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웰컴이안 Dec 02. 2023

둘 사이가 달라도 너무 달라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엔 #5

여자에게는 얼마 전 처음 만나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호감이 있긴 하지만, 몇 번 만남밖에 없었던 터라 아직까지는 긴가민가하는 마음입니다. 오히려 이쯤 되는 관계가 더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훌쩍 지나 새벽이 되었습니다. 늦은 새벽이지만 그 남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봅니다.


책을 읽다 보니 새벽도 지나서 날이 밝으려 해요. 
창밖을 보니 깎고 버린 손톱 모양 같은 초승달이 떠있네요!     


마음 설레며 그 남자 답신 문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지금 그 달을 보고 있어요' 라든가, '새벽까지 잠 안 자고 뭐 하고 있어요. 무슨 생각해요?' 라든가... 달콤한 상대 답변을 기대하고 말이죠. 너무 늦은 새벽에 보내 혹시나 자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잠깐 들었지만, 기대에 부푼 마음이 더 컸습니다. 답변 문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기 진동이 울리며 문자메시지 수신 신호가 보였습니다. 어떤 내용이 왔을까요? 새벽 감수성 깃든 사랑의 메시지였을까요? 하지만 그 남자에게 온 문자는 기대감을 무너뜨리는 문장이었습니다. 연애 센스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답변이었죠. 


지금 시간에 뜬 달은 초승달이 아닙니다. 
지구 자전 때문에 그믐달에서 상현 부분이 일부 일그러져
초승달처럼 보이지만 북반구에 위치한 한반도에서 보이는 달의 형태는...    

 

맙소사! 이 여자는 갑자기 머리가 띵했습니다. 새벽까지 잠을 못 자서 머리가 어지러운 건지, 그 문자를 보고 머리가 아픈 건지 괜히 심란하기까지 했습니다. 늦은 새벽에 달을 보고 있노라고 감성에 빠진 문자를 보낸 이성에게 고작 한다는 말이 지구 자전이라니요! 이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면 밀고 당기는 ‘밀당’도 뉴턴이 주장한 운동의 법칙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판입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알아듣게끔 문자를 보낼까 고민해 봅니다. 제대로 고민녀가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관두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이미 이 남자에게 끌리는 데 어쩌겠습니까!   


인간관계 중 특히 남녀관계 둘 사이를 맞추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한쪽은 초승달을 이야기하는데, 한쪽은 달과 지구 사이의 역학을 이야기하면 둘 사이는 말 그대로 망망대해 우주에서 서로 정반대로 떠돌게만 됩니다. 괜히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닙니다. 남녀가 살아온 행성은 실제 우주 속 거리만큼 멀리 떨어져 보일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두 행성이 가까워질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기회가 분명 생깁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별똥별처럼 뜨겁게 불타오르며 두 행성이 만날 수도 있는 거고, 몇 백 년만의 우주쇼처럼 행성이 나란히 가까워질 수도 있는 거죠. 아마 그녀도 그 남자가 유성처럼 불타오르길 바라고 있을 겁니다.  

    

맷 데이먼이 주인공으로 연기한 영화 <마션(Martian)>을 보신 분 계세요? 마치 이공계 남자를 빗댄 유머러스한 이 문자를 보니 이 영화가 생각납니다. 화성 탐사에 나섰다가 조난당한 한 남자 생존 모험을 그린 영화입니다. 괴짜 과학자의 깨알 같은 유머가 영화보다는 원작 소설에서 빛을 발하죠.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앤디 위어(Andy Weir)입니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우리로 치면 전형적인 이공계 남자였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글을 아주 잘 썼던 모양입니다. 자신 블로그에 오랜 시간 동안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를 올립니다. 블로그를 읽던 독자들의 요청으로 전자책이 만들어지고, 정식 소설로 출간되고, 급기야는 영화 제작까지 됩니다. 그만큼 소설이 재미있습니다. 기발하고 내용이 유머러스합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작가 마인드가 분명히 보입니다. 바로 낙관적인 희망과 유머입니다. 이것들이 읽는 이를 기분 좋게 합니다. 

              

   

누군가 이런 유머를 말하더군요? 사과를 보면 뭐가 떠오르냐고 물었을 때 뉴턴과 만유인력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공계 전공자일 확률이 높다고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백설공주를, 윌리엄텔을, 아이폰을 생각하기도 하겠죠. ^^)


 아마 위에 언급한 남자에게 사과를 건네주면 사과가 왜 떨어지는지를 역학적으로 여자친구에게 몇 시간 설명할 태세입니다.  부디 이 남자가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처럼 뜻밖의 유머로 여자를 기분 좋게 해줬으면 하네요. 반전을 기대해 봅니다.



# 회사에서도 금성과 화성 간의 거리처럼 좁혀지지 않는 의견 충돌이 자주 있죠

# 그때 무조건 평행선처럼 거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 마션의 작가처럼 좀더 여유있고 낙관적으로 봤으면 좀더 수월했을텐데요


☞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엔 '여는글' 다시 보기

작가의 이전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