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목공 ++ ① 원목 쓰레기통
“그렇다. 원목으로 만들고 싶었다.
쓰레기통이라고 늘 플라스틱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우리 집 쓰레기통은 늘 플라스틱이었다. 공교롭게 다 아이보리색인데 내 책상 아래 놓아둔 작은 휴지통과 아이방 휴지통, 베란다에 둔 15리터쯤 들어가는 중형 쓰레기통이 그렇다. 마트에 가면 싸고, 가볍고, 색상도 그럭저럭 무난한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넘쳐나니, 쉽게 사서 쓰기에 부담이 없는, 일종의 소모품 같은 것이 이 플라스틱 쓰레기통이다.
쓰레기통도 쓰레기로 버려질 거라고 잘 생각하지 않고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색도 바래고, 영원히 그 모습일 것 같던 플라스틱이 삭아서, 보기에도 좋지 않아 교체할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마트에 갈 때 새 쓰레기통을 하나 사야지 생각하고 이번에는 좀 화사한 색으로 바꿀까 어쩔까 생각했다. 내구성을 생각해 스테인리스 재질은 어떨까 싶기도 했는데 사무실에서 쓰는 큰 스테인리스 휴지통을 보니 집안에 들여놓기는 좀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어 제외했다.
마트에서 이것저것 플라스틱 휴지통을 보는 게 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색상도 색상이거니와 재질이 썩 와닿지 않아서 더 고를 일이 아니다 싶어 다른 물건만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곰곰이 생각하니 나무로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쓰레기통을 원목으로? 처음에는 의문이었지만 집안 가구 상당수가 목공을 시작하면서부터 만들어온 원목인데, 오히려 플라스틱 재질이 들어오면 안 어울릴 것 같았다. 거기에다 인간이 만들어 쓰고 버리는 수많은 플라스틱이 고래를 멸종위기로 내몰고 북극곰 가족을 해치며, 결국을 나를 위협하는 유해물질이 되어 돌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또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름 목공 생활을 이어오며 원목으로 눈이 높아진 나름 고-오급 목공 생활자가 아니던가? 나름의 명분이 세워졌다. 그래. 만들자!
일단 크기를 정해야 한다. 우리 집에서는 10리터 쓰레기봉투를 사용하니까 이게 쏙 들어가는 크기로 하기로 했다. 가로 × 세로 × 높이 이렇게 계산해 10리터를 맞춰볼까 했지만, 생각해 보니 쓰레기봉투는 쓰레기를 다 채웠을 때 원형이 된다. 만들려고 하는 쓰레기통은 사각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약간 더 크게. 그래서 쓰레기봉투 크기를 재기로 했다. 꽉 찬 쓰레기봉투의 크기를 개략적으로 줄자로 재고 나서 뚜껑을 덮을 것 까지 생각해 크기를 결정했다.
다음 단계는 머릿속의 그림을 밖으로 꺼내서 실물처럼 그려보기. 그려보면 나무를 재단할 크기와 방법, 제작 순서 등이 정리된다. ‘스케치업’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엄청 좋다고들 하는데 쓸 줄 모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이면지에 생각나는 데로 쓱쓱 그려도 원하는 효과는 모두 얻을 수 있다. 이제 고학년이 되신 아드님이 쓰지 않는 스케치북에 연필로 도면 흉내를 내며 그려 나가고 있는데 나름 예술하는 느낌이고 만족감도 준다. 아무튼 이런 과정은 스케치와 도면 그 중간쯤이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다.
사각형 상자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니 공정상의 어려움은 없겠다 싶었다. 두께 12mm의 레드파인 집성목을 이용해 피스 나사못으로 체결할 것이어서 미리 드릴로 뚫어 놓는 나사못의 구멍만 조심하면 된다. 가운데를 정확히 뚫지 않으면 나무가 얇아 터져 나오듯 나무가 깨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눈으로 적당히 하지 않고 자로 눈금을 그어서 작업했더니 실수하지 않고 작업이 잘 되었다. 역시 선을 그려서 정확히 표시하고 작업하는 버릇을 몸에 익혀야 한다.
사각으로 모양을 잡고 다리를 달았다. 좀 밋밋할까봐 불안해 다리를 달아주었는데, 그러고 보니 위쪽이 또 심심해 보였다. 쓰고 남은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자투리가 있어 이걸로 뚜껑에도 포인트를 주었다. 폴리카보네이트와 함께 결합되는 나무 부분은 아무래도 색을 입히는 게 좋을 듯하여 밤색으로 칠했다. 손으로 자주 만지게 되는 곳이고 쓰레기가 투입되는 위치니 오염방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다 완성되었다 싶었는데 뚜껑에만 짙은 색이 있으니 이게 또 왠지 불안해 보였다. 사실 불안한 건 원목 쓰레기통이 아니라 내 마음일 텐데 말이다. 이걸 다시 어떤 작업을 하게 되면 또 마음에 딱 안 차는 부분이 보이고, 그래서 그걸 작업하면 전체가 달라 보이니 또 어떤 걸 하게 되고, 이러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쳇바퀴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불안은 작업을 잠식한다.
‘이래서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야 하는 건데 말이야, 분명 후회할 거야’ 하면서도 벌써 손은 아랫부분에 색을 입힐 준비를 하고 있다. ‘이놈의 갈대 같은 마음’... 후회는 후회고 이미 몸은 움직였으니 어쩌겠는가? 쓰레기통 하단에만 뚜껑과 같은 색을 칠하기로 하고 벌써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짧은 반바지를 입은 원목 쓰레기통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