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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훈 Sep 28. 2023

운명론자로 살게 된 이유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맞서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몇이나 될까?"

.

나의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와 같은 근거 없는 푸념과는 달리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진장 많으며, 조금 과장하면 웬만한 것들은 전부 뜻대로 할 수 있다.'가 되겠다. 그럼에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마음'이 원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의지만 있다면 어느 정도는 다 가능하다. 하루아침에 10억 생기기는 안되지만 '돈을 잘 벌기'는 가능하다. 세계 정복은 어렵지만 세계 일주 정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쉬이 가능한 때다. 심지어 타고난 외모부터 성별, 이름, 주민번호까지 전부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부자 되기', '세계 일주'와 같은 것들을 선택하지 않는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싶겠지만,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적당히 친구들도 만나며 쉴 땐 쉬고 싶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정도만 벌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전 세계를 누비며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지만 그 뒷감당이 두려워 올겨울 일본 여행으로 퉁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운명'이 정한다.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 할 수 있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정작 어떤 마음을 먹게되느냐는 알 수 없다.


심한 수준은 아니지만 비교적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봐야 하고, 궁금한 것은 직접 알아봐야 하는 유형의 사람인 내가 다 부딪혀보며 느낀 점은 '하고자 하면 신기하리만큼 웬만큼 다 되더라'라는 것이다. 나는 군대를 전역 후, 또래 친구들에 비해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당시에 하고 싶은 것들 중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그 어느 것도 해당 사항이 없었다. 글 쓰고, 말하고, 기획하고, 만드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유명 작가는 될 수 없었지만 독립출판 정도는 할 수 있었고, TED는 아니어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는 될 수 있었다. 제안서와 기획안을 쓰고 공모전에 나가며 언젠가 나의 아이디어들이 실제로 이뤄지는 날들을 꿈꾸며 대학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현재의 나의 모습에 꽤나 만족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의 안정을 찾기까지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매일같이 이 선택이 맞는지를 고민했고,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어느 한 날은 서점에 가서 청년창업에 관한 책과 NCS 교재를 같이 사려한 날도 있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더 이상 내가 하는 일,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럴 '운명'이기 때문이다.


기획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참 우연찮은 기회에 생겨났다. 대학교 2학년 즈음에 모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학생 교육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해 PPT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사님은 PPT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대학 생활 당시 본인이 했던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진로에 대한 조언과 동기를 주는 가이드이자 선배로서의 역할도 해주셨기에, 하루는 강의 이름을 'PPT 강의'가 아닌 '(PPT를 곁드린) 대학 생활 컨설팅'으로 바꾸는 게 어떻냐는 농담 섞인 제안도 드린 적이 있다. 그의 삶은 너무나 나를 두근거리게 했고 심지어 PPT를 배우며 내가 백지를 채우는 것에 변태 같은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지금도 나는 글자들로 채워지는 이 화면을 보며 알 수 없는 쾌락에 빠지고 있다. 그렇게 나는 기획자가 되었다.


내가 자라 온 환경은 기획이나 크리에이티브와는 거리가 멀다. 짐작건대 아직도 부모님은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실듯하다. 이 일을 얼마나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큰 맥락적인 부분에서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바뀐다 하더라도 성향 자체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며, 낯을 잘 가리지도 않는다. 어른들과의 자리에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잘은 몰라도 어린 시절을 조부모님과 함께 온 친척이 대가족을 이루며 보낸 영향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한다. 이렇듯 나의 성격 또한 진로와 마찬가지로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겪게 된 경험에 의해 결정되었다. 종종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류의 질문들을 주고받을 때가 있는데 나는 언제나 '없다'라고 말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지금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들을 잃기 싫음이 있다. 집 앞에 있던 성당에서부터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 친구들, 군대, 대외활동 그리고 직장에서까지 참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큰 위로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또한 내가 선택해서 만난 친구들은 아니었으며, 현재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들에게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운명론자라 칭하게 되었다.


운명론자라 했을 때 마치 대충 살아가며 모든 선택의 기로를 운명에 맡기는 듯한 오해 섞인 어감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이들도 있다. 그저 그 선택을 할 운명이었던 것이지,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소 자극적이면서 동시에 무기력하게 들릴 수도 있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는 내가 처한 환경들이 모두 운명임을 인정하고서야 비로소 컨트롤 가능한 것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시간을 소모한 적이 많았고, 결코 생산적인 행위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은 그럴 운명이었던 것으로 인정해버리고 할 수 있는 것에 투자한다. 이렇게 나는 운명론자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


위 글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현생 1회 차 한 20대 청년이 기록하는 일, 사람, 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또 다른 이에게는 공감이 또 다른 이에게는 지난날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춘기록 #청춘을글이다 #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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