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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Jun 15. 2023

부재중 전화다.

8년 전 만났던 환자

부재중 전화다.

평소 부재중 전화가 와도 다시 전화를 하지 않는다.

(급하면 다시 전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늘은 왜 그랬는지 부재중 전화를 눌러보고 싶었다.


8년 전 응급실에서 처음 만났던 환자의 목소리다.

전화번호를 옮기던 중 통화버튼을 눌러버렸다고 한다.


8년 전 기록에는 배우자와 50년 이상 별거 중이고 자녀들과도 관계가 단절된 상태였다.


해병대 출신으로 군 복무 시절 모범군인 표창을 받을 정도로 자존감이 높고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환자의 모습은 마르고 보행이 불편했으며 치아 소실도 심했다.

(남아 있는 치아가 4개뿐이었다)


실제보다 10년은 더 나이가 많아 보였다.


낡고 때 묻은 옷과 신발이 기억난다.

스스로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어려워했고 타인의 도움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주변에서도 국민기초생활수급 신청을 권했지만,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다며 신청하지 않았다.

(실제 환자는 끼니도 잘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린 시절 어려운 형편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이름을 겨우 쓸 정도로 글을 쓰거나 읽지 못했다.

병원에 올 때면 우편물 꾸러미를 가져와 내게 읽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먹고살기 위해 이발소 견습생을 시작으로 작은 이발소를 운영할 수 있었다.

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이발소에는 세월의 때가 묻은 의자와 가위, 면도기, 파란색 물조리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발소는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었고 환자의 보금자리였다.

(이발소에 오는 어르신들은 밥도 가져오고 김치도 가져온다고 한다)

다들 어려운 처지라며 이발비는 1,000원을 받기도 하고 2,000원을 받기도 했다.

영업을 종료하면 이발소 한편에 다리를 다 뻗기도 어려운 작은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생활 실태 확인을 위해 방문했을 때 차가운 바람을 막을 수 없는 환경을 보고 전기매트와 TV를 전달하기도 했다.


국민기초생활수급 신청은 거절했지만 적어도 끼니는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역복지관에 도시락배달 서비스도 신청했던 기억이 있다.


다리 통증과 마비 증상은 악화하였고 처음 만난 지 2년 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보행장애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어 국민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다.


지금은 전혀 걷지 못해 요양보호서비스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지만 여전한 환자의 밝은 목소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주소를 확인하고 죽 몇 팩을 주문해서 보냈다.

(아마 지금은 남아 있는 치아가 4개도 되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삶에도 유쾌한 웃음과 긍정적인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 8년 전 환자의 모습

이발소 풍경
8년 전 환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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