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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만큼이나 값비싼 캐나다 영주권의 가치

주유소에서 산 3000불짜리 꿈

by K 엔젤


퇴근 길 버스 안


아침부터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Central Surrey 역에 도착했다.

리치먼드에는 중국인, 코퀴틀람에는 한국인, 그리고 써리에는 인도 사람들이 많이 산다.

처음 가본 Central Surrey 역은, 문을 나서는 순간 잠깐 혼란이 왔다.

“여기가 인도인가, 캐나다인가?”

출근길인 듯한 인도인들, 책가방을 멘 인도인 학생들, 모두 분주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캐나다에 있지만, 동시에 인도 한복판에 떨어진 기분. 잠시 역 안 공기의 향까지 다르게 느껴졌다.


캐나다에 늘어나는 인도인들. 결국 그 숫자가, 캐나다 영주권 점수를 점점 더 높이고 있는 것 아닐까.

능력 있고, 영어 점수 높고, 경력 점수까지 탄탄한 사람이라면 영주권 따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구를 생각하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인도 사람들, 과연 이들 모두가 영주권을 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캐나다에 눌러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불법적인 방법으로라도 여기에 남으려는 인도인들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명이 영주권을 따는 데 성공하면,

사돈에 팔촌까지 줄줄이 캐나다로 들어온다.


나와 같이 칼리지를 다녔던, 그리고 얼마 전까지 같은 집에 살던 룸메이트 아렌.

그는 전형적인 인도 펀자비 출신 MZ세대였다. 캐나다에 오는 것 자체를 성공이라고 믿고,
컴퓨터 전공 지식이 전혀 없음에도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하면 영주권이 쉽다”는 말 하나만 믿고
칼리지에 등록했다.

학기 중엔 주유소 알바로 생활비를 조금씩 모으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가던 아이였다.

며칠 전, 아렌의 소식을 들었다. 학교는 이제 거의 끝나고 Co-op만 남았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학기 수업을 모두 Fail 했다는 것이다.


캐나다 유학생 규정 상 한 과목을 fail 하면 다음 연도에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하고 졸업 후 받는 3년짜리 워크퍼밋 발급에도 문제가 생긴다.

개나 소나 졸업하는 칼리지 수업을 패스 못했다고?


원래 캐나다 법적 절차대로 라면 아렌은 pgwp도 발급받을 수 없는 상황이고 캐나다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야렌은 변호사를 써서 pgwp를 발급해주는 학교 위조 된 사립학교 입학 허가서를 3000불이 넘는 비용을 주고 샀다고 했다. Pgwp 발급받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 후 전공 관련 회사에서 경력을 쌓아야지 영주권 신청을 할 수가 있다. 특히 컴싸 전공 같은 경우엔 나중에 c o op(유급 인턴) 하려는 회사도 찾기 힘들 텐데 어떻게든 잘 되겠지 하는 낙천적인 인도 친구 아렌.


개나 소나 졸업한다는 칼리지 수업을 패스 못했다고? 원래 법적으로라면, 아렌은 PGWP도 발급받지 못하고 캐나다를 떠나야 한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를 통해, 위조된 사립학교 입학 허가서를 3천 불이 넘는 비용으로 샀다고 했다. 문제는 PGWP가 아니다.

그걸 받은 뒤 전공 관련 경력을 쌓아야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다. 특히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은 Co-op(유급 인턴) 자리 구하는 것부터가 전쟁이다. 그런데도 아렌은 낙천적이었다.

“컴퓨터 관련 IT 회사 취업해야 하는 거 아냐?”
내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I can pay some money to get green card.

Gas station also can give me green card.”


돈만 있으면, 인도인이 운영하는 주유소에서도 영주권을 살 수 있다는 아렌. 이 방법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찾는다. 지름길을 만들어내는 데는 특유의 유연함이 있었다.

나와 함께 의료 행정을 공부한 인도 친구들 중에서도 정작 병원에 취업한 사람은 소수다.
그 많은 학비를 내고 칼리지를 졸업한 인도인들, 고국으로 돌아갈 리는 없다. 전공이 뭐든 상관없다. 돈만 내면 뒷구멍으로 영원히 캐나다에 남는 방법, 그 비밀의 지도를 다들 쥐고 있는 것 같았다. 알면 알수록, 인도인들의 뒷배경이 더 궁금해진다.


잡 인터뷰를 보고 집에 오는 길, 타이밍 좋게 문자 한 통이 왔다.

번호를 저장해 두지 않아서 처음엔 누군지 몰랐다.
“적어도 네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지 없는지만 알려줘.”

문자를 계속 보내는 그 사람. 누구냐고 물어보니, 나와 같은 수업을 들었던 인도 친구, 쿠키랏이었다.

조별과제를 같이 했던 남자애. 몇몇 수업에서 사례비를 줄 테니 프레젠테이션 좀 대신 해줄 수 있냐고 했던 그 애. 그리고 그때 나는 공짜로 해줬다.

그가 말했다.
“나 아직 일자리 못 구했는데, 너 일자리 찾았어?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처음엔 그냥 무시하려 했다. 캐나다의 인도인들, 눈치는 없지만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그래서 결국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
간단한 안부 인사 후, 통화는 이렇게 끝났다.
“네가 전에 일하던 매니저한테… 나 좀 추천해줄 수 있니?”

학교 졸업한 지 5개월. 연락 한 번 없던 사이가 다짜고짜 이렇게 일방적으로 부탁을 한다.

캐나다의 인도인들, 그 뻔뻔함에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닌가 보다.

어제 글을 쓰면서 “인종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자”고 다짐했는데, 역시 쉽지 않다.

인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최근 유입 키워드를 보면 ‘인도 성격’, ‘인도 사람’ 같은 검색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인도 거짓말’로 검색하는 걸 보면, 한국인들이 인도인에게 느끼는 감정은

긍정보다는 부정의 비율이 더 높아 보인다. (이게 반가운 소식인지, 슬픈 소식인지.)

특정 인구의 급격한 유입을 막기 위해, 캐나다 정부도 2024년 새 이민정책을 내놓았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 앞자리에 귀여운 인도 애기가 앉아 있었다.

똘망똘망한 큰 눈을 가진 아이. 사실 인도든 한국이든, 애기 때는 다 똑같이 귀엽다.

유학생 인도 애들 틈바구니 속에서 유치원 때부터 캐나다에서 교육받고 자라는
이 캐나디안 인디안 2세 꼬마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애는, 아무래도 내가 칼리지에서 만난 인도 애들과는 다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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