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속사정 ⑱ 마늘
"하아 맛이 기맥히는구만이라. 매큼허고 쌉싸름허고 톡 쏨스로 싼빡허고 얼큰헌 것이 아조 지대로된 약마늘 이구만요. 단오술에 약마늘로 안주꺼징 했으니 이 중놈 금년 한 해 무병허게 나게 되았소. 덕분에 단오치레 톡톡허니 했구만요."
1995년에 출간된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4권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주요 등장인물인 공허 스님이 마늘을 뽑고 있는 농부 부부에게 술 한잔을 얻어 마시고 생마늘을 안주 삼아 먹는데, 마늘 맛에 대한 묘사가 문장에 쓰인 것처럼 ‘싼빡’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늘에 대한 첫 이미지는 이 소설을 읽고 만들어졌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도 ‘마늘’하면 이 소설의 장면이 떠오른다. 문장의 표현이 대단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가 살던 환경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고향인 경기도 파주에서 나고 자라 20대까지 마늘이 밭에 심어진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주변 어디에도 마늘밭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늘은 엄마가 봄이면 몇 접을 장만해서 부엌 앞 기둥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필요할 때마다 빼내서 쓰는 양념이었다. 껍질이 벗겨진 쪽마늘이나 다진 마늘만 보다가, 푸른 잎이 솟아 있는 마늘이 밭에 심겨진 모습은 30대가 돼서야 처음 보았다. 아직도 추운 기운이 남아 있는 남도의 어느 마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이 있던 지인에게 ‘아직 꽤 추운데 밭에 심어진 저 푸릇푸릇한 것은 뭔가요?’하고 물었었다.
사실 마늘만큼 익숙한 작물이 또 있을까? 백일 동안 마늘과 쑥을 먹은 곰이 사람이 되어서 단군왕검을 낳아 만들어진 나라의 백성이니 말이다. 비단 어렸을 때부터 귀에 박히게 들은 단군신화뿐만 아니라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끼니마다 먹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30년을 살고 마늘의 온전한 모습을 처음 마주하다니!
요즘의 마늘은 ‘한지형(寒地型)’ 마늘과 ‘난지형(暖地型)’ 마늘로 분류된다. 한지형 마늘은 우리가 들어보았을 법한 ‘의성 마늘’, ‘서산 마늘’, ‘단양 마늘’ 같은 것으로 중부내륙과 해안지역에서 재배되는 마늘이다. 이 세 개 지역에 토종 마늘을 꾸준히 개량해 오늘에 이르렀다. 한지형 마늘은 통마늘을 쪼개 보면 여섯 개의 쪽마늘로 나뉘어 있어서 ‘육쪽마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난지형 마늘은 이보다 더 따뜻한 남쪽에서 재배된다. 경남의 남해와 창녕, 전남의 고흥, 그리고 더 따뜻한 제주도에서 재배되는 마늘을 뜻한다. 제주도에서는 ‘제주종’, 남해에서는 ‘남해종’이 키워진다. 도입종도 많이 키워지는데 스페인에서 도입한 ‘대서 마늘’과 대만에서 도입한 ‘남도 마늘’이 대표적이다. 난지형 마늘은 한지형에 비해 쪽이 더 많다. 스페인 마늘이라고 불리는 마늘은 스페인에서 수입한 것은 아니고 1980년대에 스페인 품종을 도입한 것이다. 40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 말이 쓰인다.
한지형 마늘은 보통 10월 중하순에 파종해 겨울을 나고 6월 중하순에 수확한다. 난지형 마늘은 이보다 일찍 9월에 심고 5월 중순에서 6월 상순이면 수확해 출하된다. 한지형 마늘과 난지형 마늘 중 25% 정도가 껍질이 있는 통마늘로 유통되고, 나머지 난지형 마늘은 대개 깐마늘로 유통되고 있다.
부엌 입구에 매달린 마늘만 보고 살다가 밭에 심겨진 마늘을 보고 깜짝 놀란 수십 년이 지나서 직접 마늘을 심어보기로 했다. 품종선택이 어려웠는데 내가 마늘을 심을 곳은 남한 최북단의 파주가 아니던가?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내가 보기에는 한지형 마늘이나 난지형 마늘이나 둘 다 따뜻한 남쪽나라 마늘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이름으로 보면 한지형 마늘이 나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거 얼어 죽으면 어쩌나 싶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아이와 함께 임진각에 킥보드를 타러 갔다가 철책선을 보고 있자니 북한에도 마늘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마늘의 민족인데 북한에 없을 리가? 자료를 찾아보니 2005년 남북이 공동 편찬했다는 ‘조선 향토 대백과’에 북한 마늘이 소개되어 있었다. 북한의 최북단인 함경북도 회령군에 지역 특산품으로 ‘회령 여섯쪽 마늘’이 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추위에 아주 강해서 뿌리가 잘 내렸을 경우 영하 25도에서도 자라고, 눈이 덮이면 영하 30도에서도 얼어 죽지 않는다고 한다.
'회령 여섯쪽 마늘‘을 구해 심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불가능한 일일 듯하여 ’서산 육쪽마늘‘을 심었다. 시기가 좀 늦어서 10월 말에 심게 되었고 보온도 잘해주지 못했지만 신기하게도 추위를 견뎌내고 싹을 내밀었다. 재배 기술도 부족하고 주말을 이용한 텃밭 농사여서 시장에 나오는 실한 마늘은 아니고 조금은 작고 예쁜 마늘이 자라났다. 밭에 앉아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저게 무엇이냐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남한 최북단으로 상경한 마늘이었다.
(최근에는 파주시에서도 추위에 강한 새로운 마늘 품종을 시험 재배하고 있다)
<도시농부를 위한 마늘 재배 TIP>
- 씨알이 굵고 상처가 없는 쪽마늘을 씨마늘로 준비한다. 요즘은 서울 인근의 화훼단지, 종묘상 등에서도 씨마늘을 판다. (시중에서 파는 껍질을 까지 않은 통마늘을 사용해도 된다.)
- 심기 하루 전에 목초액이나 현미식초 200배 희석액에 30분 정도 담갔다가 그늘에서 말린 후 심으면 좋다.
- 20cm 간격으로 보온을 위해 덮개를 덮어주어야 한다.
- 다음 해 6월 정도에 잎의 3분의 2 정도가 누렇게 변하면 수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