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모텔”. 지도 어플엔 생소한 목적지가 찍혀있다. 사람들이 네모난 건물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점심시간의 초입, 모텔로 향하는 바쁜 발걸음이 왠지 부끄럽다.
한 손에는 보냉 가방, 다른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열심히 걷는다. 보냉백 안에는 음료가 들어있다. 딸기 라떼 한 잔과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차가운 음료와 뜨거운 음료를 같이 포장해 줘서 보냉백에 넣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일단은 고이 넣고 지퍼를 닫았다.
지도를 보며 걷다 보니 자주 가던 은행이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오, 이 건물 5층에 모텔이 있었구나.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자니 복잡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들어가야 하지? 프론트에 사람이 있으려나? 그냥 모른 척 들어가면 되나? 여러 가지 고민이 떠올랐지만 일단 5층 버튼을 눌렀다.
띵동, 문이 열리니 어두운 조명의 인테리어가 눈앞에 펼쳐졌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프론트엔 아무도 없었다. 다행인 건가. 벽에 표시된 번호를 따라 방을 찾아갔다. 516호, 516호... 모텔 복도는 미로같이 꾸불꾸불 이어졌다.
그렇게 길을 찾아가다 516호를 발견했다. 보냉가방을 열고 음료를 주섬주섬 꺼내 문 앞에 뒀다. 그리고 음료와 문이 보이게 사진을 찍고 벨을 눌렀다. 문 안쪽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남자가 나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마주치면 민망할 것 같아 문이 열리기 전에 도망치듯 모텔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 핸드폰 화면을 켜 ‘전달 완료’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화면엔 기쁜 얼굴의 캐릭터와 함께 내가 번 돈이 표시됐다.
‘배달료 3,300원. 빠르고 안전하게 배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 나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자전거도 아닌 걸어서 하는 도보 배달. 이걸 시작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집에만 있으니 움직일 일도 없고, 산책하는 겸 용돈이나 벌어볼까 싶은 마음이었다. 아니, 사실은 더 큰 목적이 있었다. 이 일을 소재 삼아 전자책을 쓰겠다는 원대한 목적이..!
전자책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유튜브 영상을 몇 개 찾아보았다.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몇몇 전자책을 직접 구매해 보기도 했다. 퀄리티가 말도 안 되게 낮았다. 이 정도는 나도 하겠는데? 아니, 이거보다 훨씬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드는 건 쉬울 것 같은데, 주제를 잡는 게 어려웠다. 전자책을 쓰려면 남에게 알려줄 만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생각나지 않았다. 유튜브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해온 일에 대해서 알려주라는데... 5년 동안 해온 자동차 설계에 대해서 알려주는 걸 상상해 봤다. 보안 사항이 많아 알려줄 수도 없지만 애초에 회사 일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대기업 취직하는 법에 대해 써보라 했다. 하지만 나는 취직하는 법을 몰랐다. 대학교 3학년 때 조기 취업을 한 탓에 사실상 취업준비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가르쳐줄 만한 게 이렇게 없나..? 곰곰이 생각하다가 발견한 게 배달이었다.
아무래도 돈 벌기 관련된 전자책이 잘 팔리는데, 당시에 배달로 돈을 버는 사람이 많았다. 한창 코로나 시기라 배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때였다.
어떤 사람은 대기업을 퇴사하고 배달 알바만으로 대기업 월급을 번다고 했다. 저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안 그래도 집에만 있어서 답답한데, 0부터 시작하는 나의 모습을 기록해 보는 건 어떨까?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시대니까! 직접 배달을 해보고 그 내용으로 전자책을 쓰는 거지. 전자책을 만들면서 전자책 만드는 법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기고, 그것도 책으로 내는 거야. 나중엔 출판사도 창업하고 말야!
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나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의 책을 만들어주는 출판사 사장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배달 알바를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것까지 하나하나 모두 기록했다. 어플을 다운로드하는 방법부터, 회원 가입, 추천인 입력, 안전 교육, 첫 배달까지. 첫 배달은 아주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추운 겨울, 밖으로 나가 1만보를 걸었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2시간을 걷고 번 돈은 고작 7,700원이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도 점심시간마다 배달을 하러 나갔다. 다녀오면 배달 갔다 온 곳, 거리, 금액, 소감까지 모두 정리해서 적어 놓았다. 그리고 블로그에도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하나하나 업로드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배달을 했다.
직접 걸어서 번 돈에 추천인 코드, 첫 배달 보너스 등 추가로 받은 돈을 더하니 30만 원이 넘었다. 기뻤다. 이제 이걸 정리해서 전자책으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전자책을 팔아 돈을 벌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 같은 내용의 인스타툰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내일 만화로 업로드 예정이니 놀러와서 팔로우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