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여행

by 명희

난 뭐든지 혼자 하는 게 편하고 좋다. 쇼핑도 혼자 하고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으면 2인분을 시켜서 1인분만 먹고 나머지는 싸 오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여행만큼은 혼자 가는 게 불편하다. 2016년 여름 덴마크에 혼자 갔다가 비행기에서 급채를 하여 병원에 실려간 후 혼자 여행 다니는 게 두려워졌다. 그리고 패키지여행을 알게 됐다.


처음 모르는 사람과 여행을 갔던 곳은 스페인이다. 일주일간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론다 세비아부터 톨레도 마드리드 몬세라트까지 다리가 아플 정도로 돌아다녔다. 그러나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스페인으로 이민 간 여성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과 남성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 덕분이기도 했고 함께 여행한 사람들이 조용히 예의를 지키며 관심을 가져준 덕분이기도 했다. 게다가 혼자 갔으면 적어도 2주 이상 걸리고 다 가보지도 못할 곳을 가성비 좋게 다녀와서 기분이 좋았다.


그 후 패키지여행을 몇 번 더 다녀보니 남편을 데리고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남편은 남과 있는 걸 나보다 더 불편해하는 사람이라 짧은 일정의 홍콩부터 시작해서 차츰 먼 곳으로 발전시켰다. 남편도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내 옆에서 조용히 사진 찍고 밥 먹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무엇보다 내가 평소보다 말을 잘 들어서 좋았을 거다. 우리 둘만 있으면 잔소리도 하고 불평할 수 있는 일도 남과 있으니 남편이 불편하지 않도록 참았다. 그래서 둘만 갈 때보다 오히려 더 기분 좋은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딸과 둘이서 런던으로 자유여행을 가봤는데 박물관을 오래 관람하고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것 말고 딱히 패키지보다 나을 게 없었다. 먹는 것도 보는 것도 때로 아이와 의견이 맞지 않아 시간도 낭비하고 속도 상했다. 그러나 아들과 둘이 간 독일 패키지는 가이드 안내에 따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때 되면 식사하고 아무 걱정 없이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패키지여행은 여행 준비에 많은 시간을 쓰기 싫고 하루에 많은 관광 명소를 구경하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 제격인 것 같다. 신경 쓰지 않아도 모든 일정을 정해주고 새벽부터 깨워서 일정을 지키게 한다. 가고 싶은 나라만 정하면 된다. 여름에는 조금 시원한 나라로 겨울에는 조금 따뜻한 나라로.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패키지여행이 다 좋은 건 아니다. 특히 여행사가 처음 약속한 상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신뢰도 가지 않고 즐거움도 반감된다. 얼마 전에 다녀온 이집트 여행이 그랬다. 책에서만 보던 아부심벨이나 피라미드를 본 건 좋았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즐겁지 않았다. 이집트 여행을 결정하고 남편이 갑자기 수술을 받아 2주면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나 또한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자주 가야 했는데 비포장 시골길에 화장실이 없어서 생리 현상을 참느라고 얼굴이 노래졌다. 약을 먹었는데도 화장실에 4번을 가고야 설사가 멎었다. 다행히 여행 끝 무렵 홍해가 보이는 깨끗한 리조트에서 하루 푹 쉬고 나니 그제야 남편도 나도 몸이 좋아졌다. 원래 이 상품은 이곳에서 이틀 묶는다고 해서 계약했었다.


그러다 여행 가기 2주 전에 일정이 바뀌었다는 연락이 왔다. 리조트에 이틀 묶으면 할 일도 없다며 다른 사람은 모두 새로 바뀐 일정에 동의했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바뀐 일정은 별로 볼 것도 없고 버스를 오래 타며 피곤하기만 했다. 여행사에서 추천해 준 선택관광도 문제가 있었다. 비슷한 종류의 선택 관광이 많았다. 70유로를 내고 미라 22구나 보고 왔는데 다음날 다른 미라 한 구를 보는데 60유로를 내게 했다. 이 돈이 이집트 문화 보존과 발굴에 기부하는 거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지만 미리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은 여행사에게 실망했다. 게다가 옷도 잊어버리고 비행기에서 짐을 험하게 다뤄서 여행가방 바퀴도 하나 없어졌지만 우리가 수리해서 요금을 청구하라고 해서 아직 바퀴 빠진 가방이 현관에 비스듬히 서있다. 이래도 패키지여행을 계속할 건가?


남편은 이번 여행이 너무 힘들었는지 앞으로 가까운 곳에만 갈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난 아직 먼 곳에 가보고 싶은 나라가 많다. 그래서 패키지여행을 포기할 수 없다. 비록 이번 여행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다치지 않고 잘 다녀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사실 여행 첫날 목욕탕에서 미끄러졌는데 손등에 멍이 들고 팔이 조금 까진 것 말고는 멀쩡했다. 수술받은 지 얼마 안 되는 남편이 아니라 내가 미끄러져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다. 남편이 수술받아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알려줘서 미리 선택 관광을 취소할 수 있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자주 웃을 수 있었고, 옛날에 살던 동네에서 온 부부를 만나 마치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았고, 흥정을 잘하는 사람 옆에 있다가 사고 싶은 걸 살 수 있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이번 여행도 나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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