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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Aug 03. 2023

"사회복지팀은 뭘 하는 곳입니까?!"

입원을 요구하는 80대 노인

12년 전 뇌경색 진단을 받았지만, 심각한 후유증상은 없었고 그 외 노인성 질환으로 병원 진료가 잦았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보호받고 있어 항상 생계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병원비 납부를 거부하고 고성과 폭언으로 병원 직원들을 괴롭히는 일도 잦았다.

평소 의존적이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의지가 있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기는 하다)




오늘은 진료실 앞에서 입원을 요구하며 의료진과 실랑이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환자를 만났다.

(또 한바탕 하겠구나 생각하고 미리 마음을 추스른다)


입원이 필요한 정도의 증상은 아니라는 소견이고 생계비를 소진하여 숙식 해결의 방법으로 병원 입원을 생각하는 것 같다.


병원 로비까지 내려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환자는 대뜸 배가 고프고 돈이 없으니, 밥값을 달라고 요구한다.


"돈도 없고 배가 고파 죽겠다. 입원이 안 되면 밥값이나 주시오."


평소 환자의 성향을 잘 알기도 했지만,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안내했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고 않고 고성과 폭언이 시작되었다.


"병원에서는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필요하시면 작은 병원에라도 진료 보실 수 있게 진료의뢰서를 발급해 드리겠습니다."


"입원도 안 되는 병원이 병원비나 받아 X먹고, 병원비 다 돌려주시오."

(최근 6개월 환자가 부담한 병원비 총액은 3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에게 많은 금액일 수 있지만 그만큼 과잉진료나 과도한 진료비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실속 없는 이야기가 오가는 모습을 다른 고객이 지켜보고 답답하셨는지 다가왔다.


"이거라도 밥값에 쓰세요."

대략 7~8천 원의 돈을 환자에게 건네려 했다.


"저는 사회복지사이고 환자의 사정을 알고 있어 고객님이 도움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은 마음은 알겠지만 괜찮습니다."

밥값을 전달하려던 고객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고작 1~2만 원의 밥값을 주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듣고 조용히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작은 앞으로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알 수 없다.

더 큰 요구, 더 부당한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높다.


다시 시작이다.


배고픈 사람 도와주려는 착한 사람을 가로막는다며 다시 고성과 폭언이 시작되었다.

억울했는지 완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내겐 익숙한 상황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욕도 먹어봤고 흉기로 위협하는 상황도 경험해 봤다)


안타깝게 생각하여 도와주려던 고객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면박당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당신 때문에 지금 저 직원이 더 힘들어졌잖아요."

"남의 집 귀한 아들이 지금 저렇게 욕을 먹고 있잖아요."

.

.

.


노인은 밥값을 주려던 고객에게 눈을 떼지 않고 있다.

내가 떠나기를 바라고 있다.


"도와줄 거 아니면 내 앞에서 꺼져"

"일하기 싫으니 지금 여기서 시간 보내고 있는 거 아냐?"


좋은 마음에 용기 내어 나서다 면박당하고 있는 고객도 걱정되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정중히 말하며 자리를 피해달라고 요청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사회복지사라고 적힌 명함도 드렸다)


그렇게 밥값을 주려던 고객이 떠나자, 노인도 역정을 내며 돌아갔다.


잠시 후 밥값을 주려던 고객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아까는 너무 미안했어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너무 미안해서 그러는데 커피라도 한잔 사드릴게요. 저 때문에 괜히 고생하셨어요."


괜찮다며 거절하고 다시 한번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병원에 근무하며 이런 난처한 상황을 종종 경험한다.


상황을 정확하게 모르는 주변인들 때문에 문제해결이 더 어려워지기도 한다.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도움 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도움을 주려던 사람은 잘 못한 것이 없다.

다만 그 상황을 정확히 몰랐을 뿐이다.


때론 병원 직원들마저 환자가 어렵다고 하는데 왜 도와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경우도 있다.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했을 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사회복지팀은 왜 있는 곳입니까?!"

"사회복지팀은 뭘 하는 곳입니까?!"


진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서 하는 질문도 아니지만 고민이 깊어진다.


사회복지팀은 무엇을 하는 곳이며 사회복지사인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10년을 넘게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아직도 새로운 이벤트를 계속 경험한다.

그럴 때일수록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그래야 내 정신건강에도 이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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