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에 가다] : 4월, 인문학과
스포츠와 등산

여섯 번째 이야기

by 그린

토요 인문학

인문학적 소양을 추구하는 대안학교에 인문학 수업이 없다면 말이 되지 않겠죠? 어느덧 학교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인문학 수업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핏 보면 '인문학'이라는 이름은 너무 포괄적이고 막연하게만 느껴져, 수업에서 무엇을 다루는지 잘 감이 잡히지 않기도 합니다. 인문학 수업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앞서 알아보았듯 이곳의 학생들은 2주에 한 번씩 무조건 귀가를 하게 되어 있으며, 원한다면 매주 주말마다 집을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자진해서 집에 가지 않는다면 격주에 한 번씩은 주말을 학교에서 보내게 됩니다. 매 학기마다 시행 요일이 조금씩 바뀌지만 대부분 인문학 수업은 학교에서 보내는 주말의 토요일에 진행되기 때문에, <토요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문학에서 다룰 수 있는 하위 분야가 실로 다양하듯, 토요 인문학 시간에 개설되는 수업 역시 실로 다채롭습니다. 학생들은 매 학기 초 원하는 수업을 선택하여 수강 신청을 진행하게 되는데 간혹 인기가 많은 강좌는 인원이 넘쳐 몇몇 학생들이 수강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이 토요 인문학 수업은 주로 외부 초청 강사가 진행하며, 일부 강의는 학교 선생님이 직접 구성하고 진행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강좌 몇 가지를 한번 살펴볼까요?


희곡으로 탐구하는 타인과 소통: 희곡과 연극을 탐색하며 연극 내의 문학성에 내재된 타인과의 소통 방법을 배웁니다. 실제로 연극 대본을 작성해 보기도 합니다.

영화로 역사 탐구하기: 역사의 주요 시기별로 당대의 시대상을 가장 잘 반영한 영화 또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를 선정하여 시청하고 분석하며, 영화학적 지식과 역사적 안목을 모두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하나를 선택하여 해당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의 대본을 직접 창작하는 활동도 진행합니다.

세계의 식문화에 담긴 문화권 특징 탐구: 세계 각국의 식문화를 분석하고 해당 식문화의 배경, 문화적 맥락을 알아봅니다. 직접 해당 요리를 만들어 보는 실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늘 인기가 많습니다.

자아를 표현하는 글쓰기: 다양한 문학적 표현 기법을 배우고, 희곡과 소설 및 기타 문학 장르를 탐독하며 문학적 감수성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후 배운 바를 응용하여 스스로의 내면에 대한 성찰적 글쓰기를 합니다.

건축 인문학: 책과 영화 등에 등장하는 건축물에 초점을 맞추어, 해당 건축물이 책 및 영화의 내용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토론합니다. 건축물의 제작 과정을 추론하고 보완법을 찾기도 하며, 실제 재활용품 및 사물을 이용하여 건축물 모형을 작업하기도 합니다. 과자를 이용해 집을 짓는 활동도 진행하기 때문에 식문화 강좌와 마찬가지로 항상 간식에 진심을 다하는 이곳의 학생들에게 인기가 굉장히 좋은 편입니다.

인문학 입문: 매년 1학년 학생들이 1학기 동안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토요인문학 강좌입니다. '인문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게 느껴질 신입생들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에서 발췌한 대목을 읽고, 그와 연관된 주제로 생각을 나누며 글을 쓰는 기본적인 활동을 진행하며 인문학적 사유에 익숙해지게끔 하는 시간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강좌가 제공되며, 매 학기 개설 강좌에는 조금씩 변동이 생깁니다. 세부 분야와 구체적인 진행 방식은 다르지만, 토요인문학의 많은 수업들은 텍스트를 통해 지식을 얻는 수업보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인문학적 가치를 경험적으로 받아들이는 목표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적이나 성과에 전혀 얽매이지 않으며 '체험'에 방점이 찍히는 시간이기에, 학생들도 참여 자체가 곧 배움이라는 부담 없는 마음가짐으로 인문학 수업에 임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인문학 수업이 끝나면 자유로운 주말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도 학생들이 가볍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하게끔 하는 데에 한몫하죠.



스포츠클럽

매주 특정한 요일, 주로 수요일이나 금요일 중 하루에 진행되는 스포츠클럽은 모든 학생이 각자 하나의 스포츠 부서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시간입니다. 축구, 농구 등 대중적인 스포츠는 늘 인기가 높아 가입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는 부서이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독특한 스포츠 부서들이 존재하는데, 몇 가지를 꼽아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승마부는 늘 학교 바깥으로 원정을 나가기 때문에 학생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부서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실제 부원들에게서 '바닥에 떨어질까 봐 늘 불안하다', '말이 인간에게 적대적이다', '간이 두 개라면 시도해 보아라' 라는 증언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죠.

