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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반장 Aug 02. 2022

멀바우는 없다.

사적 목공 에세이 ⑤ 멀바우 (Merbau)

사실 나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겨우 이름 몇 개정도를 알고 있었는데 누구나 아는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같은 것들이다.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외국어 이름의 나무는 좀 생소했다, 가로수로 많이 심어진 ‘플라타너스’도 입에 잘 붙지 않았다. ‘메타세콰이어’라고 평생 알고 살았는데, 언젠가 담양 여행에서 이 나무의 올바른 명칭은 ‘메타세쿼이아’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어쩐지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이 나무는 아직도 발음이 익숙히 않다. 아! 그래도  활엽수와 침엽수는 구별할 수 있었다.


이런 형편이니  이 나무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다시 목재가 되어서 사람 사는 일과는 무슨 관계가 되는지 살펴볼 일은 없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어서 눈으로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공을 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 목재의 성질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내가 만들려고 하는 가구에 적합한 것을 고를 수 있고, 취향을 반영하려면 색상이나 나뭇결 같은 것도 알아야 했다. 또 나무에 따라 가격대도 천차만별 차이가 있으니 그저 나무면 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생소한 나무 이름이 등장하면 꽤 난감해지기도 한다. ‘메이플’, ‘오크’, ‘올리브’처럼 이름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건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멀바우’, ‘마호가니’, ‘에보니’, ‘음핑고’, ‘지브라’, ‘부빙가’ 같은 이름이 나오면 도대체 이런 나무가 실제로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가없다. 도마용으로 가공된 작은 판재를 보고도 이 어려운  이름을 척척 맞히는 분들을 보면 눈썰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멀바우(Merbau)’도 그런 생소한 나무들 중 하나다.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슬픈 사연을 간직한 바위 이름을 연상했었다. 왜 사랑하는 이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는 앞만 보고 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뒤를 돌아보다 눈이 멀어 그 자리에서 바우가 되었다나 뭐라나 하는 전설 같은 것 말이다.  

갑자기 무슨 우스갯소리인가 할 수 도 있지만 이름만 들어서는 도무지 어떤 것도 떠올릴 수 없어서 이런 상황이 연상되었으리라. 사실 멀바우는 딱 하나로 정의되는 나무 수종의 이름이 아니다. ‘멀바우(Merbau)’, ‘크윌라(Kwila’), ‘이필(Ipil)’ 등 주로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와 뉴기니 섬 등 태평양 제도에서 자라는 ‘콩과 인씨아속(Intsia屬)’의 나무를 총칭해서 ‘멀바우’라고 하는 것이다. 또 이들 국가에서는 이 멀바우의 벌목과 반출을 통제하고 관리한다고 하니 이미지를 떠올릴 만한 계기가 될법한, 실제 나무를 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 듯싶다.  


하지만 의외로 주변 많은 곳에서 ‘멀바우’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없으니 최대 60미터까지 자란다는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목재로 가공되어 가구나 마루, 데크 같은 것으로 변신한 멀바우를 말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카페의 테이블이다. 붉은빛이 도는 진한 갈색과, 회색이 섞인 듯한 밝은 갈색이 서로 엇갈려 있는 테이블 상판이 있다면 아마도 멀바우 집성목일 가능성이 높다. 멀바우의 변재(목재의 바깥 부분)와 심재(목재의 안쪽 부분)의 색상 차이 때문에 이 둘을 붙여서 만들어진 집성목은 특유의 색상 조합을 보이기 때문이다. 주택의 마루나 계단에도 멀바우가 쓰인다. 헤링본으로 한껏 꾸민 짙은 색 마루는 대개 멀바우다. 또 전원주택의 데크에 사용된 목재에서도 종종 멀바우를 찾아볼 수 있다. 아예 건물 전체를 멀바우로 뒤덮은 곳도 있는데 경기도 파주의 헤이리 마을에 있는 '한길 북하우스'가 그곳이다. 이 헤이리 마을에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많아 멀바우로 외관을 장식한 이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멀바우가 이렇게 가구뿐만 아니라 바닥재나 건축 외장재로도 쓰일 수 있는 것은 워낙에 무겁고 단단하면서도 잘 썩지 않고 벌레 피해도 입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구연한이 아주 긴 나무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 마을의 '한길 북하우스' 멀바우 벽을 감싼 우드 루버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런 멀바우를 불과 십수 년 후에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너무 많은 양의 멀바우를 베어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무를 베어 목재로 이용하고, 다시 묘목을 심어 이후에 사용할 나무로 키우는 것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몇몇 수종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많이 남벌해 버려서 멸종위기종이 되거나 진짜로 멸종해버리기도 한다.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Greenpeace)는 지난 2007년, 멀바우에 대한 보고서 ‘Merbau’s Last Stand‘를 발표했다.(https://issuu.com/greenpeace_eastasia/docs/merbau-report) 이 보고서현재와 같은 속도로 벌목이 진행된다면 향후 35년 이내에 멀바우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보고서가 발표된 지 이미 15년이 지났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보고서 발표 이후 멀바우 보호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없었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말이다.



Merbau’s Last Stand - Greenpeace 발행(2007)


보고서에 따르면 멀바우가 사라지는 원인은 너무 많은 양이 벌목이다. 멀바우 한그루가 목재로써 가치가 있을 때까지 자라는 데는 약 70~80년이 걸리는데 현재는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멀바우를 베어내고 있다는 것, 이유는 단단하고 내구성 좋은 멀바우를 마루나 데크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여기에다 멀바우를 베어 운송하기 위한 도로를 내기 위해 다른 나무들까지 덩달아 베어내기도 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런 벌목이 불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급 주택의 마루나 외장재 등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고가의 악기 제작에 쓰이면서   멀바우의 가격은 급상승했다.  중국 건축시장의 확대,성장 등도 이를 부추겼다. 이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불법 거래가 성행하게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벌목되는 목재 중 76~80%가 불법으로 잘려 통나무채로 밀거래되기도 한다. 이미 유사한 사례도 있는데 브라질의 ‘마호가니’다. 가구나 악기를 만드는데 유용하게 쓰이던 마호가니는 같은 방식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이제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물론 보고서 발표 이후로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불법 벌목과 밀거래를 단속하고 나무들의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동향을  보면 아직까지도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국제식물원보존연맹(BGCI)’이  2021년 발표한 ‘세계 나무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나무종 5만 8497종의 29.9%에 해당하는 1만 7510종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의 주된 원인은 인간에 의한 서식지 훼손과 벌목이다.


나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미 있는 행동이 없다면 이제 더 이상 '멀바우'는 없다.





목공 생활의 시간이 쌓이면서 ‘목재’로 한정되었던 관심이 ‘나무’로 확대되어간다. 아직은 초보적인 궁금증에 머무는 수준이지만 즐거운 목공 생활을 이어가려면 나무와 공존하는 슬기로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떤 방법이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너무 늦지 않았다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멀바우 상판으로 포인트를 준 책꽂이


멀바우로 만든 블루투스 스피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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