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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솔로

한국인들이 제일 먼저 묻는 질문 TOP1

by K 엔젤

결혼하지 않는 남녀, 출산하지 않는 2030

요즘 보면 전 세계가 다들 혼자 사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캐나다는 이미 1인 가구 비율이 꽤 높다. 동네 마트만 가도 장바구니에 라면 하나, 우유 하나만 덩그러니 담은 사람들이 많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왠지 모르게 묘한 동질감이 생긴다. “아, 너도 혼자야?” 이런 느낌. 싱글맘, 싱글파더도 정말 많고, 이제는 가족이라는 단어의 기본 단위가 슬슬 다시 정의돼야 할 때인 것 같다.

신기한 건 혼인율은 계속 떨어지는데, 이혼율은 이상할 정도로 높다는 거다. 결혼이 로또라면 이혼은 세금 같달까. 누구나 한 번쯤은 내는. 한국만 해도 “결혼하면 반은 이혼한다”는 말이 그냥 농담이 아니라 거의 현실처럼 들린다. 이런 분위기면 결혼식장에서 부케 대신 이혼서류 뿌려도 되겠다 싶다.

옛날 같으면 벌써 애 하나쯤은 낳고 키우고 있었을 나이인데, 나는 아직도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확신이 없다. 요즘 세상은 혼자 살아도 충분히 굴러가게 설계되어 있다. 그러니 문제는 “결혼할까 말까"가 아니라 “결혼을 한다면, 대체 누구랑?”으로 바뀐다. 문제는 그 ‘누구’가 멸종 위기 동물급이라는 거다. 한 번 나타나면 보호본능보다 관찰본능이 먼저 켜진다. “얘 진짜 괜찮은 종인가?”

살다 보니 결혼은 결국 두 사람이 ‘서로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는가’의 싸움이라는 걸 알게 됐다. 장점은 누구나 좋아한다. 하지만 평생 같이 사는 건 장점이 아니라 단점을 견디는 문제다. 결국 결혼은 이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사람의 이 짜증나는 습관을 평생 봐도 멘탈이 안 나갈까?”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상대를 찾는 것보다 내가 누군지를 먼저 알고 싶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결혼하면, 그건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 사는 꼴이다. 나, 상대방, 그리고 내가 몰랐던 진짜 나.

사실 우리 세대는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너무 준비를 열심히 하는 걸지도 모른다. 상대를 찾는 준비가 아니라, “내가 누구랑 살 수 있는 인간인가”를 파악하는 준비. 그리고 그 답을 찾는 데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물론 이런 고민도 어떤 날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철학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그냥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너라면 네 코 고는 소리도 평생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결혼은 결국 평생 견딜 만한 단점을 고르는 계약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직 그 계약서에 사인할 펜을 쥐지 못한 채,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글로 툭툭 던지고 있는 중이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잖아요

이곳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 대화 패턴은 거의 정해져 있다. “무슨 일 하세요?” 다음 질문은 백 퍼센트다.

“xx 씨, 결혼은 했어요?”

아직 결혼 생각 없다고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돌아오는 말.

“나이도 적지 않은데 빨리 해야지~”

그 말 들으면 가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가 싶다. 결혼을 안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슨 범죄라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눈빛. 내 나이에 ‘미혼’이라는 상태는 언제부터 죄목이 되었을까.

며칠 전엔 배드민턴 동호회에 나갔다가 그 질문의 진화 버전을 들었다. 처음 본 어르신 한 분이 다가오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반가워요~ 남편분은 같이 안 오셨나 봐요?”

남편분? 없는데요. 존재 자체가 없습니다만.

그 얘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와, 그래서 뭐라고 했어?”라며 눈을 번뜩인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아, 뭐 잘 모르셔서 그러신 거지” 하고 넘겼다고 하니 친구가 펄쩍 뛴다.