요가부는 가장 고요하고 평화로운 부서입니다. 운동장과 학교 근처의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조금 동떨어진 채, 아늑한 실내에서 평화로운 음악과 함께 요가를 진행합니다.

나비골프부는 그 이름부터 특이해서, '저 부서는 대체 뭐 하는 곳이야?'라며 학생들의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부서입니다. 이 부서에서는 골프공을 가볍게 하고 코스 및 규칙을 일부 변형하여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한 '나비골프'를 학교의 곳곳에서 진행하곤 합니다.

하이킹부는 학교 근처의 길을 코스로 정해 일정 시간 동안 도보로 이동하는 부서입니다. 다른 학생들이 '너희 부서는 뭐 해?'라고 물을 때 '응, 그냥 걸어.' 라고만 대답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사실 풍경을 바라보며 한적한 길을 걷기도 하고 정말 심신의 단련을 목적으로 정자세를 갖추어 빠르게 걷기도 하는 등 엄연히 다양한 방법으로 운동을 하는 부서입니다.


해당 스포츠의 기본기에 대해 배우는 초반부 수업 몇 회가 지나면, 대체로 선생님들은 최소한의 관리감독만을 담당하며 자율권이 자연히 학생들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학생들은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경기를 진행하기도 하고, 개인 연습을 하는 등 스포츠클럽 시간을 알차게 보내곤 합니다. 다만 이따금씩 부원들이 합심해서 교실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다거나 체력 단련을 가장한 다른 놀이를 하는 등 작은 일탈이 벌어질 때도 있죠.






방과후학교, 토요인문학, 스포츠클럽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 달력이 4월의 중순으로 넘어가고 있군요. 이 무렵부터는 온 학교가 한 해의 학사 일정 중 가장 큰 규모의 프로그램이나 다름없는 '산악등반'의 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산악등반이라니, 전교생이 모두 산을 오르기라도 한다는 걸까요?



지리산 산악등반 준비

지나가는 학생들을 아무나 붙잡고 학교의 일 년 행사 중 가장 큰 것을 꼽아 보라고 한다면, 많은 학생들이 단연 '지리산 산악등반'을 먼저 이야기할 것입니다. 매년 5월이 되면 전교생은 조별로 나뉘어 3박 4일 동안 지정된 코스를 따라 지리산을 등반하게 됩니다. 능선을 따라 산을 오르고, 직접 밥을 짓고, 대피소에서 잠을 자며 행군을 거듭하는 것이죠.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행사지만 동시에 학생들로 하여금 많은 추억을 쌓고 서로 돈독해지게 하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산악등반을 한 달 앞둔 4월부터 온 학교가 일찌감치 등반 준비를 시작하곤 합니다. 간혹 스포츠클럽 시간이 산악등반을 위한 체력 훈련 시간으로 변하기도 하죠.


조 배정

산악등반 준비 과정부터 지리산 완등까지의 모든 과정을 함께할 사람들이 바로 산악등반 조원들입니다. 그래서 이 무렵 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산악등반 조 편성 발표입니다. 전교생이 아홉 개의 '가족'이라는 8~12명 정도의 작은 그룹으로 편성되고, 이 '가족'이 세 팀씩 모여 다시 A조, B조, C조라는 큰 팀을 이루게 됩니다. 누군가와 같은 '가족'에 배정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산악등반 내내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서로의 온갖 초췌한 몰골을 여과 없이 보게 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죠. 학생들이 산악등반 조 발표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누군가 '조 발표 떴다!'라고 외치고, 교무실 앞 게시판에 학생들이 북적이기 시작한다면 산악등반 조 편성이 막 공지된 것입니다. 인파를 헤치고 조 배정표를 확인한 뒤에는 조별 모임을 위해 강당으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도 강당으로 함께 가 볼까요?


조가 편성된 이후에는 전교생이 강당으로 모여 올해의 산악등반 진행 일정에 관한 안내를 듣고 기본적인 안전교육을 받는 시간을 가집니다. 안전 교육을 받은 이후에는 조별로 둥글게 모여 앉아 조의 이름과 구호를 정하고 상징 깃발을 디자인하는 사전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매년 이 조별 모임 시간은 일종의 개그 코드 경연대회처럼 여겨져, 많은 학생들이 서로 가장 위트있는 조 이름과 구호를 고안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내곤 합니다. 작년과 중복되는 작명을 피하기 위해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물어 가며 사전조사를 하는 학생들까지도 보이는군요. 조별 회의 시간이 끝나면 각 조가 순서대로 단상에 올라 조의 이름과 구호, 동작을 발표할 차례입니다. 다른 학생들의 반응이 어떤지에 따라 그 해에 가장 인상적인 이름과 깃발을 구상해낸 조가 어디인지 암묵적으로 정해진다고 보면 되겠죠? 구호 시범을 보일 때 조금이라도 성의 없는 태도를 보였다가는 선생님들에 의해 끝없이 구호를 반복해서 외쳐야 하는 무한 순회 공연을 펼치게 되니 자신의 순서가 되면 열심히 임해야 합니다.


