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대주의 환자
병원을 이용할 때마다 민원을 제기하고 난동을 부려 의료진들조차 꺼리는 환자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의료진에 대한 폭행, 협박, 진료방해는 처벌할 수 있다지만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는 드물다.
병원비는 납부 의지가 없고 의료급여 대상이니 병원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큰소리친다.
의료급여 환자도 병원비가 발생할 수 있고 비급여에 따라서는 부담되는 수준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병원 사회복지팀입니다.”
“사회복지팀 맞습니까? 상담 좀 받으려고.”
“네,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백내장으로 수술이 필요한데 병원비 좀 도움받을까 해서.”
“저희 병원 안과에서 진료를 받으신 적이 있나요?”
“거기도 가고 ○○○병원도 가고 ○○○병원도 다니고 있지”
어째 몇 마디 오가지도 않았는데 말이 짧다.
“환자분 성명과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 ○○년 ○○월 ○○일”
“안과에 진료받으신 이력이 있으시네요.”
“내가 백내장 수술받으려고 ○○재단에도 신청했는데 나머지는 병원에서 도와줘야지”
이전에도 연락이 와 ○○재단이나 행정복지센터에서 먼저 상담받을 수 있도록 안내했던 기록이 있다.
“수술 시에 선택사항인 렌즈 비용 등은 지원이 어렵습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는 절차와 방법을 무시하고 그냥 병원에서 도와주기를 원한다.
평소에도 도움에 대한 기대가 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없는 환자다.
특히 ‘응대주의’ 표시가 있는 환자는 더 조심해야 한다.
말 한마디 빗나갔다가는 꼬투리에 꼬투리를 잡혀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몇 푼 안 되는 생계비 받아서는 생활이 안 돼서 내가 운전(일)을 좀 해야 하는데 이왕 하는 거 큰 병원에서 좋은 수술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오?”
운전하고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 상태면 수급자가 안 되는 것이 원칙이다.
다양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생계비는 항상 부족해 행정복지센터에서는 모르게 사부작사부작 소일거리를 하는 분들도 있다.
누구나 더 좋은 치료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실은 각자의 사정에 맞게 치료나 수술 방법을 선택한다.
전 국민이 양질의 무상진료를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거 좀 도와주면 되겠구먼, 하느님하고 마리아님 모시는 병원 아니오?”
"사회복지사가 뭐 하는 직업이오?,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직업 아니오?"
이 대목에서 살짝 기분이 나빠진다.
“종교와 상관없이 병원비 지원이 어렵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면 죽으라는 말이오!”
“내가 들은 게 있어서 물어보는 거요. 누구는 도움받았다고 하던데”
“거기 팀장 바꿔보시오.”
“병원장을 만나보아야겠네.”
평소 도움을 구하고자 할 때의 루틴이 보인다.
민원을 넣을 수 있는 곳은 모두 넣어 원하는 바를 얻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례가 반복하면 앞으로도 노력과 절차는 무시하고 목소리만 크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막무가내인 내담자를 많이 만난다.
기업 이름을 들먹이기도 하고 종교를 들먹이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절박하기 때문에 그런 분들도 있지만 요구하면 당연히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진 분들도 있다.
‘절박’과 ‘당연’은 다른 말이다.
환자가 처한 문제는 사회복지사 혼자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와 사회복지사가 함께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만의 의지로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다.
매정한 사회복지사로 비칠 수 있지만 그래야 문제는 반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