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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Aug 19. 2022

외국인 노동자의 강제출국

방글라데시인 이야기

30대의 방글라데시인은 비전문취업(E-9)비자로 2006년 한국에 입국했다.

비전문취업(E-9)비자는 전문 직종이 아닌 제조업체, 건설공장 업체, 농업, 축산업 등 비전문 직종에 취업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발급되는 비자다.      


2015년 비자가 만료되었지만, 방글라데시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출국할 수 없었고 근로활동을 이어갔다. (방글라데시에는 부모와 배우자, 1남 1녀의 어린 자녀가 있다)     


처음 환자를 만나게 되었던 것은 다른 방글라데시인의 입원 때문이었다.

한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었던 환자는 친구(방글라데시인)의 입원 수속을 돕기 위해 동행했고 며칠 되지 않아 친구는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진단을 받고 사망했다.      


불안한 마음에 환자도 검사받았고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 진단받게 된다.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혹은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누구든 심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이고 정보를 찾아보거나 생각해볼 일이 잘 없는 질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첫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감염인이 발견되었고 해마다 약 1,000명의 감염인과 환자가 신고된다.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일컫는 말이다.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은 일정한 면역 수치를 유지하면서 몸에 뚜렷한 증상이 없는 상태이고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란 감염된 후 시간이 지나면서 면역체계가 파괴되어 특정한 질병 또는 증상이 나타난 경우를 말한다.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또는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진단을 받았다고 해도 죽는 질병이 아니다. 다만 모든 만성질환이 그렇듯 약을 빠뜨리지 않고 잘 복용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출처 : 대한에이즈예방협회]



플라스틱 생산업체에서 근로하며 200~250만 원의 소득이 있었다. 소득 중 100~150만 원은 방글라데시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고 가족들이 약 2개월간 생활이 가능한 금액이라고 한다.     

 

본인의 치료도 문제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소득의 전부를 병원비로 써도 병원비는 감당할 수 없어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는 일이 많아졌다. 어떻게 감염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치료가 우선이었다.      


때때로 받는 검사비는 200만 원이 넘고 처방받는 약 또한 처방일수에 따라 100~500만 원까지 발생했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지만 약을 빠뜨리지 않고 복용해야 하므로 대안도 없었다.      


병원을 이용할 때마다 사회복지팀을 방문했고 지금까지 밝은 표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항상 근심이 가득했지만, 진료는 빠지지 않았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질병으로 내국인이라면 치료받는데 어려움은 덜했을 것이다. (내국인은 병원비에 대한 부담이 낮지만, 각종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치료를 받는 것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얼굴을 볼 수 있었던 환자였다.


주말 저녁 경찰서 지구대에서 전화가 걸려 온다.

설명도 없이 환자와 통화연결을 해줬고 환자는 “사장님 도와줄 수 있어요?”라는 말을 했다. 간혹 외국인 환자들이 나를 보고 ‘사장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자격 체류로 단속되어 경찰서 지구대에 구금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무자격 체류를 허용하지 않으니 이런 상황에 내가 도와줄 방법은 없다. 다만 꾸준히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는 것을 경찰에 알렸다. (간혹 질병 치료의 사유로 인도적 체류(출국기한유예)가 허용되기는 한다)     


경찰은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외국인을 인계했고 출국 절차가 진행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자가 방글라데시에서도 치료받을 수 있게 영문소견서나 진단서, 처방전을 전달해주는 일뿐이다. 남아있는 약을 파악하고 의사에게 소견서를 요청했다. 의사도 방글라데시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회복이 가능한 질병은 아니기에 한국에 남아 있었다고 해도 어려움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가족들 곁으로 간다는 안도는 있지만 방글라데시의 의료사정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걱정된다.


최근 외환위기, 기후 이변 등 방글라데시의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소식을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방글라데시와 관련된 뉴스들을 검색해보게 된다)     


부재중으로 방글라데시 대사관에서 연락이 온 후로 환자와 연락이 끊어졌다. 지금쯤이면 방글라데시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을 것이다.      


몇 년만에 재회한 가족들이 반갑지만, 건강과 생계에 대한 걱정이 앞설 것이다.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중 일부는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지만 건강만을 생각했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 중에 한국이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소식을 알 수는 없으나 가족들 곁에서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날 의료와 의료시설에 대한 접근성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필수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의료접근성이 차이가 난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 대상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모두가 건강할 권리가 보장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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