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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시금치는 왜 옆으로 자랄까?

텃밭의 속사정 ⑰ 시금치

by 황반장

처음 심어본 시금치 씨앗에는 뿔이 나 있었다. 마치 가시처럼 뾰족 뾰족한 뿔이었다. 보통 씨앗들은 대부분 동글동글이나 동글납작이나 동글길쭉하다. 다 동그랗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피라미드 모양에다 뾰족한 뿔이 나있는 씨앗은 엄청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씨앗은 서울도시농업시민협의회의 씨앗 나눔 행사에서 받아온 씨앗이었다. 이름은 ‘함안 뿔시금치’. 아마도 경남 함안 지방에서 대대로 키워지던 뿔이 난 듯한 모양의 시금치를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뿔시금치.jpg ▲ 토종 함안 뿔시금치 씨앗


이렇게 나눔 받았던 씨앗을 봄에 날이 풀리자마자 밭을 만들어 심었었다. 토종씨앗인걸 감안해 밭에는 비료성분이 없도록 했고 퇴비만 조금 넣어 주었다. 두둑을 만들어 주고 손가락으로 길게 줄을 긋듯이 골을 파 줄뿌림을 했는데 수분을 유지하도록 차광막을 덮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주일을 기다리고 차광막을 걷어보았는데 기대했던 파릇파릇 새싹은 보이지 않았다. 살짝 실망이었지만 일주일 만에 발아하지 않는 씨앗은 많다. 또 씨앗 껍질이 두꺼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는 다시 차광막을 덮어주고 물을 충분을 주었다.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 보았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금치가 맛있는 계절은 겨울이다. 마트에서 사온 포항초나 남해초 같은 브랜드가 있는 시금치는 손질할 때 더 신경을 쓰게 된다. 겨울철 시금치들은 가운데 뿌리를 중심으로 잎이 둥그렇게 퍼져나가 있다. 이런 모양의 식물을 로제트 식물이라고 부르는데 시금치가 대표적이고 냉이도 그렇다.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을 비켜서자니 땅에 바짝 엎드려야 한다. 또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아 광합성을 하려고, 위로 자라는 게 아니라 잎을 옆으로 둥글게 펼쳐 나가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있는 힘을 다해 잎과 줄기에 당분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얼어 죽지 않는다. 이 기가 막힌 시금치의 생존전략을 사람들이 먹는다. 시금치 뿌리를 최소한으로만 다듬고, 보랏빛 줄기를 많이 남기면 더 달달한 시금치를 먹을 수 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서 덮어두었던 차광막을 벗겨냈다. 결과는? 파릇한 새싹들이 예쁘게 줄을 맞춰 자라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듬성듬성, 또 어디는 몰아서 비죽비죽 싹이나 있었다. 발아율로 따지자면 25%가 안 되는 듯했다. 오래된 씨앗이니 이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서는. 또 이거라도 잘 키워봐야지 했다.



KakaoTalk_20220218_150948275.jpg ▲ 겨울철에 더 달디 단 시금치


내가 봄에 심은 뿔시금치는 지나치게 빠르게 자랐다. 잎이 잘 펴지고 싱싱하게 쑥쑥 잘 자라났다는 말이 아니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꽃대가 오르고 씨앗을 맺어버렸다. 자람새는 다 다르고 수확할 것도 없이 잎은 누레졌다. 고수님들께 자문도 구해보고 자료도 공부해보니 뿔시금치는 가을에 재배해 겨울을 나는 품종이란다. 이걸 봄에 심었으니 날이 따뜻해지면서 꽃대가 빨리 올라와버린 것이었다.


농촌진흥청의 자료에 따르면 시금치는 동양계 품종과 서양계 품종으로 나뉜다. 동양계 품종은 씨앗에 돌기가 있고 잎자루가 붉은색을 띤다. 각이 저 있고 뿔이 나서 유각종이라고도 부른다. 추위에 강하지만 더위에는 약해서 가을, 겨울 재배에 적합하다. 내가 심은 뿔시금치와 겨울철에 볼 수 있는 포항초, 남해초, 섬초 같은 이름들이 동양계 품종에 해당된다. 반면에 서양계 품종들은 씨앗이 둥근 편이다. 무각종이라고도 부르는데 잎도 둥글고 크다. 봄, 초여름재배에 적합한 품종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무작정 봄에 뿔시금치를 심었으니 제대로 자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시금치를 언제 처음 먹어봤는지는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어릴 적 소풍 때만 먹을 수 있었던 김밥 속에 노란 단무지, 빨간 소세지에 맞춰 녹색을 담당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밥이 대부분을 차지한 이 헐렁한 김밥의 단맛이 바로 시금치였으리라. 중학교 때는 실과인지 가정인지 정확치 않은 시간에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 남자 중학생이 무슨 시금치 된장국에 관심이 있었겠는가. 기억이 남아 있는 건 그 시간과 내가 너무 이질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텃밭농사가 아니었다면 시금치는 영원히 김밥 재료나 된장국 푸성귀로만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시금치 농사에 한번 실패하면서, 칼바람 겨울을 살아내느라 스스로 몸을 낮추고 잎을 펼쳐 버텨낸 시간으로 다시 알게 된 시금치다. 겨울 텃밭에 뿔시금치를 키워봐야겠다.







<도시농부를 위한 시금치 재배 TIP>


- 봄과 가을에 두 번 심을 수 있다. 하지만 계절에 맞는 품종을 선택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 씨껍질이 두껍기 때문에 하루 정도 물에 담가 불려서 파종한다.

- 봄 파종은 40일 정도, 가을 파종은 50일~60 정도면 수확이 가능하다. 수확은 포기채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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