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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반장 Jul 20. 2022

나무를 찾는 여행

사적 목공 에세이 ④ 편백, 히노끼 (Japanese cypress)

코로나 팬데믹 바로 전 해에 다녀온 곳이 일본의 옛 수도 ‘교토(京都)’였다. ‘늙어지면 못 노나니 부지런히 놀아보세’라며 이곳저곳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계획된 다음 행선지도 있었는데 베트남의 하노이행 표를 예매해 놓고는 덜컥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다가 제대로 환불받지 못한 쓰라린 경험도 덤으로 얻었다. 새로운 가방을 꾸릴 수 있는 때가 또 오기야 하겠지만, 이전 여행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는 여러모로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간사이 공항에 내려 버스로 교토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고 호텔에 체크인후 제일 먼저 간 곳이 교토역 근처의 대형 가전매장 ‘빅 카메라’. 아들 녀석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교토까지 온 거의 유일한 목적은 미니어처 자동차 장난감 ‘토미카’의 새로운 모델을 구하기 위해서다. 안락한 여행을 위해서는 이 녀석의 입을 막는 것이 우선이므로 제법 큰 토미카 매장이 있는 이곳이 첫 번째 방문지가 되었다.


다음날은 본격적인 일정 돌입이다. 금각사, 은각사, 청수사 같은 곳을 쭈욱 돌아보는 것이었는데 버스나 지하철을 갈아타며 이동하는 것이 번잡할 것 같아서 투어버스를 미리 예약해 놓았었다. 교토역 앞에서 시간 맞춰 투어버스를 탔는데 이게 웬일인가? 버스 안에는 모두 일본 관광객들 뿐이다.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노부부들이고, 자녀나 손자들로 보이는 젊은 친구를 대동한 몇몇도 보였다. 외국인 반, 일본인 반인 교토인데 지금 이곳에선 우리 가족이 유일한 외국인이다. ‘칸코쿠진 가족이 이 버스를 탔네요’ 라며 수군수군. 어쩌랴. 버스는 이미 출발했다.


‘금각사’에는 교토로 수학여행을 온 일본 중고등학생으로 인산인해였고, ‘은각사’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한가득이었다. 다음 코스가 내가 제일 관심 있는 청수사, 기요미즈데라 (清水寺, きよみずでら)다. 여긴 우리나라 패키지여행 팀들이 많았다. 일행인 척 뒤에 서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폭포에서 세 갈래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면 건강과 사랑을 얻게 되니 꼭 마시고 내려오라 일러주는데 한국어 설명이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관심 있는 ‘기요미즈의 무대’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가 없어서 이내 뒤로하고 언덕길을 올랐다.


‘기요미즈의 무대’는 청수사 본당에 달린 테라스 같은 곳으로 13미터나 되는 절벽 위에 세워진 공간을 말한다. 법회나 공연을 하는 곳인데 절벽 위에서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전망대를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이 ‘기요미즈의 무대’는 절벽 아래 바닥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세워졌는데, 수령 400년이 된 거대한 '느티나무(欅)' 기둥 18개를 세우고 다시 가로로 보를 엮어서 종횡으로 서로 지지하고 있는 구조다. 이걸 ‘가케즈쿠리 (かけづくり)’라고 부르는데 쇠못이던 나무못이던 못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목재끼리 서로 받쳐주는 일본의 전통 건축공법이다. 지금의 모습은 1633년에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기요미즈데라의 가을 (이미지 출처 - 기요미즈데라 공식 홈페이지)
'기요미즈의 무대'를 지지하는 느티나무 기둥  / 목재 결합부에 올려진 작은 나무판은 빗물 침투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미지 출처 - 기요미즈데라 공식 홈페이지)