“야, 그래도 초면에 그건 진짜 무례한 거다.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친구 말도 일리가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받아쳤어야 했나?
“아, 남편은 없는데 혹시 어르신 사위 소개 시켜주실 건가요?”
이 정도 센 멘트를 날렸어야 속이 시원했을까.

근데 또 그런 생각도 든다. 손만 잡아도 결혼해야 한다고 믿었던 시절을 살던 분들이니까 그냥 무의식적으로 던진 말일 수도 있겠지. 그 시대의 상식과 지금의 상식은 다르니까. 그렇다고 내가 일일이 “사실은요, 요즘은요” 하고 강의하듯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얼버무리고 끝냈다.

하지만 속마음은 늘 비슷하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잖아요.

결혼? 하고 말고는 내 선택인데, 왜 다들 내 인생의 스케줄러가 되려고 하는 걸까. 내가 밥 늦게 먹는다고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결혼은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신기하다.



나이가 차서 하는 결혼이 제일 위험하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다. 드레스 입고 웨딩홀 들어가는 상상도, 손잡고 노후를 걷는 낭만적인 장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늘어날수록 ‘결혼’이라는 단어가 마치 뒤에서 발목을 잡는 것 같다. 누가 총 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쫓기는 기분.

웃긴 건, 나한테 “결혼하자”고 달려드는 남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아무도 없는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다. 내 머릿속에서만 웨딩마치가 허공에 울린다.

이럴 때일수록 내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주변에서 “나이 차면 더 힘들다”는 말, “너무 늦기 전에 해라”는 말, 심지어 “혼자 늙으면 불쌍하다”는 말이 쏟아질수록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왜냐면, 나이가 차서 급하게 하는 결혼이야말로 제일 위험하니까.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생활이다. 생활은 시간 싸움이고 습관 싸움이다. 그런데 그걸 “이제 나이도 됐으니까 대충하지 뭐” 이런 식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사랑이 아니라 계약이고, 계약은 위약금이 크다. 나이는 숫자라고 하지만, 결혼은 숫자 때문에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제 서른 중반이니까 그냥 하자" 라는 말 뒤에는 “너 아니면 안 돼”가 아니라 “이 타이밍 아니면 안 돼”가 숨어 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마감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내 마음속에 이렇게 적어둔다.
“결혼은 사람 때문에 하는 거지, 나이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결혼관을 분명히 아는 게 중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면 그건 나의 선택이지, 나이를 채우기 위한 도장이 아니어야 한다.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하는 결혼은 마치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급하게 소비하는 것과 비슷하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뚜껑 따는 순간부터 이미 맛이 변해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남자가 없어서 불안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흔들릴까 봐 불안하다. “나이도 찼는데”라는 말 한마디에 내 기준을 무너뜨릴까 봐.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 다짐한다.

“결혼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지, 쫓겨서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결혼하는 사람들

솔직히 말하면, 내 안에는 여전히 결혼을 하고 싶은 심리가 숨어 있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다면서도, “나는 솔로” 같은 짝짓기 프로그램을 보면 눈이 반짝거린다. 짧은 만남으로도 커플이 탄생하고, 심지어 몇 달 만에 결혼까지 가는 커플들을 보면 생각한다. “저게 가능한 일이라고?”

근데 또 신기하게, 그 장면들을 볼 때 마음 한구석이 움직인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 함께라면, 한 집에서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게 의외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매일의 소소한 잔소리와 설거지 전쟁 속에서도 “그래도 같이 있어 좋다”라는 마음 하나면, 이 외로운 인생이 훨씬 덜 쓸쓸해질 것 같기도 하다.

결혼은 어쩌면 낭만적인 약속이라기보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구심점을 하나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혼자 걸을 땐 길이 너무 길고, 너무 조용하니까.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가끔은 발이 엉키고, 속도도 맞지 않겠지만, 그래도 길이 덜 외로워진다.

그리고 아마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 위험한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게 아닐까.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결혼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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