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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Jun 09. 2023

'악화'하여 '긴급'하게로 인한 딜레마

긴급복지지원사업에 대해

주 소득자의 사망, 화재, 생계 곤란 등 9가지 항목의 위기 상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긴급복지지원사업이 있다.


2004년 12월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서 5세의 아동이 장롱 안에서 영양실조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를 '불로동 아사 사건'이라고 한다.


위기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했다.

정부 관계자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한 목소리로 취약계층의 지원을 강화하겠다며 긴급복지지원법을 제정했다.

실태 조사와 관리를 위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을 충원하는 조치도 취했다.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몇 번의 지침 개정을 거쳤고 지금까지 많은 위기 가정이 도움을 받고 있다.


긴급복지지원사업 중에는 '중한 질병 또는 부상을 당한 경우' 의료비를 감당하기 곤란하면 병원비를 지원하는 항목이 있다.


병원에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주로 안내하는 내용이다.


질병이나 치료 과정 외에도 소득이나 재산 기준 등을 파악하게 되고 만성적으로 앓고 있는 질병은 원칙적으로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진단서 등을 통해 질환 또는 증상이 악화하여 수술 또는 입원이 필요한 정도의 긴급한 진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갈등이 시작된다.

진단서 상 '악화'하거나 '긴급'하다는 소견 때문이다.


만성질환에만 '악화', '긴급'의 소견이 필요하지만, 만성질환이 의학적으로 명백히 분류되어 있지 않다.


갑작스러운 증상으로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고 응급 수술을 받은 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하더라도 지자체에서는 진단서 상 '악화', '긴급'의 문구를 요구한다.


이보다 얼마나 더 응급한 상황이어야 하나 싶지만, 긴급복지지원사업 지침상 작성해 달라는 요구다.


만성질환에 국한하여 필요한 소견임에도 만성질환으로 판단하는 기준도 포괄적이고 담당하는 공무원이 급성기 질환인지 만성 질환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이해는 한다.


환자와 의사, 보호자와 의사가 이 소견 하나로 갈등을 겪기도 하고 나 또한 의사에게 진단서 발급을 요청할 때 자주 경험하는 딜레마다.


"긴급하게 수술이 필요했지만, 악화한 것은 아니다."

"수술이 필요했지만 긴급하게 수술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

"'응급'이라고 작성해 줄 수는 있지만 '긴급'이라고 작성하기는 어렵다."

"응급 수술했으면 긴급하다는 것 아니냐?"

"증상이 악화했고 수술이 필요할 정도면 긴급한 것 아니냐?"

"질환이 악화하였으니 수술한 것 아니냐?"


화를 내는 의사도 있고 황당하다고 하는 의사도 있다.

알면서도 부탁해야 하는 내 입장도 난처하다.

틀린 말도 아니고 모르는 말도 아니지만 한글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떻게든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를 위해 몇 번이고 하소연해도 결국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명확한 치료 상황을 명시해야 하므로 의사 입장에서도 부담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자체 긴급복지사업 담당자도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만 지나치게 지침에 의존한다는 생각도 든다.


의료상의 사항이 명확해야 하니 의사도 물러설 수 없고 정해진 지침에 의한 업무처리니, 공무원도 물러설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양보해 달라고 하는 순간 월권(越權)이 된다.


불필요한 의료쇼핑이나 과잉 진료 등을 막기 위한 장치가 정작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실직하기도 하고 병간호와 소득단절로 가족 전체가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있다.


치료가 필요함에도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도 있고 어떻게든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이나 사채를 이용하거나 살고 있던 집의 계약금을 인출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의 심각한 위기 상황도 때에 따라서는 평생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남기도 한다.


애초에 의료쇼핑이나 과잉 진료가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몇몇 사람의 안일한 태도와 행동으로 인해 다수에게 피해가 간다.

제발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했으면 좋겠다.


간혹 지자체에서는 병원비 못 받을까 봐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는 거냐고 떨떠름한 어투로 말하기도 한다.


억울하다.


여유가 있든 없든 병원비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납부하라고 냉정하게 독촉해도 그만이다.

병원에서는 치료에 따른 정당한 요구다.

하지만 그만큼의 여유도 없고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환자의 편에 선다.


지자체에서는 취약계층을 위해 병원에서는 치료를 위해 한마음,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결국은 긴급복지지원사업 지침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이런 딜레마는 언제쯤 해소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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