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약은 없다.

환자의 약초 사랑

by 여행자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다 부상을 당했다. 추락이나 끼임 등 심각한 사고는 아니었지만 안구에 손상이 있었다. 잦은 부상이 있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병원에 가보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없자 내가 근무하는 병원까지 오게 되었다.

한동안 일을 했기 때문에 돈이 전혀 없지 않았지만 건강보험 자격이 없었다. 건설현장 일용근로를 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고 굳이 전입신고를 할 생각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생활이 불편하지 않았다.


사고 후 한 달 정도 일을 쉬었다. 일용근로이기에 실직이라고 하기도 뭣하지만 이런 경험이 많은 탓인지 일자리는 다시 찾으면 되고 전국 어디라도 일자리가 있는 곳이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기세였다.


적어도 몇 개월은 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소견에도 환자는 그까짓 거 조금 불편해도 일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의사의 만류에도 기어이 숙식이 제공되는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자립의지인지 살기 위한 몸부림인지는 모르겠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도 환자는 여전히 목소리가 크고 의욕 넘치는 모습이다. 그동안 건설현장, 음식점, 주차장 등 쉼 없이 일했고 적어도 자의로 쉬는 일은 없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일자리를 잃기 다반사였고 건강이 나빠지면서 지금은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로 보호받고 있다. 가만히 있는 것이 너무 무료하다던 환자는 몇 년이 지나고서야 적응한 듯하다.


당뇨병과 합병증으로 2개월에 한 번은 외래진료를 받는다. 병원에 올 때마다 연락이 오거나 인사차 사회복지팀을 방문해 2개월 간 있었던 일을 장황하게 늘어놓아 때론 귀찮기도 하지만 워낙 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싫지는 않다.


홀쭉한 모습으로 환자가 얼굴을 내비쳤다. 질병이나 영양실조와 같은 체중감소는 아니었고 건강하게 살이 빠진 모습이었다.


“얼굴 좋아 보이 내요.”


“하하하, 내가 그거 자랑하려고 여기 왔지요.”


“요즘 운동이라도 하세요?”


“운동이야 매일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게 운동이지요.”

“그게 아니고 내가 네 달 전부터 마시는 약초차가 있는데 그걸 꾸준히 마셨더니 이렇게 건강해지더라고요.”


평소 민간요법이나 약초 같은 것들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제약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좋은 약이나 영양제가 없던 시절의 말이지 요즘은 좋은 약이 너무 많다. 내가 만났던 환자들은 질병 진단 초기에 민간요법을 찾아보거나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기는 했다.


영양제의 종류는 수 없이 많고 심지어 연령대별로 필요한 영양소까지 고려한다. 긴장을 완화시켜 주는 약부터 숙면을 도와준다는 약까지 치료형 약이 아니라 생활형 약들도 많다.


얼마나 약초에 대한 믿음이 강한지 약초꾼에 빙의해 설명을 늘어놓는다. 듣고 보니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을 정도이기는 하지만 간혹 민간요법이나 약초 등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해 병원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좋은 약재도 과하면 독이 될 수 있으니 잘 조절하면서 드세요.”

“더군다나 생약이라니 더 걱정이 되네요.”

“그래도 얼굴이 좋아 보이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한참을 떠들고 환자는 문을 나서지만 진료 대기실에서도 끊임없이 주변 환자들에게 약재의 효능을 설파(說破)하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괜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약 하나로 건강을 다스릴 수도 없고 만병통치약이라는 것도 없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조금씩이라도 음식이나 신체활동 등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질병뿐 아니라 사람을 고치는 길이다.


환자가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한번 마셔봐야 할까? 나도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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