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본다
책에 나온 주인공이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 어릴 때는 신델레라나 심청전 등 모든 착한 주인공이 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최근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카뮈의 <<추락>>을 읽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다. 주인공 클레망스는 남자고 착한 주인공도 아닌데 그가 자신의 치부를 고백했을 때 내게도 그런 허물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클레망스는 변호사로서 올바른 편에 서서 옳은 판단을 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뇌물도 받지 않아서 당당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이중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재판관-참회자(judge-penitent)가 되었다. 얼핏 들으면 클레망스가 자기 성찰을 통해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 거나. 그러나 그는 결코 선량한 사람이 아니다.
클레망스의 긴 이름은 장 밥티스트 클레망스 (Jean-Baptiste Clémence)다.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성경에 나오는 '세례 요한'(장 밥티스트)과 '너그러움'(클레망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유대인들에게 물로 세례를 줬는데 클레망스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있다. 그는 파리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나이는 40대. 매력적이고, 체격도 좋고, 성격도 좋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특별히 과부와 고아를 변론하고, 맹인이 길을 건너면 멀리서도 뛰어가서 도와주며, 무거운 손수레를 함께 밀어주고, 구세군이 파는 신문이나 나이 든 행상인이 파는 꽃을 사 주고, 버스나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겉옷을 벗어주는 선행을 한 건 아니다. 잘 나가는 변호사답게 고급 고층 아파트에 살며 좋은 옷을 입고 마음에 드는 여자들과 데이트를 즐겼지만 미혼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 집도 없이 암스테르담의 술집에서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에게 신세한탄을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세 가지 사건을 겪고 더 이상 파리에 있을 수 없었다. 첫째, 오토바이 사건이다. 하루는 오토바이 운전자와 시비가 붙었는데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귀싸대기를 맞고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이란 환상이 깨졌다. 사실 클레망스는 일이든 연애든 운동이든 남들보다 뛰어나고 뭐든지 잘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자기보다 족히 머리 하나는 작은 오토바이 사나이에게 얻어맞고 구경꾼에게 '얼간이'라는 소리를 듣자 자기가 남들과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클레망스는 며칠 동안 오토바이 사나이와 구경꾼을 때려눕히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그가 진정 원했던 삶의 목표는 지성이나 너그러움을 함양하는 게 아니라 폭력배처럼 오로지 힘으로 사회를 지배하고 싶다는 걸. 그래서 "모든 지적인 사람은 세상을 장악하는 꿈을 꾼다"라고 주장했다.
둘째, 물에 빠진 여자 사건이다. 애인 집에 갔다가 새벽 한 시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다리 위에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몸을 숙여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잠깐 멈칫했다가 그냥 가던 길을 갔다. 다리 끝에서 한 무리의 남성을 따라 집 쪽으로 가는데 사람이 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밤이어서 소리가 유독 컸고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너무 늦었어, 너무 멀어..."라고 했을 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신문도 읽지 않았다. 그는 알게 됐다. 그가 그동안 해온 선행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였다. 상황에 의해 마지못해 전쟁, 자살, 사랑, 가난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없으면 관심을 갖는 척만 했다. 그리고 편하게 모든 걸 잊었다. 그가 오로지 기억하는 건 자신에 관한 거였다.
셋째, 웃음소리에 놀란 사건이다. 여자가 물에 빠진 사건이 있고 2~3년 후 어느 날, 낮에 사람을 도와줘서 매우 기분 좋았던 날, 다리 위에서 센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봤으나 아무도 없었다. 물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집에 가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알게 됐다.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심판하는데 그게 웃음의 실체라는 걸. 물에 빠진 여자를 구해주지 않았던 걸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은 기억하고 있었다. 양심의 소리가 엄청 늦게 작동하긴 했지만 완전히 고장나진 않았다. 웃음소리 덕분에 자살한 여인 생각도 났고 오토바이 사나이도 생각났다. 그는 알게 됐다. 그동안 자기를 칭찬하고 지지해 주던 친구와 지인들이 사실은 모두 재판관이 되어 늘 자기를 판단하고 있다는 걸.
클레망스는 친구와 지인의 심판이 가장 두렵다. 처벌은 두렵지 않다.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면 부도덕하다는 평가는 피할 수 있다. 며칠 굶어서 도둑질을 했을 거야... 그러나 다리에서 자살하려던 사람을 모른척한 것처럼 인간애가 결여되었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설사 다른 사람이 모른다 해도 스스로 죄의식이 들고 부끄러울 거다. 곰곰이 생각하니 그동안 그가 행한 선행은 모두 순수하지 않았다. 맹인을 도와주고 왜 보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모자를 올리며 인사했을까?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선행을 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기를 비롯한 모든 인간이 이런 위선과 이중성이 있다고 했다. "겸손은 나를 빛나게 하고, 겸손은 정복하기 위한 거고, 덕행은 억압하기 위한 거"라고 했다. 겉보기에 무해해 보이는 태도와 행동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다고 했다.
그래서 파리를 떠났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재판관-참회자'가 됐다. "사람들은 자기가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서둘러 심판한다... 마치 자신의 본성에서 나온 것처럼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자신은 결백하다는 거다." (챕터 4장 10절).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의 심판을 받기 전에 스스로 자신을 심판하면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느끼는 죄의식이 줄어든다고 했다. 게다가 자신의 잘못을 다 말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위에서 다른 사람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참회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비리를 말할 때 비판의 대상이 '나'에서 '우리'로 슬쩍 바뀌었다. 그러면 고백을 듣는 사람이 오히려 자신도 '결백'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 모두가 유죄면 그것이 민주주의일 거다." (챕터 6장 16절). 한마디로 아무도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게 없다는 거다. 맞는 말이지만 어딘지 석연치 않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그가 궁극적으로 원한 건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이다. 세상은 부조리고 규율에 따라 재판하는 신도 없으니 자기가 재판관이 되어 다른 사람도 자기처럼 이중성이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한다는 거다.
클레망스는 성공했다. 나로 하여금 이중성에 대해 생각하게 했으니 말이다. 나는 별로 친절하지 않다. 그래서 매 학기 "친절하고 열정적"교수라는 강의평가가 쑥스럽다. 사실 수업 시간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을 발견하면 수업을 따라올 수 있도록 다른 학생보다 더 관심을 주긴 하지만 따로 시간을 내서 도와주지 않는다. 학생을 설득하는 것도 힘들고 저녁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힘들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친절하고 열정적"이란 평가를 받기 위해선 어느 정도 노력해야 하는 줄 안다. 다른 역할도 마찬가지다. 아내, 엄마, 딸 등 내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나쁜 평가를 받지 않을 만큼만 한다. 반면 내 주위 사람은 모든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살림을 야물게 잘해서 늘 집밥을 외식보다 맛나게 차리는 친구도 있고, 부모를 모시고 살며 살뜰하게 챙기는 친구도 있고, 아이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는 친구도 있다. 또한 티브이를 보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손마디가 굽도록 일하고 약자를 돕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다. 그러나 나는 내 몸이 힘들지 않을 만큼만 한다. 그래서 내가 한 만큼만 바래야 하는데 때로 더 바랄 때가 있는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