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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고 했지만

말 많은 사람이 부럽다

by K 엔젤

점심시간, 식당의 소음이 약간 잦아들 무렵, 패티가 나에게 물었다.

“어땠어요, 오늘 일?”


나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결국 단어 하나만 꺼냈다.

“Good.”


짧고 무난한 대답. 나 자신조차 그 말에 아무런 확신도 담지 못했다.

패티는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익숙한 웃음, 피곤을 감춘 미소.

순간, 속으로 되묻고 싶었다.


“그 웃음, 진심이에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여유 있게 웃는다.

‘괜찮아, 너도 곧 익숙해질 거야’라는 표정을 하면서.

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 내내 마음이 정신없었고,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버나비에서 출근했어요. 오늘 끝나고 방도 보러 가야 해서요. 하루가 길겠네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나름대로 솔직하게.


패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도 버나비에서 살았었다고 했다.

지금은 이 근처로 이사 왔다며, 자연스럽게 집 얘기로 이어갔다.


나는 그 대화가 부러웠다. 말이 많은 사람은, 뭔가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쉬는 시간에도 할 말이 많은 사람. 그 자체가 부러웠다.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한 근무는 정확히 오후 3시 30분에 끝났다.

숫자만 보면 ‘딱 8시간’이라는 단순한 시간표.

하지만 그 안에서 겪는 순간순간은 8시간 이상이었다.


3시쯤, 나는 폰 충전이 필요해서 사무실로 돌아갔다.

OT 서류에 매니저 사인도 받아야 했고,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충전기를 깜빡한 나에게 패티가 조용히 자신의 충전기를 건네줬다.


"Thank you, you saved my life."


말은 조금 오버 같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진심이었다.

내 하루 중 가장 다정한 장면이었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간호사가 나에게 물었다.

“시프트 받을 준비 됐어요?”


나는 순간 긴장이 됐다.

아, 벌써 그렇게 보이는 걸까.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이 근처로 이사 오면 시프트 더 자주 줄 수 있을 거예요.”


표정은 친절했지만, 그 말 안에는

‘더 일할 준비됐지요?’라는 묘한 확인이 섞여 있었다.

처음이라 실수할까 봐 걱정하면서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기준은 이미 저만치 앞서 있었다.


그 간호사는 Mavis에게도 말을 건넸다.


“내일 너 혼자 일하는데, 괜찮겠어?”


나는 순간 움찔했다.

‘벌써? 혼자 시켜?’

속으로 작은 경계심이 스쳤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시작되는 비교.

‘Mavis가 나보다 더 잘하나? 더 빠르게 적응했나?’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이런 상황에선 자연스럽게 비교가 고개를 든다.


나만 느린가 싶고, 나만 눈에 안 드는 건가 싶고.

나만 아직 '검증 중'인 건가 싶고.


근무가 끝날 무렵, 리셉션 여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언제 일할 수 있어요?”


나는 조금 숨을 고르고 나서 대답했다.

“버스만 있으면… 가능한 한 자주요.”


사실 그 말은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일단 여기서 버텨보고 싶다’는 간절함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말보다 표정,

능력보다 태도,

기억보다 생존감각이 더 빠르게 판가름 난다.


지금은 그저, 보이는 모든 말과 표정을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익히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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