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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레매거진 Jun 15. 2021

맥시멀리스트, 새로운 모험을 떠나다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언니둘3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Prologue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1_(앨리스 Part 1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2_(메이 Part 1_)>

새로운 모험을 떠나기에 주저하는 마음이 먼저 드는 적지 않은 나이의 평범한 사람. 이 모든 일은 둘이 함께라야 가능한 일이고 우린 아무것도 아니기에 또한 뭐든지 될 수 있었다.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3_>

- 앨리스 Part 2_


앨리스 #4. 마음을 채우는 시간

한국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가족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직장인이 된 이후 부모님과 이렇게 오랜 시간 붙어있던 것은 처음이다. 부모님은 강원도에 계셨고 나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거리가 그때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가족인데 뭘 ~ 당연히 이해해 줄 거야’


내색하지 않지만 은연중 전화 너머 서운한 마음이 들려올 땐 용돈으로 마음을 전하자고 생각했다. 물론, 물질적인 부분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애정 어린 관심 같은 것 들인가 보다. 옆에서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면 진정 사랑하는 것들은 담을 수 없다. 


못 본 사이 호랑이였던 우리 부모님은 부쩍 모르는 것도 질문도 많아지셨다. 나는 이러한 사소한 관심을 오랜 기간 잊고 살았다. 가장 힘들었을 때,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유럽에 가서 살겠다고 했을 때 제일 많이 응원하고 격려를 해준 건 가족이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무렵 강원도 우리 집엔 한창 감이 떨어졌다. 엄마랑 아빠랑 장대를 들고 나무를 타면서 죽도록 감을 땄다. 같이 곶감을 꾀고 시골 오일장에 나가 옥수수를 먹으면서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오랜만에 여자들끼리(본인 4남매) 베트남으로 여행도 다녀왔고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같이 밥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일상을 조잘조잘 떠들면서 엄마, 아빠랑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시간들은 내 마음을 꽉 차게 해 줬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였던 시간은 살아온 생을 통틀어 보면 꽤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기엔 충분했다. 


스스로 내려야 하는 결정이 많고 따라오는 많은 결과들에 자주 두려움을 느끼지만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고 언젠간 어떤 방식으로든 끝이 난다는 것을 배운다.

여전히 뜨문 뜨문 이불 발차기가 나오는 일들은 계속되지만 나는 변화하고 있다. 마음이 동하는 것들을 하고 산다는 건 이런 것이다. 긍정적인 힘은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       

 


앨리스 #5.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본격적인 게스트하우스 오픈 준비를 위해 메이가 동해로 내려왔다. 막상 계획을 세워보려 노트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보니 모든 것이 추상적이었다. 원하는 동네나 이미지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낯선 외국인 둘이 얼마만의 기간 발품을 팔아야 하는지 말은 통할 수 있을는지 한국에서도 어려운 부동산 계약을 잘 해낼 수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 뭐 일단 쉬운 것부터 가자. 국가부터 정하기로 했다. 사실 난 처음부터 스페인이 좋았다. 그 나라의 느린 분위기와 건강한 사람들의 모습(스페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서유럽의 사람들에 비해 검은 머리가 많다)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최고는 음식이었다. 나는 오리지널 토종 한국인 입맛으로 놀랍게도 지금까지 피자, 햄버거, 치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행 중의 음식이 얼마나 곤욕이었겠나 하지만 스페인은 달랐다. 음식의 간이며 맛이 한국과 비슷했다. 게다가 쌀 음식도 발달한 곳이라니!


‘오래 살 건데…. 음식이 안 맞으면.. 나란 돼지에게는 사형선고 아닌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를 하면서 생각지도 않게 런던이 너무 좋아지는 바람에 고민이 됐지만, 결국 갈린 데에는 결정적으로 음식이 컸던 것 같다. 다행히도 메이 역시 스페인을 참 좋아했다. 별 트러블 없이 우리는 국가를 정했다. 그럼 도시는?


일정한 수입을 얻고 살기 위해서는 관광객 유입 수가 중요했다.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대표 도시이며 축구가 유명한 도시. 그래! 바르셀로나면 되겠다. 우리는 빠르게 결정했다.


