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불가능한 암 환자
비교적 젊어 보이는 60대 초반의 환자는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았고 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치료)이 불가능한 상태로 증상 조절만 할 뿐 회복에 기대는 없다. 큰 병원이라도 가보겠다고 떼를 쓰거나 치료할 방법이 없는지 매달릴 만도 한데 환자는 그러지 않았다.
체중이 감소하고 기력이 낮아지는 모습을 보며 치료에 대한 의지도 사라졌다. 무기력했고 아무런 욕구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족이 없는 외로움도 한몫했겠지만, 입원 중 허공만 쳐다보거나 눈을 감고 누워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귀가 시 증상 관리가 불가능하니 요양병원에 가는 것이 좋을 같다는 안내를 하자 환자는 사색이 되어 펄쩍 뛴다.
“내가 왜 요양병원에 가야 합니까?”
“이렇게 멀쩡한데, 집에 가면 되지요.”
“요양병원에서는 무슨 치료를 하는데요?”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요양병원에 갇혀 지내기는 싫다고 한다.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까지 여러 차례 설득 끝에 수긍했고 그마저도 한 달 정도만 입원해 보고 집에 가겠다고 한다. 말이 한 달이지 하루 만에라도 뛰쳐나올 것 같았다.
요양병원에서 한 달을 조금 더 채우고 증상이 악화하여 다시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나를 보자마자 그간 요양병원 생활에 불만을 한가득 쏟아낸다. 입원해 있는 동안 흰머리는 늘었고 10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인다. 1~2주 치료 후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갈 계획을 하고 있지만 지금 환자에게 말했다가는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말하는 것을 잠시 미뤘다.
입원 중 눈에 띄게 기력을 회복했고 치료에 어떤 의지도 없던 환자는 영양제 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환자의 표정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보였다. 그렇다고 수술이 가능한 것도, 회복이 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조금 더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을까?
2주간 치료가 끝나고 다시 요양병원 입원을 안내했지만 결국 집으로 가겠다고 한다.
“이렇게 좋아지고 있는데 왜 요양병원에 갑니까?”
“병원 직원들이 짜고 입원시키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며칠 더 생각해 보고 퇴원합시다.”
“며칠 더 있는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나는 집을 갈 겁니다. 왜 집에 간다는데 말리는 거요?!”
의사는 퇴원을 미루면서까지 요양병원 입원을 설득해 보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는다. 귀가 시 증상 관리도 문제지만 의사는 무엇보다 자살 시도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돌봐줄 가족이 없으니, 집에 있는 동안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치료가 불가능하니 점점 건강이 나빠지는 모습을 스스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삶을 비관할 것이고 질병을 원망하고 병원을 원망할 수도 있다.
기어코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하는 환자의 모습이 끝이 아니기를 바란다.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환자의 퇴원 사실을 알리고 살펴봐 주기를 당부했지만, 선 뜻 내 상담기록 종결 버튼에 손이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