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에 가다] : 5월, 산악등반

여덟 번째 이야기

by 그린

산악등반 일주일 전

학교의 공기가 사뭇 달라진 것이 느껴집니다. 산악등반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산악등반 일주일 전부터는, 어린 학생들이 높은 산을 완등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자칫 한순간의 부주의가 큰 안전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탓에 안전교육과 체력단련에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됩니다.


모든 학생들은 각 조별로 담당 선생님들께 실제 산에서 고립되었을 경우, 부상자가 발생했을 경우, 경로를 이탈했을 경우 등의 각종 사고에 대비하여 안전교육을 받습니다. 또한 지혈하는 법, 붕대를 매는 법, 골절이나 기타 부상을 입은 환자에게 해야 할 처치 등에 관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가족별로 담당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여 조장, 부상자 담당 팀장, 후발대 등의 체계를 정하고, 산을 오르며 선두부터 후발대까지 짧은 시간 안에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신호를 정합니다. 이 무렵부터는 전부터 지속해 오던 아침운동과 체력단련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이전까지는 서로 농담도 주고받는 유쾌한 분위기가 허용되었다면, 산악등반을 일주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는 학생들이나 선생님들 모두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진지하게 체력단련에 임하게 됩니다. 누군가 성의 없이 참여하면 질책을 서슴지 않기도 합니다. 한 명이라도 불성실한 태도를 보일 경우 안정적인 대형이 갖추어질 때까지 훈련을 반복하게끔 하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체력 단련 시간에는 정말 열심히 참여해야 합니다. '산악등반 기간에 살이 가장 많이 빠진다' '산악등반이 다이어트 황금기다' 와 같은 농담이 학생들 사이에 오가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죠.


메뉴 선정은 산악등반 준비에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절차입니다. 각 가족별로 3박 4일의 일정 동안 산에서 어떤 음식을 어떻게 해 먹을 것인지를 정하는데, 평소 가족별 모임에서는 조용하던 학생들도 이때만큼은 놀라운 열정을 발휘하여 메뉴 선택에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곤 합니다. 조리가 복잡하고 많은 재료가 필요한 메뉴는 가져가야 할 짐을 늘리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특식'은 신중하게 배치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메뉴 선정이란 각자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적절한 선을 택해야 하는 심오한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메뉴 선정이 완료되면, 하루를 정해 산악등반에서 사용할 물품과 식료품을 구입하러 각 가족별 대표 학생이 학교를 나서게 됩니다.

버너, 냄비, 쌀, 각종 그릇과 조리 도구, 비상 의약품, 여분의 등산복, 손전등 등 다양한 물품의 구비가 끝나면 비로소 개인에게 짐을 분배하고 산악등반 가방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등반을 할 수 없는 학생들은 별개의 조에 편성되어, 다른 학생들이 하산하여 도착할 산장으로 미리 향합니다.



산악등반 당일

드디어 산악등반 날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갈 길이 멀고 미리 확인해야 할 사항도 많기 때문에 이 날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합니다. 대체로 1학년 학생들은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내가 정말 산을 오르나?'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도 연신 "우리 진짜 산 올라?" "너무 떨리는데?" 등의 말만 반복하곤 합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가면 학교 운동장에 세 대의 큰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교생이 각자 자신의 등산가방을 챙기고 운동장에 모이면 가볍게 준비 운동을 하고 복장과 장비를 최종 점검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때 선배들은 자신의 가방 및 장비뿐만 아니라 후배들의 장비 상태도 수시로 체크해 주어야 합니다. 점검이 모두 끝나면 차례로 자신이 속한 조의 버스에 오르는데, 세 개의 조가 각각 서로 다른 코스로 등반을 하기 때문에 각 버스 역시 다른 길로 접어들게 되므로 다른 조의 버스에 타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떠들썩한 버스에 몸을 싣고 한참을 달려가면 저만치에 지리산 능선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때 막연한 걱정으로 가득 찬 버스 안의 1학년들이 다시금 동요하기도 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말 산악등반의 시작입니다. 버스에서 내린 뒤 3학년들은 등산이 처음인 1학년 학생들의 복장과 안전장비를 거듭 확인해 줍니다. 이후 조별로 대형을 갖추어 여러 단계의 준비운동을 끝마치면 조장과 담당 선생님을 선두로,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게 됩니다. 나무 발판과 비교적 평탄한 계단을 오르는 초반에는 그저 집 근처 야산의 산책로를 오르는 기분이라 예상 외의 수월함에 당황할 수도 있지만, 험난한 바위길이 펼쳐지면 비로소 정말 '산책'이 아닌 '산악등반'을 하게 되었다는 실감이 날 것입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미끄러운 바위나 나무 뿌리에 발을 잘못 디딜 때도 있고, 정식 등산로가 아닌 것 같은 길로 접어들 때도 있습니다. 대개 1학년 학생들은 등산을 처음 해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반에 굉장히 힘들어하는 순간이 잦습니다. 그럴 때면 으레 조장과 부조장이 각각 행렬의 처음과 끝을 담당하며 후배들의 상태를 수시로 살피고, 적절히 휴식시간을 안배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짐을 대신 들어 주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 후배들의 짐을 덜어 주는 3학년 학생들도 몇 년 전에는 선배들에게 짐을 덜어 받았던 연약한 새내기였습니다. 1학년 때는 짐은 커녕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던 학생들이 학교에서 몇 년을 살다 보면 후배의 짐을 대신 들어 주는 선배로 자라나 있기도 하는 것이죠.

