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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Apr 06. 2021

죽음에 대한 희망적 수용

죽음 또한 인간 삶의 한 부분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StockSnap님의 이미지 입니다.

2006년부터 척추질환으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고 당뇨, 혈관질환이 있던 80대 후반의 노인이다.

어느 하나 불편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꾸준히 치료받으며 감수하고 살았다.


2009년 7월 (결장)암 진단을 받는다.

2017년 4월 전이(전립선)암 진단을 받는다.


왜 빨리 발견하지 못했느냐는 하소연을 해본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매월 3회가 넘는 외래진료도 꾸준히 받았다.


아들은 감당하기 힘든 부채로 소득의 대부분을 부채상환에 매달렸다.

바쁜 아들은 환자를 돌볼 겨를이 없었고 환자는 마음을 기댈 곳이 없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고 외로웠다.


극도로 불안하고 우울한 모습을 보였다.

질병을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고 비관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를 전달하고 2018년 8월 죽음을 맞이했다.


외로운 중에 마주 잡았던 가족과 의사, 간호사의 손으로 전해지는 체온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정신과 의사는 임종을 맞이하기까지 거치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다섯 단계 즉,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으로 정의했다.


환자에 따라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단계가 생략되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인 수용까지 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의료사회복지사로 10년 동안 병원에 근무하며 의사나 간호사보다는 덜하겠지만 수많은 환자를 마주했고 그들 중 많은 환자의 죽음과 마주쳐야 했다.


최근 5년간 나의 상담기록에는 645번의 '사망'이라는 단어가 검색된다.

그리고 1,306번의 '요양병원'이라는 단어가 검색된다.

사망 혹은 회복에 대한 기대가 낮은 환자일 것이다.


한 번을 만났던 환자부터 수년째 만났던 환자도 있다.


환자에게 단호하게 말해야 할지, 무심하게 말해야 할지, 감정적으로 말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들의 삶을 알기에 죽음을 말하기에 앞서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넉넉함은 고사하고 평범하게 누려보지 못한 삶이다.


개인적인 우려와 추측일지도 모른다.


질병으로 누리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면 삶이 의미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평소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 앞에 비로소 죽음을 실감하게 되는 정도다.


삶을 감사히 여기며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삶에 또 다른 변화가 생길 것이다.


죽음 또한 인간 삶의 한 부분이다.


나 또한 결국은 죽게 될 것이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절망적 수용이 아닌 희망적 수용을 할 수 있을까?


임종 전 환자가 의사에게 전달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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