나라에 관한 여행기' 정도로 여겨도 좋겠다. 대안학교라는 나라에 방문해 보지 않았던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는다면, 여행기로서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만일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단순히 재미를 느끼는 것을 넘어 대안학교에 관심이 생겨 더 알아보고 싶어진다면, 그리하여 '여행기 독자'에서 '예비 여행자'로 거듭나게 된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일 것이다.
'남의 학교생활'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었다면, 아주 가볍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겨 보도록 하자.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여행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