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기대수명

건강하게 오래 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by 여행자

1970년 기대수명은 62.3세였지만 50년 이상 흐른 2022년 기대수명은 82.7세로 20.4세가 증가했다.

60세면 노인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65세도 노인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환갑(60세 생일) 잔치를 하는 경우도 드물다는 것은 기대수명만큼 산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대수명은 평균적으로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를 나타내는 말이지 모두가 그만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생활 습관이나 환경, 질병 유무, 의료접근성 등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70대, 80대가 되어도 60대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고 이제 막 60대에 접어든 사람도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사회복지팀에서 만나는 환자의 대부분은 실제 나이보다 많아 보인다.

그만큼 생활환경이 좋지 않고 다양한 질병을 가지고 있다.

의료접근성이 좋지 않은 것도 이유다.

단순히 병원이 많고 의료급여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해서 의료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75세의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했다.

2016년 처음 상담한 기록이 있고 최근에는 치과 치료비를 지원했던 환자다.

전날 저녁 냉면 한 그릇을 먹고 복통으로 응급실에 내원했다고 한다.

장염 정도로 생각했지만, 의료진에서 다급히 보호자를 찾는다.


결장으로 통하는 혈관이 막혔다고 한다.

8시간 이상 혈액이 흐르지 않으면 괴사가 진행될 수도 있다.

당뇨 합병증이 있었고 이전 뇌경색 진단 후 인지기능의 장애도 있었다.


최근까지 독거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래된 기록을 찾아 첫째 딸에게 연락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짜증이다.

“지금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전화하시는 거예요!”

응급실에서도 몇 번 전화했던 모양이다.


“○○○님이 입원하셨고 급하게 수술이 필요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왜 전화를 하시냐고요!”

이유를 말했는데 이유를 물으니 더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환자와 소통이 잘 안 되고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니 보호자에게 안내해 드리고 치료계획을 하기 위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나도 내 생활이 있는데 이렇게 전화하시면 됩니까!”

보호자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도 없지만 환자를 먼저 걱정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잠깐이지만 내가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을 해봤다.


“일 마치면 8시고 그때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더는 연락하지 마세요!”

10시간이 지나도 병원에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둘째 딸에게 연락했더니 너무 멀리서 살고 있어 당장 올 수가 없단다.

급하게나마 유선으로 동의를 받고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지만, 기저질환이 많아 관리가 될지 의문이다.

재발의 우려도 있고 사망의 가능성도 있다.


늦게나마 첫째 딸이 내원했지만 둘째 딸은 소식이 없다.

딸들끼리도 연락하지 않고 지낸다고 한다.

서로 마주치는 것이 오히려 환자의 치료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복잡한 가정사에 개입하는 것은 사회복지사인 나조차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어쩌면 딸들은 환자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위급한 때에 도와줄 가족이 없는 경험을 환자는 자주 했을 것이다.

불안과 우울, 고독감이 삶의 질을 떨어뜨렸을 것이다.

무기력하게 병원을 오가던 모습이 생각난다.

말수도 적고 걸음도 느리다.

밝은 환자의 얼굴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환자가 빨리 회복하고 퇴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이전보다 삶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때가 되면 병원에 오가는 일 말고는 고독한 생활을 지속할 것이다.


기대수명은 기대수명일 뿐이다.

기대수명만큼 생존한다는 보장은 없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무시할 수 없다.


건강하지 않고 지지체계조차 없다면 기대수명은 겉만 번지르르한 '허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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