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나무의 시절

어쩌다 목공 ++ ⑩ 고무나무 서랍장

by 황반장

나무는 두 번의 시절을 산다. 한 번은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펼쳐 잎을 돋아내는 때다. 햇빛을 받아 그 푸르른 생명을 쏟아내는 시절이다. 두 번째는 뿌리를 거두고 나무에서 목재가 되는 때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켜켜이 쌓인 나이테가 아름다운 시절이다. 가끔은 목공을 하면서 이 나무의 시절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고무나무로 서랍장을 만들기로 했다. 익히 알고 있는 고무를 채취하는 그 고무나무가 맞다. 이 고무나무의 줄기나 잎을 자르면 하얀 수액이 나오는데, 이 수액을 굳히면 생고무가 된다. 라텍스라고도 부른다. 아시아와 중남미에서 많이 자라며, 고무를 채취하고 나면 목재로 가공된다. 인도 고무나무, 파라 고무나무 같은 것들이다. 중남미에서 자라는 고무나무의 이름은 파나마 고무나무다. 전 세계에 2,000여 종의 고무나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의 제주도에서도 고무나무가 자란다고 한다. 작은 고무나무들은 반려식물로 많이 키워지는데, 뱅갈 고무나무는 거실이나 베란다에서 자란다.


고무 채취를 위해 키워진 고무나무들은 평생 수액을 내어주며 한 시절을 보낸다. 두껍고 푸른 둥근 잎이 떨어지고 나면, 이번에는 목재가 되어 다른 시절을 살아가게 된다. 목질이 단단한 하드우드여서 가공성이 좋고 물기에도 강하다. 색이 밝으면서도 무늬가 선명해 원목가구로 많이 사용된다. 가구용 목재로써는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저평가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오직 인간 세계의 문제다. 고무를 만들기 위해 고무나무를 아주 많이 심고, 다시 벌목해 내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수량이 많다. 그래서 고무나무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나무가 되어버렸다. 인간 세계에서는 희소성이 가치를 대체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드는 고무나무 서랍장은 아들의 옷가지를 수납하는 용도다. 이제는 초등 고학년이 되어 옷의 수와 부피가 늘어나서 아들 옷만을 위한 서랍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주 단단한 나무이기 때문에 굳이 두꺼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어 15t 두께의 탑 핑거조인트 집성목으로 하기로 했다. 말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탑 핑거조인트는 나무를 집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가구를 만드는데 하나로 된 통판을 사용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만큼 지름이 큰 나무도 드물고 가격도 많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조각의 나무들을 붙여서 사용하는데 이 작업을 집성이라고 한다. 이 집성을 하는 방식 중에, 붙인 자리가 판재 위에서 보이는 것을 탑 핑거라고 하고 옆면에 보이게 되는 것은 사이드 핑거라고 한다.


이번 서랍장은 수납이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에 서랍을 최대한 넓게 사용하게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서랍이 가장 크게 나올 수 있도록 4단의 서랍을 설계했다. 안쪽 서랍은 12t 두께의 레드파인 원목과 4.5t 미송합판을 이용한다. 서랍은 굳이 두꺼울 필요가 없으며, 최대한 가벼운 것이 실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상당히 공을 들여 자료도 찾아보고 나름의 고민을 얹었다. 일반적인 직사각형 서랍장은 좀 밋밋하다 싶어 서랍장의 최상단에는 좀 작은 서랍을 더 만들어 주기로 한 것. 깊이도 좀 줄여서 만들고, 아래 부분과의 깊이 차이만큼 곡선을 따내서 둥근 모양을 만들어 준다. 이렇게 하면 간단한 소품을 수납하거나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수납을 많이 하겠다는 애초의 목적과는 좀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4단 서랍장의 상판 부분을 활용하는 개념이다. 작은 서랍을 하나 더 얹어주는 4+1 서랍장쯤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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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의 레일을 다는 데는 조금 애를 먹었다. 크기가 큰 4개의 서랍에는 3단 볼레일을 사용했고 상단의 작은 서랍은 철레일을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3단 볼레일을 달 때 0.5mm의 여유 간격을 더 두라고 하는데 너무 딱 맞게 제작을 해서 들어갈 때 상당히 뻑뻑한 감이 있었고, 철레일은 처음 사용해 보는 것이어서 작은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자리를 잡으니 부드럽게 여닫혔다.


이렇게 서랍장 작업을 하는데 아들 녀석이 목공방에 찾아왔다. 그때 내가 작업하는 모습을 자기 스마트폰으로 찍은 모양이다. 사진으로 기억된 작업하는 모습이 좀 생소하다.


아마도 베트남 어디쯤에서 고무 수액을 내어주었을 그 고무나무는 어찌 나의 손이 닿아 다시 서랍장이 되었다. 이제는 아들의 옷을 수납해주는 고마운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렇게 고무나무의 두 번째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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