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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자유 Jan 25. 2023

아빠와 빨래


우리 집 빨래 담당은 아빠다. 빨래통엔 축축한 수건과 옷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아빠는 빨래통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옷을 정리한다. 수건과 양말은 따로 꺼내놓고 다른 옷들을 먼저 빤다. 


세탁기에 세제를 넣고 돌린다. 그리곤 거실 바닥에 누워 TV를 본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젖은 옷을 옷걸이에 하나하나 걸어서 넌다. 아빠는 나에게 빨래 너는 법을 알려주곤 했다. 그냥 주르륵 널지 말고, 이렇게 겹치지 않게 지그재그로 널어야 빨래가 잘 말라. 그리고 탁탁, 옷을 세게 털어야지. 그렇게 털면 안 펴지잖아. 나는 힘이 없어 빨래를 잘 못 털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내가 집에 있을 때면 항상 옷을 널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빠 너무 힘들다. 우리 큰딸 아니면 아무도 안 널어줘. 고마워, 역시 우리 큰딸.








결혼 준비를 하며 가전 가구를 하나하나 사고 있을 때, 엄청나게 저렴한 세탁기와 건조기 세트를 발견했다. 카드 할인가 143만 구천 이백 원. 아빠의 말이 생각났다. 아빠 너무 힘들어. 빨래하는 거 너무 힘들어. 건조기 하나 있으면 엄청 편하다는데. 진짜 편하려나? 아냐, 무슨 건조기야. 좀 더 써야지. 근데 너무 힘들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저렴한 세탁기 건조기 세트가 있다고 말했다. 고민하는 엄마에게 24개월 무이자 할부도 된다고 말해줬다. 한 달에 오만 구천 구백 원. 결국 엄마 아빠는 건조기 세탁기 세트를 샀다. 물론 엄마 카드로. 아빠의 표정은 엄청나게 밝았다.








아빠는 빨래뿐만 아니라 온 집안의 다림질도 했다. 베란다에 있는 다리미는 아주 오래돼 색이 누랬다. 그래도 작동은 잘 됐다. 그 다리미에 아직 반짝였을 때, 그러니까 십오 년 전쯤 말이다. 아빠는 일요일 저녁마다 삼 남매의 교복을 다렸다. 내 교복은 항상 빳빳했다.     


아빠는 빨래와 다림질뿐만 아니라 수선도 했다. 특히 엄마와 나는 키가 작아 수선할 일이 많았다. 바지를 사면 항상 밑단을 잘라야 했고, 긴팔 옷을 사도 항상 소매가 길었다. 베란다 한구석에는 있는 미싱은 오래되어 녹이 슬었다. 그 오래된 미싱 옆에는 수선할 옷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중 우선순위는 엄마의 옷이다. 엄마 옷부터 수선하느라 항상 우리 삼 남매의 옷은 뒷전이다. 그냥 수선집에 맡기고 오겠다 하면 또 아깝다고 그냥 두라고 한다.  아빠가 테레비를 보고 있을 때 옷을 들고 가서, 입어보고 길이를 재며 지금 당장 해달라고 재촉해야 수선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여덟 살 때까지, 우리 집은 세탁소를 했었다. 세탁소의 이름은 ‘자유 세탁소’. 내 이름이 떡하니 걸려 있었지만 그렇게 부끄럽진 않았다. 집 근처의 그곳에 나는 가끔 놀러 갔다. 높은 곳에 겹겹이 매달려있는 옷들. 어렸던 나에게 그 옷들은 위압감을 줬다. 그리고 따뜻하고 매캐한 세탁소의 냄새. 폭신폭신, 푸근푸근하면서도 거대하고 답답했다.


세탁소를 그만둔 아빠는 집에서 빨래 담당이 되었다. 그리 부지런하지 않은 빨래 담당. 나에게 자꾸 빨래를 미루는 빨래 담당. 결혼한 지금은 내 집에서 내가 빨래를 돌린다. 건조기가 있어 그리 힘들진 않다. 그래도 빨래를 하는 건 생각보다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건조기로 옮겨 넣어 줘야 하고, 건조기가 다 돌아가면 빨래를 꺼내 개어서 옷장으로 옮겨야 한다. 


어제는 세탁기를 돌려놓고 깜박해 버렸다. 그래놓고선 건조기를 돌려놨다고 착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 빨래를 개려고 보니 빨래는 세탁기에 젖은 채 그대로 있었다. 다시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다 돌아간 후 빨래를 꺼내 건조기에 넣었다. 빨래는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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