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에 가다] : 5월, 체육대회

일곱 번째 이야기

by 그린

체육대회 날 학교에 텐트를 치고 잔다고?

5월이 되면 학교는 산악등반 준비와 더불어 체육대회 준비로 다시금 분주해집니다.

체육대회라니! 학급별로 같은 티셔츠를 맞추고, 다른 학급과 경기를 벌이면서 순위를 매기고, 체육대회의 꽃인 이어달리기도 볼 수 있겠군요. 그런데 이곳의 체육대회는 그것과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체육대회에서는 어떤 장면을 볼 수 있을까요?


첫째 날, 공연과 바자회와 장기자랑과 캠핑

우리의 체육대회는 이틀에 걸쳐 진행될 예정입니다. 체육대회는 학생,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그리고 몇몇 이웃 주민 분들까지 함께 참석하여 즐길 수 있는 큰 행사를 목표로 진행되기 때문에 멀리서 오실 분들을 배려하여 일정을 이틀로 구성한 것이죠. 그래서 체육대회의 핵심 행사들은 주로 이튿날에 진행되고, 첫째 날에는 학생들끼리 즐길 수 있는 느낌의 프로그램이 주를 이룹니다.

때마침 무심코 창밖을 보니, 학교 건물 앞 발코니에 사람들이 가득 몰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저곳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한번 가 봐야겠죠?


이날에는 학교 야외 곳곳에 무대가 꾸려집니다. 바로 '길거리 공연'을 위한 무대입니다. 길거리 공연은 학교의 휴일이나 행사가 있는 날에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무대로, 오늘처럼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에는 반드시 길거리 공연이 함께 열리곤 합니다. 정식 동아리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임시로 결성한 팀, 소속이 없는 개인까지 누구나 자유롭게 공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의 공연을 위해 결성된 많은 참가팀들이 이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무대 근처를 에워싼 학생들은 밴드부가 무대에 오르면 손을 양옆으로 흔들며 함께 리듬을 타 주고, 댄스팀이 공연을 진행할 때는 열띤 환호와 박수로 맞아 줍니다. 비단 팀뿐만이 아니라 혼자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휘어잡는 보컬들도 여럿 구경할 수 있습니다. 공연과 더불어 학생회에서 피와 땀을 바쳐 준비한 음식 천막도 굉장히 큰 인기를 끄는 장소입니다. 모두가 평소 학교에서 구경하기 힘든 온갖 길거리 음식을 한아름 사들고, 학교 곳곳을 누비며 공연을 구경하고 영화도 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냅니다.

이때 학교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디선가 현란한 박수 소리와 재치있는 만담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그 소리를 따라가면 바자회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장소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온갖 행사와 간이 상점 운영 경험으로 물건 판매에 도가 튼 학생회 임원들이 입담을 자랑하며 열심히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입니다. 이전까지 기숙사를 돌며 미리 받아 둔 기증 물품을 좌판에 내어놓고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면, 근처를 지나는 학생들이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하나씩 고릅니다. 바자회로 마련된 기금은 겨울이 오면 있을 연탄봉사를 위해 기부됩니다.


체육대회는 전교생과 선생님들, 학부모님들이 각각 '청팀', '녹팀', '홍팀', '황팀'의 네 가지 팀으로 나뉘어 진행될 예정입니다. 첫째 날 오후에는 다음날 치러질 합동 경기를 위해 각 팀별로 모임을 가집니다. 학년이나 반의 구분을 두지 않고 순전히 무작위로 배정된 팀이지만, 가끔 학생회에서 경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몸을 쓰는 데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너무 한 팀에만 몰리는 것을 방지하는 소규모의 인원 재배치를 도맡기도 합니다. 각 팀은 저마다 하나의 장소를 정하고 만남을 가진 뒤, 응원 구호와 응원가를 정하고 피켓을 만드는 데 열중합니다.

응원 구호와 응원가라니, 문득 산악등반 조별 모임 당시가 떠오르지 않나요? 산악등반의 모든 조가 서로 유머러스한 팀 이름과 구호를 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것처럼, 이 시간에는 모두가 '다른 팀보다 유머러스한 구호를 정해야 한다'라는 일념으로 그동안 살아오며 축적해 온 유머와 센스를 모조리 내놓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어째서인지 이곳 학생들은 '이름을 정해라'라는 말만 들으면 자연히 '개그 코드를 겨뤄라'라는 말로 받아들이곤 하는 모양이네요. 실제로 체육대회 이튿날에는 어느 팀이 가장 유쾌하고 참신한 응원을 펼치는지가 실제 경기 우승 여부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하죠. 우렁찬 목소리를 내는 데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응원가를 구상하느라 정신이 없고, 반대로 섬세한 작업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학교의 미술실과 공예실에서 조달해 온 온갖 재료를 쌓아 두고 그 해의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피켓을 디자인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시간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가끔 원래 기획과는 전혀 엉뚱한 응원가와 피켓이 탄생하기도 하겠죠? 그런 엉뚱한 응원가는 몇 년이고 학생들 사이에 회자되며 그 응원가를 들어 보지 못한 후배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곤 합니다.


체육대회 첫째 날 밤에는 다음날 있을 대형 행사의 전야제를 겸한 장기자랑이 진행됩니다.

