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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Mar 14. 2022

"요즘 좀 어때요?"

친밀감을 교환할 기회가 줄어든 노인 이야기

70대에서 80대로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뀔 만큼 오래 봐왔던 환자가 있다.

2015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의료비 지원 상담을 위해 처음 만난 것이 햇수로 벌써 8년째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고 해마다 한 번 정도는 입원 치료를 받는 환자다.

재발이나 만성질환으로 입원하기도 하지만 약 처방을 받고 증상관리를 하며 비교적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외래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할 때면 종종 캔커피를 사 들고 안부를 묻기 위해 찾아오곤 했다. (겨울이면 따뜻한 캔커피를 사 오신다)


요즈음은 방문 횟수가 더 잦아졌다.

외래진료가 있어서도 아니고 지체 장애로 걷는 것도 불편하여 산책 겸 오시는 것도 아니다.


방문이 잦아진 것은 코로나 19 유행이 발생하고 몇 개월 후부터였던 것 같다.


“요즘 좀 어때요?”, “건강하시죠?”라는 인사를 건네며 방문하신다.

매일매일 별일이 있을 것도 없지만, 하루를 멀다 하고 같은 질문을 하시니 마땅한 대답도 생각나지 않는다.

“항상 그렇죠”로 짧게 답변을 하는 편이다.


캔커피를 내밀며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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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잦은 방문으로 사무실 냉장고는 거의 편의점 수준으로 캔커피가 쌓여간다.


여유가 있다면 이야기를 다 들어 드리고 싶지만 일과가 꽉 차 있어 길게 들어드리기도 힘들다.

“이만 가볼게요”라는 말을 하며 문밖을 나서지만 며칠 뒤면 또 방문하실 것이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온다.

코로나 19 유행으로 외로움이 곧 공포가 되기도 한다.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과거를 만나고 추억을 회상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에서 늙은 어부는 84일째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의 운이 다했다고 말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거대한 청새치 한 마리와 맞닥뜨린다.

노인의 조각배보다 크고 힘 샌 청새치와 3일간 고독한 사투를 벌인다.

결국 청새치를 잡게 되지만 상어 떼의 공격으로 뼈만 남은 물고기를 들고 돌아온다.

뼈만 남았지만 잡은 물고기는 어부(노인)의 자존심이고 건재함의 증명이다.


인간이 좌절과 실패를 극복하는 모습과 우리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지만 내게 찾아오는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코로나 19 유행으로 타인과 친밀감을 교환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인정받을 기회도 자신을 증명할 기회도 줄어들었다.

외로움만 더해진다.


내게 찾아오는 노인은 자신을 증명하고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방문하는 것일까?


제30차 세계병자의 날(2022년 2월 11일) 교황 담화문에서는 어떠한 치료에도 환자들에게 귀 기울여 그들의 개인사, 걱정, 두려움을 듣는 것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의 절박함에 귀 기울이고 친밀감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생 제2막이라는 노인의 삶이 외롭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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