하루나들이

조 편성 이후에는, 학교에서 꽤 떨어진 거리에 있는 저수지 공원까지 도보로 다녀오는 '하루나들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설명만 들으면 그냥 하루 동안 가볍게 산책을 다니는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학교 근처는 모두 넓은 논과 시골길,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 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실상 트레킹 코스를 따라 단체로 이동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하루나들이 동안 각 조는 담당 선생님의 인솔 하에 어떻게 대형을 유지해야 하는지,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조원을 어떻게 통솔해야 하는지 등을 배우고 연습하며 도보 이동을 하게 됩니다. 실제 산을 오를 때 신발 때문에 생기는 부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리 등산화를 신고 걸어 보기도 하죠. 마냥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시간 같지만 사실 한 줄 내지는 두 줄의 대형을 유지하며 오래도록 걸어야 하는 이 시간이 학생들에게는 마치 일종의 레크리에이션 시간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앞뒤 사람과 담소를 나누고, '369 게임'을 비롯한 각종 놀이를 하는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도보 이동 시간을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별것 아닌 끝말잇기도 이 순간만큼은 가장 재미있고 역동적인 경기가 되죠. 길을 가는 도중 적어도 한 번씩은 꼭 넓은 공터나 그늘막, 정자 등에 잠시 멈춰 모두가 함께 쉬어 가곤 합니다. 미리 가져온 작은 과자와 초콜릿,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은 하루나들이의 묘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취사체험

학교에서 한 달여간 생활하고 나면 신입생들은 가사 노동에 제법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전교생이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빨래와 정리정돈도 당연히 직접 하며, 온갖 도구를 사용해서 청소를 하는 데 나름 익숙해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취사체험 날이 되면 그간 정복해 온 가사노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합니다. 바로 직접 밥을 짓는 것입니다. '취사체험'은 이름 그대로, 산 위에서 직접 밥을 지을 때를 대비하여 미리 취사를 연습하는 시간입니다. 학교 야외 공간이 각 조에게 배정되고, 조별로 실제 지리산 등반 때 지참할 냄비, 버너, 각종 식기류와 기타 재료를 가지고 체계를 정해 밥을 지어야 합니다. 대개 학생들은 밥을 짓는 팀, 국을 끓이는 팀, 기타 반찬류를 준비하고 식기류를 준비하는 팀, 설거지 및 뒷정리 담당 팀으로 일을 분담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밥솥 없이 밥을 지을 수가 있냐고 묻던 1학년이, 시간이 흘러 눈대중만으로도 기막히게 물의 양을 조절해서 밥을 지어내는 '인간 압력밥솥' 이라는 별명을 가진 3학년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식사 준비를 모두 끝마친 뒤 조원들이 다함께 바깥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직접 차린 밥을 먹는 순간은 꼭 소풍을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취사체험의 백미입니다.


체력단련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초등학생의 나이로 지리산 정도의 산을 올라 본 경험이 있는 학생은 몹시 드뭅니다. 이에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로 산을 올랐다가 낙오되거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학교에서는 꾸준히 체력 단련을 시킵니다.

주로 산악등반 한 달 전을 기점으로, 학생들은 아침 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침 운동은 각 기숙사별로 진행되며, 대개 운동장을 돌거나 기숙사 로비에서 함께 트레이닝을 하곤 합니다. 여자 기숙사와 남자 기숙사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운동장을 돌게 되면 일어나자마자 눈곱도 떼지 않고 후줄근하게 나와 운동을 하는 서로의 모습을 열심히 비웃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답니다.

스포츠클럽 시간을 이용해서 체력 단련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체조와 가벼운 달리기를 하며, 학교 바깥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산악등반 준비의 모든 과정에 걸쳐 체력이 중요한 자질이 되기 때문에, 조장은 주로 가장 체력과 책임감이 좋은 학생을 투표로 선정하게 됩니다. 다만 조장은 암묵적으로 등반 시에 가장 많은 짐을 드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조장에 선정된 학생들의 당선 소감은 다소 슬픈 편입니다.






4월이 지나가고 5월이 오면, 선선한 봄바람이 슬며시 따가운 햇살로 변해 가곤 합니다. 산악등반이 머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산악등반에 앞서 맞이해야 할 5월의 큰 행사가 하나 더 있다고 합니다. 과연 5월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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