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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짓기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황반장의 米식 일기 ① 프롤로그

by 황반장


오늘 아침은 호랑이콩을 넣어서 밥을 지었다. 콩밥을 좋아하는 편인데 여름에는 강낭콩이나 호랑이콩을 넉넉히 넣고 밥을 지으면 좋다. 이 콩을 넣고 밥을 하면 파실 파실 하게 입안에서 부서지는 식감과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이 지친 여름의 입맛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호랑이콩으로 밥을 지을 때는 다른 잡곡을 더 섞는다거나 식감이 센 현미를 섞지 않고 백미로 밥을 짓는다. 하얀 쌀밥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에 호랑이콩이 들어가면 그 맛이 더 도드라지고 풍미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밥에 넣어 먹는 콩을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는데 ‘밥밑콩’이라고 한다. 콩이 제법 비싸기 때문에 자급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를 위해 주말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다. 벚꽃 필 무렵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완두콩, 강낭콩, 호랑이콩, 선비잡이콩, 아주까리 밤콩, 서리태를 순서대로 심고 수확해 바로바로 밥에 두어 먹는다. 다른 맛, 다른 모양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도 있고 그때그때 밥맛이 달라지니 밥이 지루하지 않다.


호랑이콩 밥.jpg 호랑이콩을 두어 지은 밥 한 그릇



직접 밥을 지은 지 벌써 10여 년이 훌쩍 지났다. 많을 때는 하루에 두 번,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밥을 지었으니 2,000번 이상 밥을 짓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여러 번 밥을 지었지만 아직도 쉽지 않은 게 밥 짓기다. 쌀의 품종이나 상태에 따라서, 물의 양에 따라, 밥을 짓는 용기의 종류에 따라서도 조금조금씩 다른 결과가 나온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밥을 지을 수 있지만 누구나 맛있게 밥을 짓는 건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밥맛을 좌우하는 데는 아무래도 쌀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아무리 밥 짓는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쌀이 좋지 않은데 맛있는 밥이 될 리 없다. 그런데 이 쌀 맛이 1년 열두 달 다 같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쌀은 1년에 딱 한번, 가을에 모두 수확된다. 전 국민이 먹을 1년 치 쌀 약 400만 톤 정도가 10월, 11월에 모두 수확되고 이후에는 이때 수확한 쌀을 보관해서 필요할 때 도정해 유통된다. 하지만 쌀의 품질이 1년 내내 균일하게 보관되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도 빠지고 덩달아 영양가도 떨어지고, 심할 경우 산패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니 갓 수확한 햅쌀이 제일 맛있고, 덥고 습한 다음 해 여름 장마철에는 맛이 많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백미.jpg 밥의 기본이 되는 쌀



나한테만 생기는 일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도 그만 아니겠냐 싶지만, 매일매일 먹는 밥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바로 '도정일자'를 확인하는 것이다. 쌀은 다른 곡물과 다르게 '도정'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먹을 수 있다. 처음에 논에 심어져 있는 것은 ‘벼’라고 하고 이 벼의 겉껍질인 왕겨를 벗겨 내면 ‘쌀’이라고 부른다. 정확하게는 ‘현미’가 되겠다. 이 현미를 다시 깎아 내면 ‘백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쌀에 물을 부어 끓여 내면 비소로 ‘밥’이 된다. 벼 겉껍질을 벗겨 쌀이 되고 나면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더 많이 빠져나가게 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최근 도정한 쌀을 고르고 2주 미만에 다 먹을 수 있는 양을 구매하는 것을 권장한다.


또 하나는 다양한 곡물이나 재료를 활용해 밥에 밥맛의 변주를 해보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보리나 귀리, 조 같은 곡물을 넣기도 하고 콩을 넣기도 한다. 이런 곡물 말고 다른 작물이나 채소를 넣은 밥을 짓기도 하는데 옥수수가 제철일 때는 옥수수밥을 지어도 좋고, 뿌리채소를 이용해 무밥이나 우엉밥을 지어도 좋다. 건강을 위한 밥 짓기이기도 하지만 밥의 맛을 풍부하게 만들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밥 맛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오랫동안 밥을 지어 왔지만 밥에 대한 얼마나 알고 있느냐 묻는다면 대답하기는 조금 막막하다. 이런 질문이 어색하거나 겸연쩍다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이럴까? 오늘도 밥 한 그릇으로 살아갈 에너지를 얻고, 밥심으로 일상을 버텨 낸다. 밥은 먹었느냐 안부를 확인하는 것을 사람의 관계의 기본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이 ‘밥’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무심하게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밥을 <밥답게> 지어보고 싶다.



밥짓기.jpg
선비잡이콩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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