체력적으로 한계가 온 조원이 있거나 모두가 지쳤을 때면 잠시 멈춰서 휴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바람 한 줄기에 땀을 식히며 마시는 물은 살면서 마셔 본 모든 음료수 중 가장 맛있다는 느낌을 주곤 합니다. 이후 비슷한 과정을 반복하며 목적지를 향해 거듭 산을 오르는 행군이 하루 종일 지속됩니다. '산을 올랐다'라는 문장 하나로 설명이 끝나는 대목이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발걸음과 땀방울이 들어 있을지는 직접 산을 올라 본 사람만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피소

산악등반 기간에는 매일 밤 지리산의 대피소 중 한 곳에서 숙박하게 됩니다. 대피소는 일종의 산장 역할을 하는 국립공원의 거점으로, 예상한 시간 전까지 대피소에 낙오자 없이 무사히 도착하면 그날의 등반은 끝인 셈이죠. 산길 너머로 대피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려옵니다.


대피소에 도착한 뒤 짐을 풀고 나면 곧장 저녁식사 준비에 돌입해야 합니다. 멀리 수돗가에서 물을 길어 오는 담당, 밥을 짓는 담당, 자리를 확보하고 식기를 준비하는 담당 등 미리 정해 두었던 역할대로 모두가 바삐 움직입니다. 물을 길러 멀리 수돗가에 다녀오길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가끔 다른 산악회 일행이나 등산객들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 오기도 합니다. 주로 "몇 살이니?" "어느 학교에서 온 거니?" 와 같은 일상적인 질문들이죠.

산 위에서 밥을 짓는 것은 학교 운동장에서 밥을 짓는 취사체험과 천지 차이이기 때문에, 주로 밥을 담당하는 3학년 학생들의 책임이 더욱 막중해집니다. 물의 양을 적절히 조절해서 무거운 돌을 냄비 위에 올려놓고 조심스레 뜸을 들이며 오랜 시간 지켜봐야 하죠. 간혹 삼층밥이 지어지면 그날 누군가는 갈색으로 탄 밥을 하릴없이 씹어야 합니다. 대피소에서는 해가 일찍 지기 때문에, 제때 취사를 끝내고 저녁식사를 신속히 마쳐야 합니다. 하루 종일 고생한 다음 멀리 산등성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먹는 밥은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훌륭하다 못해 감동적인 맛을 냅니다.

식사를 마친 저녁나절에는 각 조별로 활동지를 작성하고 소감을 정리합니다. 산악등반은 단순한 등산이 아닌 '자연인문체험학습'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각 조별로 등산에 관해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추어 등산 소감을 풀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생태 환경과 자연 보호 등의 주제를 선택하고 지리산에 서식하는 생물종을 유의 깊게 관찰하며 등산하거나, 지리산에 얽힌 전설 및 일화를 미리 파악하고 그런 일화가 생겨나게 된 배경을 산의 지리적 구조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는 식입니다. 해가 저물고 산 위의 바람이 차가운 칼바람으로 변하면 대피소 안에 옹기종기 모여 각 가족별로 하산 이후 있을 발표를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합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논의이지만, 사실 실질적인 회의는 몇 분 되지 않고 조원들끼리 웃고 떠들며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를 이루곤 하죠. 대피소 소등 시간이 가까워 오면 모두들 일렬로 누워 수다를 떨다가 잠에 들게 됩니다. 참, 이곳에서는 씻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정말 자연과 하나가 되는 셈이네요.



산악인이 되어 보자

보통 첫째 날은 산을 올라 대피소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셋째 날은 하산하는 것을 주된 코스로 삼습니다. 그럼 3박 4일의 일정 동안 둘째 날에는 무엇을 할까요?


