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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Sep 07. 2023

음주로 인한 숙취(宿醉), 사람으로 인한 숙취(宿醉)

회식이란 녀석이 '사우론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금도 우리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건강뿐 아니라 사회시스템이 마비되는 경험을 했다.


방역 지침 완화로 마치 코로나-19와 감염의 우려가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지금도 여전히 확진 판정으로 입원하는 환자가 있고 사망사례도 있다.


세계적으로 전파하지 않았지만, 특정 국가에 발생하고 있는 전염병도 있다.

수년 내에 또 다른 전염병으로 공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그전에 기후 위기로 인류는 멸망할 수도 있다)


인간이 동물을 길들여 사육하면서 이미 인수공통전염병을 경험했다.

홍역, 결핵, 천연두 등은 소에서 유래했고 백일해나 인플루엔자는 돼지가 그 기원이라고 한다.

많은 동물이 인간과 접촉하게 되면서 인간 신체에 적응하는 질병으로 진화한 것이다.

여름이면 자주 들을 수 있는 일본뇌염도 인수공통전염병이다.


들어보지 못했을 뿐 인수공통전염병은 300종에 이른다고 한다.

어떤 경로로 전염될지 알더라도 어떻게 진화(변이)할지 알 수 없다.

피해도 예측할 수 없다.


막상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보니 전염병에 안전한 장소도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경로로 어떻게 전파되는지조차 모르게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한 번쯤은 감염을 경험했다.

(감염되는지도 모르게 지나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만족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불편한 대면 회의와 회식이 줄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회의가 회식인지 회식이 회의인지 구분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람 만나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 곤혹이다.

선택하는 단어만 다를 뿐 그 말이 그 말이고, 그 얘기가 그 얘기다.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보지만 경쟁자가 많다.

(나 같은 사람이 많다, 어떤 때는 가방이라도 먼저 던져야 하나? 생각도 든다)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항상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회의나 회식 자리는 싫어하는데 적막한 분위기도 싫어하는 지랄 맞은 성격이다.

입이 방정이라 먼저 말을 꺼내다 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는 경험을 한다.


술이 한잔 들어가기 시작하면 없던 용기가 생기고,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다 보면 쓸모없는 해결책을 진지한 척 듣고 있어야 한다.

가끔은 주술사(?)와 회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묘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역시나 그 말이 그 말이고, 그 얘기가 그 얘기다.


회식은 다른 말로 자조 모임이다.

소속감을 강화하고 교류를 통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긍정적인 효과들이 있지만 와닿지는 않는다.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모인 동료집단일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


다음 날 출근을 생각하며 자제해 보려던 음주는 술이 술을 마시고 내가 나를 마시는 지경이 되어서야 끝이 난다.

주사(酒邪)로 인한 자기반성과 쪽팔림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소속감은 고사하고 조직이 괴멸(?)하거나 홀로 낙오하기도 한다.

지난날의 과오는 서로 모른 척해주는 것이 상도덕이다.

그래야 조직이 그나마 유지된다.


음주로 인한 숙취(宿醉)인지, 사람으로 인한 숙취(宿醉)인지 헷갈린다.


방역 지침이 완화한 지금 회식이라는 녀석이 '사우론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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