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 엔젤 Jan 07. 2024

 노숙자 센터에도 아침은 와요

우리가 새해를 맞는 방법

내가 지금 사는 캐나다 Barrie 에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아침이 되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직장에선

새해 축하 문자를 서로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


새해에도 여전히 나는 이곳 노숙자 들과 하루를 같이 한다.


정확히 2023년 11월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그들과 함께  한지도 대략 1년이 넘었다.


사실 한국이었다면 나같이 사람에 대해서  변덕잘 느끼한 일에 싫증을 잘 내는 성격으론 같은 곳에서 1년을 일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단지 집과 가깝다는 이유에서 시작한 이 사회복지사 일을 아직도 하고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가끔은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이곳에서 오래 근무하는 이유 생각해 보니 다음과 같다.


집과 가까운 거리

캐나다처럼 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내가 추운 한겨울에도 일을 다닐 수가 있는 이유는 일하는 곳이 집에서 불과 버스로 10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출퇴근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차로는 4분, 걸어서는 35분 걸린다. 가끔가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 걷고 싶을 때나 아침 근무가 잡히면 조깅하는 느낌으로 그냥 일터까지 걸어갈 때도 있다. 지난여름엔 오후근무를 하는 날엔 일이 끝나고 바람을 쐬고 싶으면 집으로 걸어오곤 했다. 과연 내가 집과 일하는 곳이 가깝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이 일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있는 지역에서 보통 최저시급이 넘는 알바를 구하기 쉽지 않은데 이곳에서 일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학교도 이제 학기만  놓은 상태다.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방학기간에도  돈을 벌 수 있게 해 준 이곳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영어를 나보다 잘하는 노숙자들

캐나다 노숙자들이 다 영어를 하니까 이곳에서 일하러 오는 게 마냥 싫지많은 않은 것이다. 만약 같은 일을 해도 모국어인 한국어로 일을 했다면 서로 의사소통이 너무나도 잘되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여기서는 일할 때 어차피 외국어인 영어로 서로 말을 하기 때문에 노숙자들이 가끔 나한테 소리를 지른다거나 신경질을 부려도 별 타격감이 없는 것이다. 웬만하면 그냥 무던하게 지나가는데 내가 들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굳이 꼽자면 새로 입소한 흑인 남자가 하는 말을 듣고 반응이 없는 그 애가 비웃으면서 무리 속에서 나를 겨냥해 한말이 기억에 남는다.


"She is  staying quiet because she doesn't understand what we are talking about

내가 자기네들끼리 떠들 때 아무 말 안 하고 쳐다보고 있으니까 날 무시하고 한 말이다. 직접적인  차별이라기 보단 동양인이라서 영어를 못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돌려서 깐 것인데 이렇게 간접적으로 인종차별을 받아도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이 하는 말에  악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당황스러운 상황이지만 아무렇지 않고 담담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싸울 때나 수다스럽게 떠들고 있을 때는 호기심이 발동해 어떤 단어를 쓰 귀를 쫑긋 열게 된다. 내가 모르는 영어 표현을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일을 해결하는데 나로서는 불쌍한 사람들도 돕고 영어도 배운다고 생각이 드니  일하러 오는 발걸음이 오히려 즐겁다.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

이곳에서 일하는 게 즐거운 또 한 가지 이유는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많은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면서 살아간다.  일하면서 보면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깊은 지식에 내가 감탄하게 된다. 문학작품을 좋아하는 Mike는 시집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마음에 드는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는 게 취미라고 한다. 그러고선 자기가 그동안 썼던 구절이 담긴 노트 몇 권을 나에게 보여주는데 그 구절을 외우면서 신나 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나에겐 너무나 흥미롭게 느껴졌다.


10대 시절 영화감독이 꿈이었다고 한 저스틴은 항상 도서관에서 사는 독서 광이다. 침대에 올라가면 불 꺼지기 전 11시까지  베리 서 빌려온 추리소설을 읽는데 사회 모든 분야에 해박한 지식이 있어 대화를 시작하면 정보가 끊임없이 나오는 아주 머리가 비상한 청년이다. 예전에 영화 기생충이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난 후 기생충을 넷플릭스에서 보고 기생충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외국영화가 되었다면서 나에게 외국인의 관점에서  그가 말한 기생충의 아쉬운 점을 말해주었다. 영화의 결말 부분이 관객의 상상에 맡겼으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스토리가 전개되는 방식이 좋았던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의 창의력이 수많은 독서에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을 읽는 Mike 와 추리소설 광신도 Justin

이 외에도 이곳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취미생활을 즐긴다.

