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고 뻥친날

뻥은 짧고 캐나다의 현실은 길다

by K 엔젤


다시 Lab 수업을 듣게 된 날.

필리핀 강사 앞에서 내 소개를 하고, 실습에서 어떻게 탈락하게 됐는지 처음부터 설명했다. 수업 방향에 대해 듣는데, 다행히도 이 강사는 말이 분명했고 평가 기준도 명확해 보였다. 무려 4년이나 강사 경력이 있다니, 그 말 한마디에 괜히 조금은 안심이 됐다


물론 위로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같은 아시안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필리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인에게 관심이 많고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그 사람 눈빛에서 이상한 위로 같은 게 느껴졌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버티는 거 쉽지 않지? 그래도 넌 할 수 있어. 실습, 내가 꼭 통과시켜 줄게.”

사실 그 말이,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인 내가 그냥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혼자 하는 일이 편한 성격인데, 이 직업을 택한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그나마 덜 하기 싫은 일이었기 때문이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꽤나 개인주의적이고, 누군가랑 같이 맞춰가며 일하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실습에서 떨어져 보니까 나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나는 ‘누구랑’ 일하느냐가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보건분야에서는 팀워크 중심으로 일이 돌아가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잘해도 주변 분위기가 안 맞으면 진짜 버겁다. 실습이 힘들 수밖에 없던 이유가 너무 많았다. Lab 수업도 마찬가지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2~3명씩 짝지어서 평가받는 구조라, 같이 듣는 학생들도 중요하다.


역시나, 교실 문을 여니 예상대로 클래스의 90%는 인도 친구들이다. 붙임성 좋고, 친화력 좋은 건 기본이다. 대부분 20대 초중반 파릇파릇한 친구들이고, 삶의 에너지와 의욕이 넘쳐 보였다. 나도 한때 무모하게 도전했던 적이 있었다. 나를 향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호기심 폭발이다


지금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살려고 하고 있고 설사 열심히 살아도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 같지 않아서 두려울 때가 많다. 20대 친구들은 아직 겁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있고, 그 열정과 가능성만으로도 참 부럽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모든 사람들에게 적대적일 필요는 없다. 친절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가 인간관계 제1원칙이라고 했던가.


"어제 수업에선 못 본 것 같은데 너 왜 어제 수업 안 나왔어?"


나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은 친구들에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안녕! 난 실습에서 떨어져서 다시 수업 들으러 왔어.

너희도 긴장 풀지 마. Lab은 진짜 아무것도 아니고, 진짜 전쟁은 실습이야.”


내가 실습에서 떨어졌다고 말하자 순간 애들 표정이 정색으로 바뀐다.
“진짜야? 실습 그렇게 어려워?”

"실습처 이름이 뭐였어?'
“지도자 이름 뭐야?”
질문 폭탄이 쏟아진다.


“그냥 내 실습 지도자가 좀 까다로웠던 거야. Lab 수업에서 제대로 배우면 문제 될 거 하나도 없어. 즐겨~”

그러자 갑자기 분위기가 싹 바뀐다. 처음엔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내 말 한마디에 진지 모드 ON. 아침까지만 해도 집중 안 하고 자기끼리 웃고 떠들었는데 갑자기 강사 말도 귀 기울여 듣는 게 딱 느껴졌다.


'그래, 내가 너네들한테 도움이 되면 좋지 뭐. 너희들만이라도 살아남아라.'


쉬는 시간엔 애들이랑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있었는데, 길 가던 여자들 두 명이 내 유니폼을 보더니 말을 건다.

여기 학교예요? 무슨 수업 듣는 학생들이에요?"

나는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서 “저요? 닥터예요.”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진지하게 “진짜요?” 묻는다.


하하, 농담이에요. 간호조무사 수업 듣고 있어요.”

그러더니 자기도 하고 싶다면서, 학교 등록 어떻게 하냐고 묻는 흑인 아줌마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내가 또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 순간, 현타가 찐하게 온다. 아니,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개나 소나 다 들을 수 있는 이 수업에서 나 혼자 탈락해서 다시 듣고 있는 중이라니.


생각해 보면 긴장만 좀 덜했어도, 내 고집만 안 부렸어도 이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강사가 실수에 몇 번 눈감아줬고 기회 한번 더 주었을 때 시킨 대로만 했으면 무난히 통과했을 텐데. 탈락하고 나서야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왜 나는 꼭 똥인지 된장인지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는 걸까?


그래도 다행인 건, 한 번 겪어본 경험 덕분에 이번에는 처음보다 훨씬 덜 막막했다. 예전에는 시험 전날 긴장 때문에 밤잠을 설쳤는데, 이번엔 훨씬 괜찮았다.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예전만큼 크지 않다. 사람들이 왜 선행학습에 집착하는지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간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필리핀 강사에게 말했다.

“기회 한 번 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께 많이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물었다.
“수업은 매일 와야 하나요?”
그랬더니,
“응. 파이널까지 총 10번 다 들어야 해.”


수업일수를 다 채워야 한다니.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필코 내가 이 과정을 마쳐야 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캐나다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야 한다.


한국도 요새는 많이 바뀌고 있지만 특히 캐나다는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일을 하는 나라다. 특히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맞벌이 안 하고 살 수가 없고 할 일이 없는 능력 없는 여자는 병 X 취급받는다. 이곳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기대서 사는 것은 꿈도 못꾼다. 그래서 나도 은퇴 전까지 계속 일을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독립적인 여성을 꿈꿔온 나에게,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이자 성장이다. 앞으로 백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캐나다에서 지내며 분명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나 자신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힘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keyword
이전 14화떡갈비가 나를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