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은 신입답지 말 것
이곳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어시스티드 리빙(Assisted Living), 스스로 생활은 가능하지만 식사, 청소, 간단한 건강관리 같은 일상 지원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지내는 곳이다.
다른 하나는 장기요양(LTC, Long-Term Care), 거동이 어렵거나 24시간 의료·간호·개인 케어가 필요한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LTC는 다시 North Building과 South Building으로 나뉘는데, 각 빌딩에는 12명의 어르신이 생활한다.
Orientation은 총 여섯 번.
모든 빌딩, 모든 시간대를 직접 돌아다니며 몸으로 익히는 구조다.
‘설명 듣고 메모하는 시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설 전체를 외우는 생존 훈련.
누가 옆에서 붙어서 알려주지 않으니, 알아서 ‘적응 중입니다’ 티를 내야 한다.
오전에는 먼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사용법을 다시 배웠다.
약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기록하고, 특이사항이 있으면 log에 짧게 메모하는 방식이다.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동시에 절대 실수하면 안 되는 구조였다.
이 과정을 놓치면 누군가 약을 못 받거나, 잘못된 약을 받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약 배부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먼저 처방전의 이름을 확인하고, 환자 본인에게 맞는 약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 다음 약을 건네주고, 약을 받은 사실을 서류에 서명(Sign)으로 남긴다.
마지막으로, 환자가 약을 실제로 삼키는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서야 다음 환자에게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할 만해요’라는 말은 이젠 믿지 않는다.
이 일에서 할 만하다는 말은,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라온다는 뜻이니까.
어느 순간, 이곳에서 2년 일했다는 메이린이 나를 불렀다.
할머니 한 분 샤워시키는 걸 도와달라고 했다.
샤워 가운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겨드리고, 샤워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
특별히 뭘 한 건 아니지만, 그 공간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피로가 밀려왔다.
샤워가 끝난 뒤엔, 치매 있으신 할머니 한 분을 식당까지 모셔다드렸다.
몸을 일으키는 게 힘들어 보여서 잠깐 안아드렸는데, 사실은 그냥 너무 외로워 보여서였다.
그걸 본 recreation 강사가 다가와 말했다.
“지나씨, 그분 치매 있으신데, 뭐 하시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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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심장이 턱 내려앉았다.
잘못한 건 아니라 생각했지만,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실수는 행동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아, 이 사람은 이 상황을 잘 모르는구나’라는 인상을 주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엔 약 나눠주는 걸 혼자 해봤다.
누가 밥을 먹는지 명단을 확인하고,
무전기에서 콜이 오면 이름을 확인한 뒤 약을 건네는 일.
“이름 꼭 확인하세요. 잘못 주면 안 돼요.”
그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기서는 ‘한 번쯤 실수할 수도 있지’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절대 들으면 안 되는 변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