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자 Aug 29. 2023

아무것도 알아보지 마세요.

뇌출혈 환자의 오만가지 문제

뇌출혈로 수술 후 의식을 회복했고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입원 직후 사업주(음식점 사장)는 퇴사 처리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는 퇴사 후 재취업을 하지 않으면 지역가입자로 변경된다.

거주지가 불분명(주민등록 말소)한 환자는 지역가입자로 변경되지 않았고 자격이 상실되었다.

불편할 것이 없어 전입신고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다.


환자의 언니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사회복지팀을 방문했다.

아주 가끔 안부만 묻는 정도로 지내다 뇌출혈 소식을 들었으니 그럴만하다.


건강보험을 살리기 위해 전입신고를 알아봤다.

행정복지센터는 단호했다. 정확히는 주민등록법이 그랬다.

(실거주하고 있어도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면 주민이 아니다)


전입신고는 세대주가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세대주가 신고할 수 없으면 위임받은 사람이 할 수 있다.

위임받을 수 있는 자격은 세대주의 배우자, 직계혈족, 배우자의 직계혈족, 직계혈족의 배우자로 제한된다.

형제자매는 해당 사항에 없다.


미혼인 환자는 행정복지센터를 직접 방문하지 않는 이상 전입신고를 할 수 없다.

가족이 없고 의식이 찾지 못한 환자는 주민등록 말소 상태로 평생 살아가야 하냐며 따졌다.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언니의 집으로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기로 하고 건강보험 자격을 살렸다.

(건강보험 자격은 살렸지만 아직도 주민등록 말소 상태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언니는 분명 사고(?)를 칠 것 같다.


"건강보험 자격은 살렸으니 한시름 놓았습니다."

"뇌출혈은 비교적 치료 기간이 긴 질병이기 때문에 다른 문제는 차근차근 풀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월세 임대료와 통신비만 끊기지 않게 관리해 주세요."

"치료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치료에 필요한 사항이 아니라면 알아보지도 궁금해하지도 마세요."


간혹 오만가지 문제를 들춰내 오히려 치료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해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언니가 방문했다.

어제보다 얼굴은 더 사색이 되어 있다.


환자는 통신비가 체납되어 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전입 신고하는 방법은 어렵게 되었다)


과거 동거인에게 본인 명의의 차를 빌려줬다.

지금도 과거 동거인이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환자는 운전면허도 없으면서 말이다.

(각종 세금이나 과태료 체납, 대출 같은 확인되지 않은 것들도 걱정된다)


집(임대차) 계약서를 확인하기 위해 언니가 환자의 집에 들렀다.


"글쎄 집에 갔더니 체납(전기, 수도, 가스 등) 고지서가 수두룩하잖아요."

"그래서 다 납부한다고 조금 늦었어요."


입원 중인데 전기, 수도, 가스가 당장 무슨 필요가 있나?

공과금이 체납되어 있다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체납으로 인한 단전, 단수 등은 위기 징후로 판단하여 위기가구 조사 대상으로 지자체에 통보할 정도다.

그걸 냉큼 납부해 버렸다.


"그러면 지금부터 내지 말까요?"


집에 사람이 없는데 지금부터는 공과금이 얼마나 나오려나?


집에 가서 집(임대차) 계약서를 확인하고 냉장고와 사용하지 않는 콘센트만 정리하고 오랬더니 일 처리를 아주 깔끔하게(?) 해놓고 오셨다.


본인 명의의 차도 있고 소득도 있었고 이제 어렵게 생활했다는 증명은 어떻게 하시려나?

(다만 앞으로의 근로 능력 유무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다)


다행인 것은 환자의 회복이 눈에 띄게 좋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 반년은 일을 할 수 없고 재활치료에 전념해야 한다.


차츰 회복하면서 환자가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주변에서 문제를 모두 해결해 버리면 다른 위기 상황에 대처 능력이 낮아진다.

가족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 아니라면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급한 불을 껐다면 보호자가 더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환자는 이제 40대다.

살면서 많은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모르는 사이에 왜 이렇게 사고를 쳐놨는지 모르겠어요."


답답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동안 서로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자 탓도 아니고 가족을 골탕 먹이기 위해 저지른 일도 아니다.

환자는 뇌출혈로 편마비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책망하고 있을 것이다.


"재활치료는 환자의 의지에 따라 회복에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환자가 재활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세요."

"지금 환자에게 다른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세요."


이미 많은 문제를 안 이상 환자도 보호자도 밤잠을 설치고 있을 것이다.

문제도 파악하고 해결방법도 찾아드릴테니 제발 아무것도 알아보지 마세요.






작가의 이전글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 봇짐 내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