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하기 쉽지 않다.

환자와 보호자의 권리

by 여행자

실제 나이 88세라는 노인이 입원했다.


손녀가 병간호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상주(常駐) 보호자인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

20대 손녀가 할아버지를 병간호하는 경우는 더 그렇다.


의사가 아들에게 연락했다.

손녀가 병간호를 하고 있는 내막(內幕)을 알고 싶었을 것이다.

병원비도 낼 수 없고 환자 돌봄(care)도 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사연을 알 수 없는 의사는 사회복지팀에 상담을 의뢰했다.

치료 과정에 가족의 의사결정과 지지는 회복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부모는 2세에 이혼했고 아버지는 7세에 사고로 사망했다.

조부모(祖父母) 손에 자랐고 조모(祖母)는 3년 전 사망했다.


4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첫째 아들은 사망했고 나머지 아들과는 소원(疏遠)하거나 갈등 관계다.

(손녀는 첫째 아들의 딸이다)


손녀에게 집과 금융재산을 상속했다.

오죽하면 아들이 아니라 손녀에게 재산을 상속했을까 싶은 생각을 한다.

앞으로 도움받을 길 없는 손녀를 위한 결정일 수도 있고 아들과 관계가 좋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병원비도 책임지지 않고 환자 돌봄(care)도 하지 않겠다는 아들은 조카를 간섭하고 있다.

온갖 수고스러운 것은 조카에게 맡겨 놓은 채 먼발치에서 권리만 주장한다.

먼 곳에 사는 것도 아닌데 면회조차 오지 않는다.


손녀가 재산상속을 받았으니, 병원비를 내고 돌봄(care)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증상관리에 어려움을 겪어 1주일간 요양병원에 입원하자 아들이 불같이 화를 내며 손녀를 쏘아붙였다.


아들이 있는데 손녀가 의사결정을 했다며 심한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가족이 협의하여 치료 과정을 결정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평소 환자에 관심도 없었다.

그 일 이후 치료의 모든 과정과 입원 생활을 매일 삼촌에게 보고한다.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사회복지 상담 사실이 삼촌에게 알려지길 바라지 않았다.

"오늘 상담은 없었던 일로 했으면 좋겠어요."

"삼촌에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표정이나 말투에서 온전히 불안함이 전달된다.


상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약속하고 필요한 정보는 제공하기로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손녀는 아무 결정을 하지 못할 것이다.

병간호를 위해 직장까지 그만둔 손녀는 하소연할 곳이 없다.


환자가 임종(臨終) 하게 되면 손녀는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을까?

1순위 상속자임을 내세워 이미 상속한 재산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누구의 도움 없이 독거 청년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권리는 주장하면서 책임은 하지 않는 환자나 보호자는 병원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치료받을 권리, 건강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병원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환자를 병원에 맡겨 놓은 채 두문불출(杜門不出)하는 보호자가 있다.

노인 방임(放任)으로 신고도 해보지만 치료받기 위해 입원했고 병원에서 보호받고 있으니, 방임(放任)이 아니라고 한다.

(해석이 왜 이렇게 되는 거냐?)


치료가 만족스럽지 않거나 낙상(落傷) 사고라도 발생하면 보호자는 단체로 나타나 언성을 높인다.

여러 차례 위험에 대해 안내했고 간호사도 관심 있게 지켜보지만 사고는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다.


"간호사를 호출해도 오지 않았다."

"아프다고 했지만 아무런 치료도 해주지 않았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보호자뿐 아니라 환자도 동조(同調)하여 병원의 과실을 주장하기 바쁘다.


간호사가 1:1로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간호인력은 항상 부족하고 환자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

간호스테이션과 가까운 곳에 병실을 배정하고 다른 환자보다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다.


퇴원을 거부하거나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초과하는 입원 기간만큼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아야 할 진료비는 삭감된다.

병원에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지만 환자나 보호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병상부족으로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입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랜 기간 입원하는 것이 치료에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기에 환자에게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반복하여 퇴원을 종용(慫慂)했다가는 진료 거부나 강제 퇴원이라며 신고당하기도 한다.

진료 거부라는 결론까지 나지는 않지만, 잦은 민원은 병원 직원들을 소진(消盡)시킨다.


환자를 돌볼 수 없다고 한다.

"병원이든 국가든 알아서 도와줘야 하지 않냐?"라는 하소연을 하지만, 병원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알아서 하라는 말이 너무 무섭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말이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전후 사정 설명도 없이 거부만 한다.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해요?!"

사정을 알려달라고 해도 말해주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데 알아서 하기가 쉽지 않다.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되 걸맞은 책임이 필요하다.

도의적(道義的) 책임(의리)이라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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