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전자책 만들기
강렬한 빨간색 테두리 안에 회사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사람들 위로는 크고 두꺼운 글씨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산책하고 월 30 벌기]
‘월 30’이라는 글자는 테두리와 같이 열정적인 빨간색으로 적혀있다. 흠, 이 정도면 괜찮나? 엄청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떻게 내 책과 이렇게 딱 맞는 이미지를 찾았을까? 나 자신이 대견하다.
책을 만들다 보니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았다. 글만 잘 쓰면 될 줄 알았는데, 그냥 글만 쓴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디자인, 유통, 홍보까지 혼자서 다 해내야 했다. 그중 첫 번째 난관이 바로 표지 만들기였다.
책을 읽는 건 좋아했지만, 표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그냥 예쁘면 예쁘다, 끌리면 끌린다 생각하고 책을 골랐을 뿐이다. 다른 허접한 전자책들을 보면서 내가 저것보단 잘 만들겠다, 생각했지만 막상 만들어보니 나도 그 정도 수준밖에 만들지 못했다. 고민 끝에 발견한 게 디자인 플랫폼, 미리캔버스였다.
‘책 표지’라 검색하니 몇몇 이미지들이 주르륵 나온다. 그중 내 책과 이미지가 맞는 표지를 골라 조금 수정하기만 하면 된다. 무료 디자인이라 엄청나게 좋은 퀄리티는 아니지만, 혼자 하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표지가 만들어졌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렇게 손쉽게 디자인을 할 수 있다니!
그렇게 만든 이미지를 저장해 워드 첫 장에 배치해 본다. 제법 책 같은데? 뿌듯한 마음으로 주르륵 한번 읽어본다. 워드로 23페이지. 배달 어플에 가입하는 법부터, 준비물, 배달 방법, 꿀팁까지 많은 정보를 담았다. 좋은 보냉 가방을 추천하고 싶어 여러 개의 보냉 가방을 사서 직접 써 보기도 하고, 이름만 들어도 머리 아프던 산재 보험료, 고용 보험료, 세금 등을 공부해 쉽게 풀어서 쓰기도 했다. 내용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가격 설정이었다.
내가 쓴 책의 가격을 내가 정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전자책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십만 원이 넘는 높은 가격대부터, 무료 전자책까지 아주 다양했다. 얼마를 받아야 할까? 삼만 원? 만 오천 원? 아님... 칠천 원?
배달 한번 하면 추천인 보너스로 2만 원이 들어오고, 배달비도 한 번에 3천 원은 넘는데, 만원은 넘어도 되지 않을까? 아냐, 그래도 배달해서 돈 벌려는 사람들한테 너무 많은 돈을 받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사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정보들이잖아. 내 블로그에도 쓰여 있는 글이고. 이거를 돈 받고 파는 게 맞는 걸까? 가격을 입력하려고 하니 급 자신감이 없어졌다.
3,300원? 아니, 2,700원? 아니... 1,800원? 그래, 돈 벌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학생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게 1,800원으로 하자. 아니, 돈 벌자고 시작했던 거잖아? 그렇긴 한데... 왠지 비싸게 파는 건 왠지 양심에 찔렸다. 결국 1,800원에 극적인 합의를 봤다.
디자인과 가격 설정까지 끝났다. 그럼 이제 어디에 팔지를 정해야 했다. 그냥 블로그에서 팔아도 되고, 크몽같은 지식판매 사이트에서 판매해도 된다. 하지만 왠지 그런 곳에서 파는 건 진짜 ‘책’ 같은 느낌이 안 들었다. 나는 교보문고나 알라딘 같은 대형 서점에서 내 책을 팔고 싶었다.
찾아보니 대형 서점에 유통하려면 출판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꼭 출판사를 직접 만들지 않아도 출판을 대행해 주는 사이트들도 많았다. 그런데 대행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수수료가 꽤나 셌다. 별로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수수료를 이렇게 많이 떼어가다니. 그냥 내가 출판사를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 만드는 법을 검색해 보니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구청에 가서 신고하면 된다고 했다. 구청... 집에서 멀지도 않은데,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 첫 창업이 얼렁뚱땅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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