도서관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커다란 광장 같은 홀은 학교에서 가장 큰 장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오늘처럼 행사가 있는 날이면 도서관은 콘서트장으로 그 역할을 달리하게 됩니다. 도서관과 콘서트장은 전혀 접점이 없는 조합 같지만, 막상 밤이 찾아온 뒤 도서관으로 들어서면 실내 곳곳에 무대 조명과 장식이 세팅되어 정말 전문적인 무대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전교생이 도서관 홀에 모두 모여 자리를 잡으면, 이윽고 첫째 날의 하이라이트인 장기자랑이 시작됩니다. 실제 무대 조명이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개그/댄스/노래/보컬/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참가자들이 모두의 앞에서 무대를 선보입니다. 학교 측에서는 가끔 '장기자랑'이라는 취지에 맞게 '림보 대결', '과자 많이 먹기 대결' 등 실제로 장기를 자랑할 수 있는 막간 대회를 마련하기도 하는데, 이때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선방하는 재야 고수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부르고 응원도 하며 공연장 안의 열기를 더합니다.

밤이 더욱 깊어지고 도서관 천장에 크게 뚫려 있는 채광창 너머로 별이 보일 때쯤, 장기자랑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도서관에서 나오면 강당과 운동장에 텐트 여러 대가 줄지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치 캠핑장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모습은 저녁나절 도착하신 학부모님들의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별을 바라보며 캠핑을 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은 학부모님들과 학생 몇몇은 운동장 텐트에 자리를 잡고, 보다 아늑한 실내의 잠자리를 원하는 학부모님들은 기숙사나 강당으로 향합니다. 학부모님들의 방을 마련하기 위해 학생들은 원래 자신의 방이 아닌 다른 방으로 가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기도 합니다. 그럼 학생들은 으레 같은 학년끼리 한 방에 모여 밤새 떠들고 놀며 다음날을 맞을 준비를 하곤 합니다.


둘째 날, 마당놀이

둘째 날은 '체육대회'의 이름에 걸맞는 각종 행사가 펼쳐지는, 본격적인 대회의 시작입니다.

이날 아침 식당으로 향하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복작복작 모여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한 가족이 마주보고 식사를 하는 테이블도 있고, 학교를 방문한 졸업생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테이블도 있습니다. 그날만큼은 식당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누는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준비를 끝마친 이후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이면 비로소 둘째 날 체육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학교의 하늘을 가로질러 만국기가 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속한 팀의 색 조끼를 입고 준비운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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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가 시작되면, '마당놀이'라는 행사를 가장 먼저 진행하게 됩니다. 마당놀이는 학교 곳곳마다 열리는 코너 게임으로, 운동장, 교실, 기숙사, 기타 야외 공간 등 학교의 장소란 장소마다 작은 경기장이 설치됩니다. 각 경기장에서는 서로 다른 종목의 게임과 놀이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당놀이가 시작되면, 모두가 삼삼오오 모여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원하는 경기에 참여하고 점수를 따게 됩니다. 투호 던지기, 굴렁쇠 굴리기, 제기차기 등 전통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종목도 있고, 흙 높이 쌓기와 종이 빨리 뒤집기, 콘에 링 던져서 꽂기처럼 경쟁의 열기가 굉장히 후끈한 종목도 있습니다. 마당놀이에서는 스탬프 투어와 비슷하게 각 경기장을 방문할 때마다 책자에 도장을 찍어 주는데, 이 도장을 일정 수 이상 모은 사람에게는 상품이 지급됩니다.

마당놀이 이후에는 학생들이 단체로 참여하는 경기도 열립니다. 모두가 단체줄넘기, 공 튀기기, 줄다리기, 가족 마라톤 등 각자 자신이 맡은 경기에 출전하고, 이때 획득한 점수는 마당놀이 점수와 마찬가지로 각 팀의 점수에 반영됩니다. 점수 중에는 '참신한 응원 점수'도 존재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 순간을 위해 팀별로 모여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응원 피켓을 들고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구호를 외치는 등 열정적으로 응원을 합니다. 간혹 '저런 노래가 응원가가 된다고?' 싶을 만큼 의아한 노래, 이를테면 고요한 합창곡이나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즉석 창작 노래가 응원가로 변해 어디선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이어달리기가 시작되면 모두의 이목이 이어달리기 경기장에 집중됩니다. 이때는 운동장에 같은 색의 조끼를 입은 사람들끼리 모여, 네 개의 커다란 무리가 형성되곤 합니다. 자신의 팀 선수가 앞을 지나갈 때 온 동네가 떠나가라 응원을 해 주어야겠죠?


모든 경기가 끝나고 점수 합산이 완료되면, 비로소 우승 팀이 결정됩니다. 우승 팀에게는 각종 간식을 비롯한 큰 상품이 주어지지만, 우리의 학교에서 '혼자 맛있는 것을 먹는 일'이 터부시되리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때도 되었죠. 당연히 우승하지 못한 팀에게도 아이스크림 등의 간식이 주어집니다. 더불어 가장 많은 가족과 지인이 참여한 학생에게도 특별 상품이 전달되는데, 평소에는 형제자매와 서로 투닥거리던 학생이라도 특별 상품을 받게 되면 혈육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 주곤 합니다. 시상식이 끝나면, 우승 팀은 축하를 하고 다른 팀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다들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손에 든 채 뒷정리를 하고 시끌벅적했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체육대회가 끝나면 전교생이 집으로 돌아가 사흘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부터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곧장 산악등반 준비에 매진해야 합니다. 1학기의 가장 큰 행사나 다름없는 산악등반이 가까워 올수록 학교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질지 한번 살펴볼까요? 5월의 중순으로 넘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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