두 번째로 보려고 하는 것도 청수사 본당에 있다. 이번에는 무대를 받치는 기둥이 아니고 지붕이다. 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찾아본 청수사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는데 그중 가장 호기심이 드는 것이 지붕이었다. 일본의 국보이기도 하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찰의 지붕이니 멋진 장식을 한 기와를 상상했지만 청수사의 지붕은 사진만으로는 뭔지 알기 어려웠다. 이 신기한 지붕에 얹은 재료는 다름 아닌 ‘히노끼의 껍질(檜皮)’이라고 했다.  ‘히노끼(,ひのき)’는 우리나라에서는 '회목', '노송나무'라고도 부르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름은 ‘편백’, ‘편백나무’다. 이 ‘히노끼(,ひのき)’의 껍질을 얇게 떠서 핀 후에 75센티 길이로 잘라 켜켜이 붙여서 지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스기(スギ, 삼나무)로는 배를 만들고, 히노끼(ひのき, 편백)로는 집을 짓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건축에 ‘히노끼’를 많이 사용한다. 이 ‘히노끼 껍질 지붕’을 실물로 보려는 생각에 걸음이 빨라졌다.


청수사 본당의 히노끼 껍질 지붕 작업 (이미지 출처 - 기요미즈데라 공식 홈페이지)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청수사 본당은 대대적인 공사 중이었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 4년여에 걸친  보수공사 이후 50여 년 만에 다시 보수를 한다는 것인데 하필이면! ‘기요미즈의 무대’는 전면에 보수 공사용 발판이 세워져 접근할 수 없었고 ‘히노끼 껍질 지붕’은 가림막이 처져 있어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본당에는 들어갈 수 있어서 수리 중인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어깨너머로 들은 가이드의 말이 생각나 본당 아래 있는 폭포수 물은 기어이 마시고 돌아왔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겨울에 청수사의 대보수가 마무리되었다는 일본 언론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히노끼 껍질 지붕’은 모두 교체되었는데 에도시대 문서에 따라 이번에는 96센티 길이를 사용했다는 것과 ‘기요미즈의 무대’ 바닥판 166장 모두를 ‘기소 히노끼’로 교체했다는 것이다. ‘기소 히노끼’란 일본의 ‘나가노현’의 ‘기소’ 지방에서 자라는 히노끼를 말하는 것인데, 내륙인 이 지방은 겨울이 길고 추워 나무가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목질이 치밀하고 뒤틀림이나 균열이 없다. 일본의 궁궐이나 국보(國寶)의 개보수, 신축에 쓰이기 때문에 히노끼 중의 히노끼로 인정받는다.



2020년 12월. 대보수가 완료된 청수사 본당 (이미지 출처 - 디지털 아사히 홈페이지)


이런 소식을 접하니 다시 여행가방을 챙기는 꿈이 무럭무럭 자라나기도 한다. 찜해둔 곳은 일본 ‘나라현’의 ‘호류지(法隆寺, ほうりゅうじ)’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금당’과 31.5미터의 ‘5층 목탑’이 있는데 모두 ‘기소 히노끼’로 만들어진 것이다.




목공을 할 때는 ‘편백(扁柏’)과 ‘히노끼(ひのき)’라는 말이 모두 쓰인다. ‘편백’은 이파리가 납작하게 생긴 모습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히노끼’는 ‘불의 나무’라는 뜻으로 옛날 일본에서 불을 피우는데 이 나무를 사용했다는 쓰임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편백나무 판재를 길게 재단해서 아들방에 걸어줄 여행지도 액자를 만들었다. 지도만 사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동안 어떤 나라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더 이상은 미룰일이 아니다 싶어 부랴부랴 작업을 마쳤다. 액자의 지도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괜스레 나무의 여정(旅程)에 생각이 닿는다.

 





* 메인 이미지 - 교토 여행 기념엽서, 청수사 본당이 공사 중이어서 사진을 별로 찍지 않은 모양이다. 이곳의 기억은 투어버스의 친절한 가이도상이 나눠준 엽서로만 남았다.


* 참고 - 기요미즈데라 공식 홈페이지

https://www.kiyomizudera.or.jp/


* 인용 기사 출처 - 디지털 아사히

https://www.asahi.com/articles/photo/AS20201203002949.html?iref=pc_photo_gallery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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