20살의  풍부한 감수성을 가진 요조숙녀 Sarah는 며칠 전부터 캐나다 중학생들이 배우는 수학 문제를 풀다가 잠이 든다. 내가 왜 수학문제를 풀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수학문제를 풀면 희열을  느끼고 무엇보다 잠이 잘 온다나 뭐라나. 초등학교 다닐 때 수학을 제일 좋아했다고 하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자기는 자기 새엄마처럼 중학교 수학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수줍게 웃는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 신문을 정기구독해 잠들 때까지 신문을 읽는 필립 아저씨는 요새 핫한 캐나다와 인도의 관계에 아주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요새 이 아저씨의 주된 관심사는 과연 캐나다가 인도 비자 발급을 언제 풀어주는가라고 한다. 캐나다 사람들 중에는 너무 많은 이민자를 받는다고 생각해서 캐나다 총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필립 아저씨는 물불 안 가리고 어느 분야에서든지 열심히 일하는 이민자들이  캐나다 경제를 살리는 거라며 자기는 캐나다 문호를 외국인들에게 개방하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면서 나에게 자기는 다시 태어나면 캐나다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캐나다의 복지가 엉망이라고 쥐스탱 캐나다 총리를 욕을 하는 노숙자들을 많이 본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캐나다가 헬케나다 인 것이다. 내가 참 살기 좋다고 생각하는 캐나다 사람도 자기 나라 욕을 하는구나 하고 놀란 적도 있다. 


우리나라를 아무리 헬조선이라고 외쳐도 한국에서 좋은 직업 갖고 돈 잘버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태어난 것에 만족을 한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든 간에 그 나라에서 잘 못살면 자기 나라가 헬인 거고 잘 나가면  그곳이 정녕 헤븐 아닐까.  


수학문제를 20분째 들여다보는 Sarah와 신문을 정독하고 있는 Phillip


각자 다른 목표가 있는 사람들
대학에서 Business를 공부하는 Thomas


나는 이곳의 열정 가득한 사람들이 좋다.

2024년 새해부터 분주해진 사람들이 센터에 많이 생겼다.    Thomas는  취업전문대학인  온라인 college에서 경영학을 배우는 학생이었는데 올해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book keeing  자격증을 딸 예정이라고 한다. 평소에 가방에 공부하는 노트와 책을 수북이 넣어 다니는 학구열이 불타는 Thomas를 보면 나까지 학구열이 불타오른다. 새해에 졸업을 앞두고 설레하는 Thomas을 보니  지난해 재무회계 책을 잠들기 전까지 들여다보며 시험공부를 해오던 모습을 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나까지 울컥해졌다. 자격증 시험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격려차 응원의 말을 해주었다

Congratulation man!
Good luck with your test!

나한테도 이번에 학교 끝나는 거 아니냐면서
 축하한다고 말해주는 Thomas.
역시 지식인이라 그런지 매너가 좋아. 자식, 고맙다!



한 가지 또 여기 일을 하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점은 노숙자들도 직업이 있어서 낮에는 일을 하는데 가끔 공사현장에서, 또는  보안 일하는 노숙자들이 유니폼을 입고 올 때도 있다.


며칠 전 금요일은 정부에서 돈이 나오는 payday였다.

돈이 나오는 매월 넷째 주 금요일인 Payday에는 노숙자들이 저녁에 비틀비틀거리면서 단체로 센터로 들어오는데 이 또한 재미있는 관경이다.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을 가지고 근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기분이 알딸딸한 상태로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 오자마자 침대에 뻗은 직장인 Ryan.


 2024년이 된 지도 벌써 5일이 지났다. 지난 크리스마스부터 며칠째 뭐를 계속 쓰고 있나 봤더니 구직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는 스물여섯 취준생 Kyle.  어느 나라든  참 직장 구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Kyle이 새해에는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기를 바라며.


HAPPY NEW YEAR, Kyle!

평소 좋아하는 피자도 안먹고 구직신청서를 작성하는 Kyle의 모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