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카드 찍! 생존모드 ON
6번의 오리엔테이션 중 마지막 두 번은 야간 근무다. 간호 업무 특성상 3교대 근무가 일반적이어서, 오전과 오후 오리엔테이션은 끝났고 이제 오버나잇 시프트만 남았다.
야간 근무는 힘들다. 근무 전에 잠시 눈을 붙이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일어나 샤워를 한 뒤, 미역국과 만두를 먹었다. 하우스메이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밥을 싸 들고 집을 나섰다.
현재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에 있는 하루카는 이번 달을 끝으로 일본으로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하와이에 간다고 했다. 다음 주 목요일에 귀국하는데, 나는 목·금·토 모두 출근이라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허그로 인사했다. 한국식 정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이야.
밤 9시 10분에 출발했다. 내가 근무하는 Delta 지역 특성상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고, 시간 맞춰 오는 일도 드물다. 환승 버스는 15분 뒤에 있었고, 목적지에는 11시 45분쯤 도착할 예정이었다. 계산해 보니, 그냥 걸어도 지도상으로 11시 45분에 도착 가능했지만, 버스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결국 빨리 걸으면 40분에도 도착할 수 있겠다 싶어 걸었고, 나중엔 뛰었다.
헥헥거리며 겨우 11시 35분에 도착했는데, 문은 왜 이렇게 안 열어주는 걸까. 문 밖에서 “나야, 문 열어줘” 하고 계속 외쳤더니 안에서 “누구라고??” 한다. 나는 “오늘 여기서 일한다고, 플리즈 플리즈!” 하고 말하자, 그제야 느릿하게 문이 열렸다. 출근 체크를 빨리 해야 하는데 속은 이미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밤 11시 37분, 겨우 출근 체크를 하고 화장실에서 숨을 고른 뒤, 사수 Jaspal에게 인사했다. 원래라면 15분 전에 와 있어야 하지만, 오늘 나는 최선을 다했다.
바닥 한 번 걸레질하고, 과일을 잘라놓으면 된다고 했다. 내가 늦어서 과일 자르는 건 보여주지 못했더니, “이 일 처음이야?”라고 묻는다. “네, 여기서만 일해요.” 그러자 그는 여기서 3년, 델타 병원에서 25년 일했다고 했다.
호출기 사인인하고 BM(bowel movement) 문서를 작성한 뒤, 호출기를 보며 대기했다. 사수가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라고 하더니, 1시가 되자 이불을 덮고 누웠다. 나는 그 옆에서 “이불은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Storage.” 가서 가져왔고, 나도 소파에 앉아 이불을 덮고 잠시 잤다.
자기 전, 배가 고파 요플레 하나를 먹고 3시쯤에야 눈을 붙였다. 소파는 침대로 변신했고, 첫 오버나잇 근무의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아침이 되자 사수가 “일어나”라고 깨웠다. 나도 일어나 Ruth와 Irene을 깨워 옷을 갈아입히고, 화장실에 보내고, 아침으로 땅콩버터 바른 빵과 과일, 계란을 가져다주었다. 커피도 내려주고, 나도 졸음을 깨려고 한 잔 마셨다. 차트 기록과 소프트웨어 케어 시스템에 다큐멘테이션도 완료했다.
오전 7시부터 7시 30분까지는 자스팔과 수다 타임이었다. 나는 “여기 정규직 되려면 얼마나 걸리나요?”라고 물었다.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병원도, 지금 이곳도 오픈 시기라 운 좋게 들어가 두 달 만에 정규직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래 일한 사람들이 잘 안 나간다고 했다. “모든 건 운이야.” 그래도 시프트는 많이 주고, 리치먼드 지역도 많이 뽑는다고 귀띔해줬다. 리치먼드? 메모.
야간 근무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오전 7시, 시간이 더 안 가는 구간이라며 자스팔이 네 버스 언제 오냐고 물었다. 그 질문이 마치 “가고 싶으면 지금 퇴근해도 돼”라는 신호 같아 안심이 됐다. 버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바로 5분 뒤에 한 대가 있었지만, 양심상 7시 30분에 오는 두 번째 버스를 탔다.
퇴근하려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들어왔다. 오전에 나를 트레이닝해 준 조이였다. 눈인사만 살짝 주고받고, 나는 버스를 잡기 위해 냅다 달렸다.
버스카드를 ‘찍’ 하고 찍는 소리, 꼭 오징어게임 참가 버튼 누르는 소리 같다.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돈 한 푼이라도 벌면 사는 기분이 드는 건, 아마 다 똑같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