대부분의 유럽 여행자들은 한 달 에서 석 달 전부터 여행을 준비하는 점을 고려해 SNS 홍보를 가장 먼저 하기로 했다. 손재주와 감각이 좋은 메이가 전체적인 디자인과 홍보 계획을 나는 당장 쓸 생활비며 비행기 부동산 등 전반적인 비용을 담당했다. 


인스타그램 사전 예약 이미지를 업로드하며 ‘설마 누가 예약하겠어?’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예약이 들어왔다.


이 반가운 손님은 런던에서 스태프를 할 때 만났던 친구들이었다. 여행자들은 주요 관광지와 숙소의 동선이 정말 중요한데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는 상태에서 오롯이 런던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예약을 해줬다.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는 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이 기뻤다. 큰 고마움을 꼭 좋은 숙소로 보답하고 싶었다. 좋은 마음과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상 가자. 더는 숫자를 계산하고 될지 안 될지 확률을 고민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직접 부딪혀 보는 거야’


한국 생활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미니멀라이프의 미도 모르는, 언제 썼는지 기억도 안 나는 물건들을 이곳저곳에 짱 박아 놓는, 버리는 거 진짜 싫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유럽으로 떠나는 데 허용되는 수화물 무게는 고작 30kg 뿐이었다. 


그마저도 유럽에서 살 수 없는 한국 냄새 풀풀 나는 소품들이 자리 잡아야 했다. 개인적인 물건이라곤 여분의 옷 두 벌과 신발 두 켤레 속옷 그리고 화장품이었다. 가능할까?라고 걱정됐지만 시원했다.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동안 느꼈던 아쉽고 후회되는 순간도 함께 버렸다. 더 다정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제는 몸도 마음도 채우기만 하면 된다.


새로운 모험을 떠나기에 주저하는 마음이 먼저 드는 적지 않은 나이의 평범한 사람. 이 모든 일은 둘이 함께라야 가능한 일이고 우린 아무것도 아니기에 또한 뭐든지 될 수 있었다.       



앨리스 #6. 필연적으로 

'나도 게스트하우스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하는데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런던에서 스태프로 일할 때 만났던 사장님이다.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의 작은 사람.


이 사람은 밝고 웃음이 많았다. 세상 몸 쓰는 일 안 할 것 같이 곱게 생겼는데 그렇게 손이 야무질 수가 없다. 대화 코드나 개그 코드가 잘 맞아서 같이 놀면 재미있었다. 제일 좋았던 점은 똑 부러지는 의사표현이다. 천사 같은 얼굴로 하하 호호 웃다가도 아닌 것, 잘못된 행동에는 즉시 척결하는 야무진 맛이 있다. 의외지만 무자비하고 냉정하다.

앞에서 웃고 뒤에서 욕하는 사람은 많이 봤다. 사회생활이란 모두 본인의 이익이 먼저지 누군가를 존중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인간미가 없는 세상에서 노동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고 나 또한 회사의 소모품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나의 런던 살이는 달랐다. 일하는 만큼 벌었고 성과에는 눈에 보이는 보상을 받았다. 노동을 존중해 주었다. 그러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사장님의 타고난 조련력도 한몫했겠지만 가지고 있는 성정이 원체 좋은 사람이었다. 같이 지내며 그녀가 가진 좋은 말과 행동을 배울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유럽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지 각종 꿀팁도 주고 슈퍼 진상을 만났을 땐 어떤 식으로 해결했는지 책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경험에서 나오는 궁금한 점들을 솔직하게 얘기해 주었다. 막상 내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보니 이런 말 해 주는 건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겠다. 간지러웠던 부분만 쏙 쏙 골라 긁어준 우리 사장님에게 새삼 고맙다.

그녀와는 여전히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존댓말을 하는 동갑내기 친구다. 한국 반대편의 나라에서 만났지만, 기간도 오래되지 않았지만 속마음을 술술 털어놓을 수 있다. 뜬금없이 연락해 ‘보고 싶어요’ 해도 어색하지 않다. 


우연히 같은 날 제주도로 여행을 온 그녀와 어이없게 급 만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계획이 없어도 우린 언젠간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

수많은 국가 중 영국에 가게 된 것도, 많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하필 거길 고른 것도 모든 것은 우연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인연을 믿는다. 일도 사랑도 사람도. by 벨레 매거진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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