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는 좋은 직업이지만, 직업일 뿐이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졸업 직후 취업을 했기 때문에 근무연수 또한 비슷하다.
10년 전 나는, 10년 후의 나를 어떻게 상상했을까?
졸업만 하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졌지만, 현장은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학부 시절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배웠던 것들인데 현장마다 적용 방법이 다르고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은 아니었다.)
졸업 후 자신감에 취업했지만 일 처리는 생각보다 더디기만 했다.
각종 지침과 규정에 맞춰야 하고 주무관청이나 단체에 따라 요구하는 사항도 천차만별이었다.
이미 정해놓은 프레임 안에 들어가야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나한테는 맞지 않았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기안도 반려되기 일수였다.
신임 사회복지사와 경력이 있는 사회복지사가 바라보는 사고의 폭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그 차이를 느끼고 여전히 지식과 경험에 따른 사고의 폭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직장에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직을 하게 되었다.
동료들과 관계가 좋지 않거나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이전 직장의 동료들과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퇴사에 확신이 있거나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직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체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직을 한 직장이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도 아니었다.
학부 시절 의료사회복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병원조차 잘 다녀본 기억이 없어 보건‧의료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복지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의료에 대한 지식까지 습득해야 했다.
무엇보다 팀 접근(의사, 간호사 등)이 중요했고 지역사회(관공서, 유관기관 등)와의 관계도 중요했다.
지식만큼이나 관계 형성이 중요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보다 협업해야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다.
첫 출근부터 이게 아닌 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너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데?”
“입원과 퇴원계획에 사회복지사가 뭐라고 끼어드는 거냐?”
“병원에 필요한 부서(팀)이기는 한 거냐?”라는 의사나 간호사의 말이 비수처럼 아프기도 했다.
이때 포기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의료기관에서 사회복지사들이 수행하는 업무에 대해 환자뿐 아니라 의사나 간호사들조차 이해가 낮았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지금도 느낀다.)
환자를 만나고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다.
사회복지사의 역할에 대해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일이 되게 해야 했다.
감정에 치우치거나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호소하지 않았다.
의사를 찾아가고 간호사를 찾아가 사소한 것(이미 알고 있는 것)까지 물어봐 가며 관계를 만들었다.
(때론 멍청해지는 것이 관계를 만들기 수월할 때가 있다.)
심지어 같은 직장에 사회복지사가 근무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직원들도 있었다.
조금씩 사회복지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만들어 갔다.
비대면 시대라고 하지만 일이 되려면 아직은 대면이 더 잘 먹히는 시대다.
의료사회복지사의 일은 보통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지만 매일 귀로 듣고 눈으로 봐야 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이 내게는 간접 경험이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또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수도 없는 고충을 듣고 퇴근 시간이 되면 긴장이 풀리고 누적되었던 피로감이 몰려온다.
일을 만들어서 하는 부서(팀)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 말이 싫지는 않다.
일은 쉽게 쉽게 하되 정체되고 싶지 않다.
이 길이 전부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또 지금처럼 갈 것이다.
환경을 탓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다.
환경이 변하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린다.
사람이 변하는 데도 오랜 기간이 걸린다.
아마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을 것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내가 해야 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게 조직이고 내가 해야될 일이다.)
천직이니, 책임감이니 하는 말들이 아니다.
매일 아침 “야호! 출근이다!”를 외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내가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대체 불가능한 직원이 아니다.
언제든 얼마든 대체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를 구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는 좋은 직업이지만, 직업일 뿐이다.
그러니 일에 집착하기보다 의미를 부여하고 내 존재감을 실현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10년 전 내가 상상했던 10년 후의 내 모습에 가까워진 것일까?
10년 전 지나치게 거창한 상상을 하지 않았던 내게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10년 전 내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 부끄럽기도 하다.
앞으로 10년 후의 내 모습이 꼭 직장에서의 모습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직도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