보통 둘째 날에는, 다음 대피소로 이동하기 전 지리산의 명소인 노고단, 천왕봉 등을 거쳐 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산악등반의 핵심 코스나 마찬가지인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등산 코스를 거치는 만큼, 수많은 등산객과 산악회 일행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산을 오를 때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을 만나면 항상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더 힘내라"와 같은 응원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목적지가 한참 멀리 있더라도 장난삼아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며 힘을 북돋아 주는 등산객들도 계십니다. 하산하는 길에 등산객을 만나면 몇몇 학생들은 저만치서 올라오는 다른 등산객들을 향해 똑같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종종 산길이나 대피소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체로 산 위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은 다른 대안학교에서 온 경우가 많은데, 학교마다 학생들의 성향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라 가끔 그 학교 학생들이 뿜어내는 너무나 낯선 아우라에 압도당하기도 합니다.

'여기를 가 보지 않았다면 지리산을 올라 봤다고 말할 수 없다!' 라는 소리를 듣는 명소라는 뜻은,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높고 험준한 봉우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날은 모두가 바짝 긴장하고 안전에 주의해서 산을 올라야 합니다. 하지만 올라가는 과정이 수고로운 만큼, 정상에는 이전까지 등산하며 본 것 중 가장 멋진 경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완등 기념으로 조가 모두 함께 모여 비석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가족별 깃발을 흔들며 사진을 찍습니다. 힘들게 올라온 정상인 만큼 그곳에서 보이는 드넓은 하늘과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겠죠? 각자 정상에서 자유롭게 풍경을 만끽할 시간을 가집니다.



하산, 산장에서의 발표회

셋째 날은 그토록 갈망하던 지상으로 내려가는 날입니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다른 조 친구들도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아침부터 제법 들떠 있곤 합니다. 험준한 코스를 올랐던 지난 일정보다 비교적 체력적으로 수월한 편이지만,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안전사고가 잦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미리 익혀 두었던 신호와 구호를 잊지 않도록 주의하며 조심스레 하산을 시작합니다. 산길의 경사가 점점 낮아지는 것을 느끼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의 걸음이 한결 경쾌해지고 빨라집니다.


산을 내려오면, 지리산 인근의 큰 펜션으로 향해 마침내 모든 조가 한자리에서 만나게 됩니다. 화장실 수도꼭지를 틀면 세차게 나오는 물줄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다들 그동안 씻지 못했던 찝찝함을 콸콸 나오는 수돗물에 흘려 버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저녁식사를 준비합니다. 고된 산악등반을 마쳤으니 모름지기 특식 중에서도 최고의 특식을 먹어 줘야겠죠? 실제로 많은 조가 이날 저녁을 '만찬'으로 삼기 때문에 펜션의 취사장에서는 요리 경연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지곤 합니다. 산 위에서 줄곧 밥을 뜸들이는 일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던 각 조의 취사 담당 학생들이 가장 열정을 불태우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리가 완성되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꼬질꼬질 초췌한 모습이었던 아이들이 다시 멀끔한 모습으로 나타나 산장의 넓은 야외석에 하나둘씩 자리를 잡습니다. 모두가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끌벅적해지고, 저마다의 조에서 등산 중에 있었던 일을 공유하거나 다른 조의 음식을 얻어먹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저녁식사를 마치면, 정해진 시간까지 펜션의 강당으로 모여야 합니다. 등산 소감과 더불어 각 조의 주제에 맞게 구상한 발표를 모두의 앞에서 보여줄 시간입니다. 발표 방식에는 전혀 제한이 없기 때문에 각 조와 가족들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발표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차분한 성향의 학생들이 많이 모인 조는 주로 '산을 오르던 중 이러이러한 힘든 일이 있었고, 누구에게는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라며 소감문을 읽는 정적인 발표를 보여줄 때가 많은데, 등산 중에 있었던 일과 그때의 감정을 구구절절 읊는 이 소감문은 산악등반이 너무 힘들게만 여겨졌던 학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마음을 울리곤 합니다. 반면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조는 펜션에 머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소품까지 준비해 와 혼신의 힘을 다한 연극을 모두의 앞에서 선보이기도 합니다. 이때 의도치 않게 연기로 모두를 웃겼거나 명대사를 외친 학생은 남은 일 년 내내 친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조가 채택하는 발표 형태는 바로 주제를 가사에 녹여낸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으로, 가장 호응이 좋은 발표 방식이기도 합니다. 모든 조가 발표를 마치면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학교 측에서 준비한 피자와 치킨 등의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밤을 맞습니다. 5월의 가장 큰 행사가 마무리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로써 상반기의 가장 큰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산악등반을 끝낸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 각자의 방법으로 휴일을 즐기고 돌아오는 동안, 학교는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달려갈 준비를 합니다. 이곳에서 맞게 될 첫 번째 여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해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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